"보이지 않는 만큼 더 공정하게 업무 임할 수 있어" [차 한잔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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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전문 변호사가 되겠다며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진학한 공학도는 2학년이 되던 해 어둠에 갇혔다.
"많은 장애인이 저처럼 후천적으로 장애를 얻습니다. 장애인이라고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환경이 뒷받침되고, 장애인 자신이 적응하는 훈련을 거치면 많은 일을 다른 사람들처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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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재학 중 사고로 시력 잃어
가족·친구·학교 도움으로 꿈 달성
"장애인들 하고픈 일 포기 말길
훈련 거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그랬던 그가 8년여 세월이 흐른 지난해 10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신임 법관 임명장을 받았다. 국내 2호 시각장애인 법관인 김동현(39) 판사의 이야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 신임법관 연수를 받고 있는 김 판사와 7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판사는 “시각이 없어졌지만 가족과 친구, 학교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마치겠다는 김 판사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그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아들이 로스쿨을 졸업할 때까지 부산에서 올라와 서울에 머물며 아들의 홀로서기를 도왔다.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려면 치료 외에도 보행이나 점자 읽기와 같은 재활훈련도 받아야 했다. 세상을 새로 익혀야 하는 아들이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어머니는 용기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김 판사는 이제 지하철을 타고 익숙한 길을 다니는 정도는 혼자서도 할 수 있다. 학교도 다시 돌아온 그를 따뜻하게 환대했다. 3학년이 된 동기들은 강의 필기 내용 등 학습자료를 건네주고 어떻게 공부하면 좋은지 학습 방법을 알려줬다. 학교는 김 판사에게 도우미 학생을 붙여 수강의 어려움을 덜어 줬다. 교수들은 자신의 저서를 파일로 제공해 김 판사가 화면인식 프로그램을 통해 음성으로 이를 들을 수 있도록 도왔다.
김 판사에 앞서 국내 1호 시각장애인 법관이 된 최영 판사와 알고 지내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로스쿨 교수의 소개로 알게 된 최 판사는 그 존재만으로도 김 판사에게 큰 힘이 됐다. 김 판사는 그에 대해 “방패막이 같은 존재”라며 “저보다 먼저 길을 닦으신 분이 있어 (시각장애인 판사가) 불가능한 게 아니란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최 판사는 법조계 선배 이상의 존재다. 김 판사는 “일상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는다”며 “최 판사님을 통해 재활하는 장애인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많이 보고 배웠다”고 말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로스쿨을 졸업한 김 판사는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후 서울고법 재판연구원에서 2년간 근무했다. 이후 서울시장애인인권센터에서는 장애인 차별·학대 사건 전문 변호사로 3년을 일했다. 인권센터 근무 중 그는 장애인법연구회의 ‘장애인차별금지법 해설서’ 집필에 참여하기도 했다.
김 판사는 4달간 연수를 마치고 다음달부터 일선 법원에서 근무를 시작한다. 판사로서의 첫 재판을 앞둔 소회를 묻는 말에 김 판사는 “보이지 않는 만큼 내 앞에 있는 사람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없이 업무에 임할 수 있다”며 “법관으로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서 양심을 걸고, 부끄럽지 않게 판단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자신이 그랬듯 더 많은 장애인이 세상 밖으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드러냈다.
“많은 장애인이 저처럼 후천적으로 장애를 얻습니다. 장애인이라고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환경이 뒷받침되고, 장애인 자신이 적응하는 훈련을 거치면 많은 일을 다른 사람들처럼 할 수 있습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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