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금융위 지급결제 패권싸움..'전금법 개정안' 처리 향방은
야당은 전금법 개정안 처리에 '신중'..여야 합의·민주당 방침이 변수
(서울=뉴스1) 김성은 기자 = 우리나라 금융거래의 핵심인 지급결제 관련 권한을 둘러싸고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 간 패권전쟁이 고조되고 있다. 당초 지급결제 제도는 한은 고유의 영역이지만 금융위가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 등 '빅테크'(대형 정보통신기업)를 앞세워 지급결제 관련 권한 확보에 나서면서 다툼이 불거졌다.
양 기관의 패권 다툼은 전장을 국회로 옮겨 펼쳐지고 있다. 국회의 서로 다른 두 상임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한은과 금융위의 지급결제 관련 권한을 각각 확대하는 법안을 발의하면서다. 그러나 법안을 둘러싼 잡음이 커지고 있어 향후 국회 심의 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한은 "전금법 개정안은 중앙은행 대한 과도한 관여"…금융위 "권한 침해 아니다"
8일 국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민주당 소속 윤관석 국회 정무위원장이 지난해 11월 대표 발의한 '전자금융거래법 일부개정법률안'(전금법 개정안)은 설 연휴 이후 열리는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상정될 전망이다.
이 개정안은 지난 7월 금융위가 내놓은 '디지털 금융 종합혁신방안'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규제를 과감하게 풀고 진입 장벽을 낮춰 핀테크 산업을 육성한다는 취지다. 한은과 금융위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점은 개정안에 신설된 '전자지급거래청산' 부분이다.
지급거래청산이란 금융기관 간 주고받은 금액을 상쇄해 거래를 단순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간 한은은 지급거래청산을 포함해 국내 지급결제 제도 전반을 독자적으로 감시, 관리해왔다.
그러나 개정안은 '전자지급거래청산업'을 신설하고, 이와 관련한 허가권을 한은이 아닌 금융위에 부여했다. 전자지급거래청산기관에 대한 업무규정 승인과 감독 권한, 허가 취소와 제재 권한 역시 금융위에 줬다.
규제가 느슨한 빅테크·핀테크 금융거래의 안정성을 높여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취지이지만 한은은 금융위가 한은 고유의 지급결제제도 업무 영역을 침범하려 든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양 기관의 수장이 관련 발언을 내놓으면서 갈등이 격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해 11월 전금법 개정안과 관련해 "중앙은행에 대한 과도하고 불필요한 관여가 아니냐고 판단하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에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12월 "한은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한은 입장에선 빅테크가 금융결제원 안으로 들어오니까 오히려 업무 영역이 커진다"고 맞섰다.
◇전금법 개정안 둘러싸고 논란 가열…한은 권한 강화한 법안도 속속 발의
개정안의 또 다른 내용을 두고서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개정안이 당사자 동의 없이도 개인의 금융거래 정보를 수집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빅브라더 논란' 소지가 크다는 주장이다.
양기진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4일 '2021년 경제학 공동학술대회 금융정보학회 세미나' 발표자료를 통해 "전금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전자지급거래 관련 개인정보가 관련 법들의 제약을 받지 않고 무제한 집중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안 심의권을 가진 야당 역시 이러한 논란에 주목하고 있다. 정무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성일종 의원은 전금법 개정안 처리에 신중한 입장이다.
성 의원실 관계자는 "전금법 개정안에 대한 공공기관과 IT 업체들의 반발이 심하고, 학계 역시 반대 의견을 내놓은 상황이라 정무위에서 법안이 졸속 논의되어선 안된다는 입장"이라며 "공청회를 통한 업계 의견 수렴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 2월에 법안이 처리되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은의 지급결제 관련 권한을 강화한 법안이 발의된 것 역시 변수로 남아 있다. 민주당 소속 양경숙 의원과 김주영 의원이 각각 지난해 11월과 올해 2월 대표 발의한 '한국은행법 개정법률안'이 바로 그것이다. 정무위원회 소속 윤 위원장이 지급결제 제도와 관련해 금융위의 권한을 확대했다면,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 의원과 김 의원은 정반대로 한은에 힘을 실었다.
상충되는 내용의 법안이 나란히 발의되면서 향후 법안 처리는 난항을 겪을 것으로 관측된다. 정무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각각의 법안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 과정인 법제사법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통상 상충하는 내용의 여러 법안이 법제사법위원회에 오르면 여야 간 의견이 합의점을 찾을 때까지 소위원회로 회부되어 다뤄지기 때문이다.
다만 국회 한 관계자는 "여야가 어느 한 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하거나, 전체 의석의 약 5분의 3을 차지한 민주당이 법안 처리를 강하게 밀어붙일 경우엔 한은이나 금융위 중 어느 한쪽의 지급결제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이 처리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se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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