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보람·자부심 무너져"..기재부 공무원들은 왜 분노하나
'기재부 나라냐' 정치권 전방위 공격에 자괴감 커져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일했는데 보상 없고 인사적체만
워라밸 문화 수용, 공직 비전·보상·보람 재정립 필요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이명철 원다연 기자] 문재인정부 경제정책 컨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가 신입 사무관들의 기피 1순위 부처로 전락했다. 공직사회도 워라밸 문화가 확산하는 가운데 기재부는 부처업무 특성상 격무에 시달리고, 인사적체가 심한 곳이어서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마스크 수급,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등 할 일은 더 많아졌는데 보상은커녕 ‘정치권 욕받이’ 신세가 된 것도 신입 사무관들이 기재부를 외면하는데 한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기존 직원들도 공공연하게 타부처 전출을 요구하는 등 내부 동요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기재부 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했지만 해법 마련이 쉽지 않아 보인다.
“젊은 사무관들, 부글부글 끓는다”
7일 이데일리가 기재부 안팎 관계자들 발언을 종합한 결과 국가 경제를 설계하고 육성한다는 자부심 넘치던 기재부가 신입 사무관들조차 외면하는 찬밥 신세가 된 원인은 다양했다. 무엇보다도 공직자로서의 자부심이 깨지고 자괴감만 커졌다는 반응이 많다.
지난해 59년 만에 4차례에 걸쳐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등 격무에 시달렸는데 인정은커녕 비난만 많아졌다는 이유에서다. 일례로 최근에 홍 부총리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원에 난색을 표하자 “기재부의 나라냐”, “사퇴하라” 등 정치권의 비난이 거셌다.
기재부 A 관계자는 “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많게는 100조원씩 재정을 풀자고 책임 없이 말하는데 재정당국이 할 말은 해야 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홍 부총리는 지난 5일 대정부질문에서 “행정이나 정치나 국민행복을 위해서 같은 목표로 달려가는 수레바퀴”라며 “한쪽이 너무 크고 한쪽이 작으면 똑바로 갈 수 없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에 대한 내부 불만도 많다. 그동안 과로를 견디면서 일했는데 적절한 보상이 없어서다. 지난해 기재부 고위직들이 위암·신장이식 수술 등을 받으면서 잇따라 병가를 냈다. 2018년 12월에는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국회에서 야근한 50대 예산실 직원이 새벽 2시 반께 뇌출혈로 쓰러져 후송됐다. 이렇게 격무에 시달리는데도 인사·승진에서 제대로 된 보상이 없다는 게 내부 불만의 핵심이다.
특히 일 많은 예산실이 대표적인 기피 부서다. 기재부 B 관계자는 “인사혁신처 소관 공무원임용령, 기재부 인사 지침에 따라 사무관들이 예산실에 발령받으면 4년간 다른 실·국으로 갈 수 없다. 전문성을 쌓으라는 취지지만 한 번 발령 받으면 4년간 고생 길”이라며 “인사처와 협의해 인사교류 숨통을 트든지 만성적인 승진 적체를 풀든지 해야 한다. 지금은 이도저도 아니고 일만 많이 시키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정치권·기재부 모두 혁신해야”
기재부 퇴임 관료들과 인사 전문가들은 정치권과 기재부 모두 혁신 대책을 찾을 것을 주문했다. 단순히 기재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직사회, 국가정책의 문제로 비화할 수 있어서다. 이대로 가면 정부·여당 간 엇박자만 커지고 민생과 밀접한 경제정책이 퇴색될 것이란 우려에서다.
한 기재부 퇴임 관료는 “정부와 정치권이 힘의 균형을 맞추려면 지금의 행정도 혁신해야 한다”며 “‘나 때는 이랬는데’라는 과거 향수에서 벗어나야 한다. 감이 아니라 데이터에 기반한 치밀한 행정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성균관대 특임교수)은 “정치권은 정책이 마음에 안 든다며 부총리를 사퇴하라고 할 게 아니라 행정부의 인사 독립성·중립성을 인정해야 한다”며 “정권에 유착하는 공직자가 아니라 소신 있게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공직자들을 우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훈길 (choigig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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