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엔 여전히..'근로'가 금기어인 노동자들이 있다

김효실 2021. 2. 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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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방송 이재학 피디 1주기..방송 비정규직 현실]
부당해고 맞서 세상 떠난지 1년
진상조사 뒤 노동자 인정됐지만
사주가 합의 뒤집어 재판 계속
노동착취 알리는 죽음 이어지자
정부, 불공정 관행 개선책 내놓고
'재허가 조건'으로도 명시했지만..
언제든 해고 가능한 계약서 강요
'근로'란 단어 못쓰고 '용역'으로
드라마 제작 현장서 폭언 이어져
이재학 피디 사건 대책위는 지난달 27일 서울 상암에서 1주기 추모 주간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안타까운 죽음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대책위 제공

“벌써 일년이네. 벌써….” 아버지는 말끝을 흐리며 밤새 눈으로 뒤덮인 공원묘지를 바라봤다. 자식을 떠나보낸 슬픔은 시간으로 덮이지 않는다. 가족들은 이재학 피디가 생전 좋아한 콜라, 아이스크림, 담배를 봉안함 앞에 두고 다시 눈물을 쏟았다.

지난해 2월4일, 이재학 피디는 <청주방송>을 상대로 법원에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패소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피디는 청주방송에서 2004년부터 14년간 조연출·연출로 일했지만, 2018년 동료 프리랜서 스태프들의 인건비를 올려달라고 요구하다가 해고됐다. 프리랜서였지만 사실상 정규직처럼 일한 이 피디는 법원에서 노동자성을 인정받아 부당해고에 맞서고자 했다. 하지만 소송 과정에서 회사의 소송 방해와 증인들의 진술 번복으로 고통받았다. 이 피디는 1심 판결문을 받자마자 항소장을 접수했다. 이 피디는 유서에 “억울해 미치겠다. 모두 알고 있지 않을까? 왜 그런데 부정하고 거짓을 말하나”라고 썼다.

“제 동생은 불씨입니다. 그 불씨를 꺼트리지 않도록 싸우겠습니다.” 이 피디의 누나가 지난 4일 충북 청주시 청주방송 사옥 앞에서 열린 이재학 피디 1주기 추모문화제 무대 위에서 말했다. 동생은 죽어서야 노동자로 인정받았다. 이 피디 죽음 직후 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진상조사를 거쳐 지난해 7월 회사의 공식 사과, 유족 보상, 비정규직 고용구조·노동조건 개선 등의 내용을 담은 합의를 이뤘다. 이 피디는 목숨을 끊은 지 170일 만에 회사로부터 ‘기획제작국 제작팀 피디’로 명예 사원증을 받았다. 김혜진 진상조사위원장은 추도사에서 “이 피디가 방송사의 착취를 고발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화면 뒤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게 됐다”며 “언제라도 해고될 수 있는 현실, 다시는 방송에 발붙일 수 없다는 두려움이 노동자 권리를 말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충북 청주시 목련공원에 안치된 이재학 피디의 봉안함. 김효실 기자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1주기 추모제는 사옥 내부가 아니라 차가운 길바닥에서 진행됐다. 고요한 추모의 시간은 짧았고, 유족과 대책위는 청주방송 이사회 의장인 이두영 회장(대주주)의 합의 파기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청주방송 이사회는 지난해 9월께 이 피디의 항소심을 강제 조정 절차로 마무리하기로 한 합의를 뒤집었다. 강제 조정 합의문 가운데 ‘고인의 노동자성과 부당해고를 인정한다’는 부분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두영 회장은 “애초에 청주방송 집행부가 이사회 승인 없이 합의했으며, 항소심 부분의 경우 ‘합의’가 아니라 추후 내용을 더 논의하자는 취지의 ‘협의’였다”며 “부당해고를 인정할 경우 회사에 악영향을 주는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들의 지적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회사가 이사회 승인 없이 이런 합의를 진행하는 일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는 “(청주방송 사장이) 합의 전에 나에게 전화는 했지만 ‘(합의를) 빨리 해야 한다’고만 하고, 내용은 말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유족을 대리하는 이용우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는 4일 법원에 항소심을 다시 진행해달라는 내용을 담은 서류를 제출했다.

1주기를 맞은 지난 4일 유족들은 다시 거리에서 합의 이행을 요구하는 싸움에 나서야 했다. 동생의 사진을 쓰다듬는 고 이재학 피디의 누나. 김효실 기자

그간 방송사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처우를 알린 ‘불씨’는 꾸준히 존재했다. 특히 방송사들이 미디어 환경 변화로 재정 악화를 겪으며 허리띠를 졸라매자, 방송계 ‘최하층 계급’인 비정규직의 부담과 불안정성이 커졌다. 2016년에는 씨제이이엔엠(CJ ENM) 이한빛 피디가 드라마 제작 현장의 노동 착취 현실을 알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7년 <교육방송>(EBS)의 불공정 계약 관행을 고발한 박환성 독립 피디는 아프리카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다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잇따른 죽음에 총리와 여당 정치인, 고용노동부·문화체육관광부·방송통신위원회 등 정부가 나섰다. 2017년 정부 5개 부처가 공동으로 ‘방송 프로그램 외주제작 시장의 불공정 관행 개선을 위한 종합대책’을 내놨다. 2018년 고용노동부는 3개 드라마 제작 현장을 대상으로 특별근로감독을 벌여 프리랜서 스태프 다수의 노동자성을 인정했다. 2020년 방통위는 지상파 방송사의 재허가를 의결하면서 최초로 ‘방송사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조건으로 달았다.

고 이재학 피디 사건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손글씨 캠페인. 대책위 제공

그렇지만 최근 <한겨레>가 만난 방송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방송 제작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변화는 거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도리어 방송사가 정부 대책을 우회하여 ‘구태’를 유지하려 애쓰는 사례는 찾기 쉬웠다. 2011년부터 <문화방송>(MBC) 보도국에서 10년 동안 작가로 일한 이가은(가명)씨는 일을 시작한 지 7년째인 2017년 계약서를 새로 썼다. 같은 해 정부가 방송작가 표준계약서 작성을 촉구하자, 사쪽은 계약 기간이 명시되지 않은 기존 계약서 대신 계약 기간을 1년으로 제한하고 ‘각 당사자가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내용의 민법 689조를 도입한 새 계약서를 들이민 것이다. 해당 조항은 정부가 제시한 표준계약서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은씨는 지난해 6월 ‘프로그램 개편’을 이유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계약 기간 6개월이 남은 상태였다. 그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했지만, 지노위는 노동자로 볼 수 없다며 신청을 각하했다. 가은씨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한 상태다. 그는 “10년 동안 매일 새벽 3시30분께 출근해 열심히 일한 나를 위한 문제 제기인 동시에, 다른 방송작가를 위한 선례를 만들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방송 사쪽은 “방송산업의 특성상 자유로운 계약 해지권의 보장은 방송사만이 아니라 작가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가은씨가 2011년 문화방송으로부터 면접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받은 문자(왼쪽). 그 뒤 보도국에서 지정석을 갖고 10년 동안 일을 해왔다. 가은씨 제공

‘방송판은 원래 이런 바닥’이라는 체념을 벗어나 ‘골리앗’ 같은 방송사를 상대로 제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2018년 8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2년5개월가량 <와이티엔>(YTN)에서 ‘와이티엔 사이언스(Science)’ 관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용 이미지를 만든 그래픽 디자이너 한주영(가명)씨는 해고예고수당·퇴직금을 요구하는 구제 신청을 준비 중이다. 와이티엔은 2018년 2월 대학을 졸업한 주영씨의 첫 직장이다.

주영씨는 “디자인 업무 처우가 열악하다고 들어서 ‘계약서를 쓰긴 쓰는구나’ 하는 생각에 계약서의 존재만으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본 계약은 근로계약과 무관하다’는 내용이 두차례나 등장해서 기분이 이상했다”고 말했다. 주영씨는 정규직 상급자를 상대로 프리랜서 지위의 불합리한 처우에 대해 토로한 일이 자신의 해고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상급자는 이 일이 있고 나서 주영씨의 인사를 받지 않았다. 해당 부서 관계자는 “(주영씨는) 사인 계약으로 근로자가 아닌 프리랜서이고, 본사는 사업주로서의 의무나 고용 연장의 의무가 없다. 계약 기간 만료로 인해 해지된 상황”이라고 말했다.​주영씨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출퇴근했고, 고정된 자리가 있었고, 정규직 직원의 지시에 따라 일을 했다. 내가 노동자가 아니라면 뭔가?”라고 반문했다.

2006년부터 영화 제작 일을 하다가 4년 전부터 방송 드라마 제작에도 참여 중인 윤가람(가명)씨는 방송계에서 ‘근로’란 단어가 일종의 ‘금기어’임을 알고 놀랐다. 저예산 영화를 제외하면 표준근로계약서 작성이 정착돼가는 영화계와 달리, 방송계는 여전히 도급·용역 등 프리랜서 계약이 다수였다. 가람씨는 “영화 제작 현장에서 하던 대로 ‘근로시간’ ‘근로시간표’라는 용어를 썼다가, ‘용역시간’ ‘용역시간표’라고 고쳐 말하라는 지적을 들었다”고 했다.

지난해 4월 방송사들이 모인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거리 캠페인. 대책위 제공

가람씨는 지난해 한 종합편성채널 외주제작 드라마 현장에서 조연출이 막내 에프디(FD)에게 폭언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충격받기도 했다. 가람씨는 피디에게 직접 욕설을 듣는 일까지 겪고 해당 드라마 현장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영화 제작 현장에서는 계약서에 ‘문제가 발생하면 영화인 신문고로 해결한다’는 조항이 들어가고 곳곳에 영화 노조원이 있어 방송계보단 상대적으로 직장폭력이 덜하다. 2017년 ‘방송계갑질119’가 생기고 나서 신고가 좀 늘어난 것 같지만, 노동시간 초과에 대한 신고가 많고 직장폭력은 여전히 신고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김유경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대표노무사는 방송사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한 대안으로 △제대로 된 실태조사 실시 △정부의 비정규직 노동 현실 반영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 △방송 관련 법률에 ‘방송근로자’ 개념을 명시하는 국회의 법 개정을 제시했다. 노동자가 개별 싸움으로 방송사를 상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현재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는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영화근로자’를 정의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기자님, 회사 내부도 좀 봐주세요.” 가은씨는 지난해 문화방송의 전태일 열사 50주기 기획 보도 아래 이런 댓글을 달았다. 방송사와 싸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품는 소망은 한결같다. 자신들의 싸움이 전파를 타는 것. 내가 일한 방송사 시사·보도 프로그램에 등장해보는 것. 방송사의 공적 책임이 비정규직 처우 개선까지 확장되는 미래를 꿈꾼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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