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이펙트'전..88올림픽이 한국 건축 디자인에 남긴 흔적은?
도면·사진·영상 등 300여점으로
당시 시각·물질 문화 재구성
외국 유행·설계자동화 따른 변화
디자이너 인터뷰 영상 등으로 소개
30여년전 콘텐츠 애써 모았지만
관습변화에 미친 영향에 대한
구체적 분석 잘 안 보여 아쉬움도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깊으신 배려와 국민의 격려에 힘입어… 소임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1981년 9월 일본 나고야를 꺾고 서울 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한국 대표단 환영회장에서 당시 박영수 서울시장은 울먹거렸다. 대통령 전두환은 그 뒤 열린 올림픽 유치 환영 만찬에서 일행에게 “우리 일본 대사 어디 갔어? 일본 대사는 축배를 안 들데…”라고 농을 던진다. 시민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대자 “36년간 일제에 짓눌렸던 아픔을 씻어주는 소식”이라며 감격해 했다. 외국인에게 좋은 곳만 보여주자는 ‘가시권 정비’를 다짐하는 공무원의 인터뷰도 이어졌다. 80년대 초 지상파 고발 프로그램 기자들은 도심 빈민촌 등 낙후한 곳을 누비고 다녔다. 한 기자의 방송 멘트는 이렇게 시작했다. “지금부터 외국인의 눈으로 적나라하게 우리나라 곳곳을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자 이 쓰레기통 좀 보십시오.”
이런 장면들은 <한국방송>(KBS)이 서울올림픽 30주년을 기념해 2018년 만든 다큐멘터리 영상 <88/18>에 등장한다. 당시 올림픽이 군사독재를 포장하는 민족주의 과시의 제전이었음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32년 전 올림픽이 한국 현대미술과 디자인에 남긴 영향과 흔적을 여러 방면에서 돌아보는 회고 기획전 ‘올림픽 이펙트: 한국 건축과 디자인 8090’을 1전시실에 펼치면서 이 다큐 영상을 1부 첫머리에 넣었다. 이런 배치는 전시의 주제와 방향을 제시하는 듯 보인다. 더불어 관객을 맞는 건 잠실 88올림픽 주경기장 모형.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 작품을 모형 제작사 기흥성에서 축소해 만들었다. 1988년 9월 서울올림픽 개·폐막식 예술감독을 맡았던 이만익 작가가 당시 공연의상, 무대장치, 색채계획 등을 구상하며 남긴 아카이브 자료도 처음 공개됐다. 호돌이와 오방색 휘장으로 구성된 올림픽 상징물과 식전 장대한 행사 연출을 설계한 작가의 밑그림은 다큐 영상의 사회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어지는 2~4부 각론의 전시 모습은 이질적이고 판이하다. 건축과 디자인의 변화상을 당대 대중이 바라본 시각 문화 차원이 아니라 올림픽 시기 당대 작품과 시각물을 만든 디자이너, 건축가, 도시계획가 등의 입장에서만 다루기 때문이다.
88올림픽은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한국인의 시각 환경을 재편하는 건축·디자인 프로젝트였다. 경기장과 선수촌뿐만 아니라 서울 강남·북에 커튼월 형식의 대형 업무용 빌딩과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조성됐다. 또 국외 유명 미술 디자이너를 대거 초청한 관련 전시와 이벤트 등을 통해 우물 안 개구리였던 한국 현대미술과 디자인, 건축계의 지형을 바꿔놓았다. 기획진은 이런 인식 아래 88올림픽을 기점으로 변화한 당시 시각 물질 문화를 사진, 도면, 스케치, 영상 등 다양한 매체와 작품 300여점으로 재구성했다.
1부와 함께 핵심에 해당하는 부분이 3부 ‘시선과 입면’이다. 도로변 콘크리트 벽에 붙은 올림픽 기념 상징의 사진, 신축된 건축물 모형, 변모한 도시 풍경 사진이 나온다. 최근 88년 전후 건축물을 찍은 최용준의 건축 사진을 중심에 놓고 구본창 사진가의 1988년 작 <긴 오후의 미행> 연작 중 일부를 대비했다. 독일에서 유학하고 막 귀국했던 구 작가가 올림픽 준비로 부산한 서울의 헐렁하고 부박한 틈새 공간을 포착한 사진이 최 작가의 건축 사진과 시차를 두고 배치된다. 전시장 중심축을 차지하는 건 반포대교, 63빌딩, 장교빌딩 등 88년 올림픽 전후 시기에 건립된 서울의 대형 건축물 모형들. 디자이너 듀오 그룹인 서울과학사에서 <디오라마 서울>이라는 제목의 연작 모형으로 만들었다.
2부는 올림픽을 전후로 외국 유행과 설계 자동화 흐름에 따라 국내 디자인 건축업계가 재편되면서 벌어진 여러 작업상의 변화를 다룬다. 이런 내용을 디자이너의 인터뷰 영상으로 소개하고, 당대 처음 도입된 목동 등 대단위 신시가지 계획안과 이코노 티브이 등 새로운 디자인의 가전제품 등도 내보였다. 4부 또한 제도자와 컴퍼스 등 수작업 위주였던 건축가 디자이너의 작업실과 컴퓨터 디자인 캐드 시스템으로 변환된 시기의 작업실 모습을 대비시킨다.
30여년 전 디자인 건축가들의 아카이브 콘텐츠를 발품 들여 모은 전시는 당대 시각 문화의 맥락에서 빈틈이 많다. 기획진은 88올림픽이 촉발했던 도시, 환경, 건축, 사물, 이미지 등 급변한 풍경의 중첩된 면모를 보여주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전시에는 올림픽이 시각 디자인 환경과 건축 디자인을 바라보는 관습의 변화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한 분석이 거의 없다. 도입부에 이은 2~4부의 전시 내용이 공허한 이유다. 올림픽이란 사건이 한국 건축 디자인의 시각 환경과 인식을 어떻게 바꾸었는지가 전시 담론의 핵심이고, 창작 주체인 디자이너의 작업과 그 시절 스타일을 이야기하는 데 필수적인 전제인데도 그 내용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 전문가의 분절된 시선과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전시 구성의 한계가 뚜렷하다. 4월11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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