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혁의 무대사전] 상상과 현실 속에서 고뇌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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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대학로 블루칩' 극작가 겸 연출가 오세혁이 공간, 사람, 사물 등을 키워드로 무대 뒤 이야기를 격주 월요일자에 들려드립니다.
프로듀서(Producer) [명사]. 연극, 영화, 방송 등에서 제작의 모든 관리를 책임지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프로듀서는 어딘가 묘한 경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지역 재단의 프로듀서로 있으면서, 지역과 서울의 경계, 재단과 제작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공공성과 대중성을 지닌 창작공연을 꾸준히 탄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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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대학로 블루칩’ 극작가 겸 연출가 오세혁이 공간, 사람, 사물 등을 키워드로 무대 뒤 이야기를 격주 월요일자에 들려드립니다. <끝>
프로듀서(Producer) [명사]. 연극, 영화, 방송 등에서 제작의 모든 관리를 책임지는 사람.
프로듀서는 공연을 개발하는 사람이다. 공연을 제작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새롭게 탄생할 작품에 대해 무한한 상상을 하는 것이 개발이라면, 제작은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도록 제한된 상상을 하는 것이다. 프로듀서는 무한과 제한의 경계에서 끝없이 갈등한다. 가슴은 창작자의 열망과 함께 꿈틀대지만, 머리는 제작사의 환경을 냉철히 판단할 수밖에 없다. 가슴과 머리가 열병처럼 쉼없이 욱씬거리기를 반복하다가, 어느새 막은 오른다. 마침내 올라간 첫 공연을 보는 동안, 최초의 탄생에 대한 뿌듯함과 최후의 타협에 대한 아쉬움이 공존한다.
공연을 만들면서 수많은 프로듀서를 만났다. 처음에는 그들에게 마음을 잘 열지 않았다. 동등한 입장으로 만나야 할 것 같았고, 동등하려면 팽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창작환경에 대한 요청은 많이 했지만, 창작에 대한 의견이 전해졌을 때, 때때로 무심했거나 고집했던 것 같다. 아마도 내 마음속에는, 그들과 나의 거리가, 창작과 제작이라는 선으로 나눠져 있다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과 때론 다투고, 때론 털어놓고, 때론 서로 위로해주며, 나는 그들에 대해 놓치고 있었던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들의 현재는 모두 프로듀서지만, 그들의 과거는 모두 달랐다. 누군가는 작가였고, 누군가는 배우였으며, 누군가는 한 편의 공연으로 인생이 바뀐 관객이었다. 작가를 꿈꾸던 A는 가능성 넘치는 창작진과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고 싶었고, 한때 배우였던 B는 훌륭한 배우들과 탄탄한 레퍼토리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한 극단의 조연출 출신인 C는 배우와 스태프가 좀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었다. 공연을 향한, 서로 다른 열망 때문에, 서로 다른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프로듀서가 된 것이다. 애초에 그들은 창작자의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난 후, 난 그들과 가까워졌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듀서는 어딘가 묘한 경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낮에는 공공극장에 근무하면서 밤에는 희곡을 쓴다. 다양한 결을 지닌 다양한 작품의 제작PD로 일하는 동시에, 자신의 결에 맞는 자신만의 작품을 제작하고 싶어서 1인 제작사를 운영한다. 지역 재단의 프로듀서로 있으면서, 지역과 서울의 경계, 재단과 제작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공공성과 대중성을 지닌 창작공연을 꾸준히 탄생시킨다. 냇물처럼 자유로운 마음과 우물처럼 지긋한 마음. 이 양면의 마음이 이들을 프로듀서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많은 연극과 뮤지컬을 함께 만든 프로듀서가 있다. 그는 늘 창작 직전까지는 많은 의견을 내지만, 창작에 들어가면 아무 말이 없다, 연습 직전까지는 많은 당부를 건네지만, 연습에 들어가면 아무 말이 없다. 모두가 연습을 하고 있을 때는 묵묵히 바라보며 말이 없다가, 한두명이 남았을 때, 그 한두명에게 조용히 다가가 한두마디를 건넨다.난 그의 묵묵함이 좋아서 많은 작업을 했던 것 같다. 한참을 지나서 알게 됐다. 사실 그의 묵묵함 뒤에는 무수한 불안감이 있었고, 그의 말 없음 뒤에는 수많은 식은땀이 있었음을. 그 불안과 식은땀을 묵묵히 견뎌내는 것을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그는 늘 첫 공연이 올라가면, 집으로 향하는 길에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 알 수 없는 쓸쓸함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나는 때때로 미안하다.
극작가 겸 연출가 오세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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