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 행복한 17년이었습니다"

한소범 2021. 2. 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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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홍대 북새통 문고 박회탁 대표
5일 북새통 문고에서 만난 박회탁 대표는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어 너무나 행복했던 17년이었다”고 회상했다. 한소범 기자

서울 홍대입구역 8번 출구 앞에 있는 북새통문고는 오랫동안 한국 만화 문화의 중심지였다. 서가면적, 소장도서, 판매부수에 있어 국내 최대였을 뿐 아니라 만화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한국을 방문한 해외 유명 작가들이 꼭 들렀던 필수코스였고 미쉐린 가이드에 한국 대표 관광지로 소개될 정도였다.

17년간 홍대앞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지켰던 북새통 문고도 코로나 광풍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지난해 12월 북새통 문고는 매장 영업 종료 소식을 전했다. 기존 고객들의 적립금 소진을 위해 이달 말까지만 운영된다. 5일 북새통 문고에서 만난 박회탁(65) 대표는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한 17년이었다”고 회상했다.

북새통 문고는 2004년 인천에서 신문사 출판지국을 하고 있던 박 대표가 북새통 문고 전신인 ‘만화 마트’라는 작은 서점을 인수하며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만화는 대여점을 통해 소비되거나 서점 매대 일부에서 판매되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박 대표는 “일본은 만화 사업이 굿즈, 피규어, 애니메이션 등 다각도로 번창하는데 한국은 왜 그렇게 못하는지” 의문을 가졌고 “진짜 만화 마니아를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 아래 현재의 북새통 문고를 열었다.

2004년 오픈한 홍대 북새통 문고는 국내 최대 규모의 만화 전문 서점이자 한국 만화 문화의 중심지로 기능해왔다. 북새통 문고 제공

‘제대로 된’ 만화서점을 만들자는 결심에 일본 출장도 여러 번 다녀왔다. 현지 만화서점의 책장 크기를 재서 그대로 북새통 문고에 재현했다. 박 대표의 고심은 곧 독자 반응으로 돌아왔다. 박 대표가 인수하기 전 6,000만원 남짓이었던 월 매출은 최대 월 3억원까지 치솟았다. 주말이면 서점을 구경하려는 손님 줄이 계단을 넘어 도로까지 점령할 정도였다.

매달 둘째 주 토요일마다 진행했던 25% 세일행사는 이 같은 손님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한 것이었다. “장사가 너무 잘 되니까 손님들한테 어떻게든 대접을 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떡을 500만원어치 맞췄어요. 서점 한 쪽에다 떡이랑 레몬주스, 사이다 같은 것을 차려뒀죠. 근데 손님이 너무 많이 오니까 떡으로는 감당이 안돼요. 그래서 대신 세일이라도 많이 해드리자 한 거죠.”

영업시간을 밤 10시에서 10시 30분으로 연장한 것 역시 손님을 위한 결정이었다. 당시 홍대앞에는 방학 때만 잠깐 상경해 인근 미술학원을 다니던 지방 출신 유학생들이 많았다. 그런데 학원 수업이 끝나는 시간과 서점 영업이 끝나는 시간이 같았던 탓에 매번 학원을 일찍 빠져 나와 서점까지 죽기살기로 달려야 했다. 이 아이들이 마음 편하게 구경할 수 있도록 서점 운영시간을 늘렸다.

“그랬던 애들이, 나이 들어 자기 자식 데리고 와서 만화책 사가고 그래요. 어렸을 때는 저를 ‘아저씨’라고 불렀으면서 이제 어른 됐다고 점잖게 ‘사장님’ 그러더라고요. (웃음)”

박 대표는 일본 만화전문서점을 몇 번이나 답사하며 오늘날 북새통 문고의 밑그림을 그렸다. 한소범 기자

2008년에는 옆 가게를 매입해 점포를 확장하고 출입문도 2개나 더 늘렸다. 그러던 곳이, 2014년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위기를 맞았다.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더 이상 대대적인 할인을 할 수가 없었고 손님은 자연히 카드 할인이 가능한 대형 온라인 서점으로 빠져 나갔다. 웹툰 시장이 커지면서 만화 출판사들은 종이 출판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때까진 ‘버틸 만 하다’고 생각했다. 2018년도부터 본격적인 내리막이 시작됐고, 지난해 코로나로 최종 어퍼컷을 맞았다.

“커피를 함께 팔아볼까, 헌책방을 같이 할까, 별별 고민을 다 했어요. 근데 여기 오는 손님들은 그런 걸 원하지 않는다는 게 직원들이 낸 결론이었어요. 사실 2018년에 이미 문 닫았어야 하는 걸, 제가 이곳을 너무 좋아해서 오기를 부렸죠. 그러다 애들 결혼 자금까지 여기에 쏟아 붓고 나니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폐업을 결심하기까지 너무 괴로워서 매일 밤을 설쳤어요.”

그러나 작별이 아쉬웠던 건 박 대표뿐만이 아니었다. 폐업 소식이 알려지자 이곳 저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왔다. 그 중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의 투자 제안도 있었다. 박 대표는 이들 중 한 곳과 논의를 거쳐 3월 중 향후 북새통 문고의 운영 방안을 다시 정할 계획이다. “이제 이곳에서 돈 벌 생각은 없어요. 그냥 이대로 북새통이 사라지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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