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한 권리" vs "배부른 고민".. 성과급 공방, 왜 지금 터져나왔나?
SK하이닉스에서 시작된 '성과급 논란'이 재계 전반으로 번져나가자 기업들이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과거에도 성과급 불만은 종종 있었지만, 이번처럼 아예 "책정 근거를 내놓으라"며 회사를 압박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한편에선 이른바 'MZ세대(1980년~2005년 사이 태어난 세대)'가 기업의 중심세력으로 진입하면서 촉발된 변화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과거엔 주는 대로 받는 게 성과급이었다면, 앞으로는 '공정한 기준'이 무엇보다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란 얘기다.
"더 많이 벌었는데 왜 성과급은 줄었나"
7일 재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최근 지난해 영업이익(약 5조원)이 전년대비 84% 늘어난 대가로 연봉의 20%를 초과이익배분금(PS)으로 지급한다는 공지를 냈다가, 직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실적이 좋지 않아 위로금 성격의 '특별기여금'이 지급된 2019년과 지난해 성과급 수준이 같다는 게 이유였다. 단순한 금액 수준보다 성과급이 이렇게 매겨진 이유가 납득되지 않는다는 게 불만의 핵심이었다.
성과급 논란의 불똥은 다른 대기업 계열사로도 튀고 있다. 삼성전자는 사업 부문별로 초과이익성과급(OPI)을 지급했는데, TV를 만드는 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부와 스마트폰 사업부(IM)는 최대 '연봉의 50%'를 받았다. 이에 '연봉의 47%'를 받은 반도체 부서에선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우리가 벌었는데 성과급은 왜 적나"라는 불만이 나왔다. 삼성의 전자 관련 계열사(삼성디스플레이·삼성SDI)에선 호실적에도 삼성전자에 비해 성과급이 너무 박하다며 "우린 후순위냐"는 불만을 보였다.
조만간 성과급 결정을 앞둔 LG전자 직장인 익명게시판(블라인드)에는 SK하이닉스 사태 등을 거론하며 "성과급 두고 보자"는 취지의 게시글이 올라오고 있다.
"터질 게 터졌다"
재계 일각에선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경영상 비밀'을 내세워 성과급의 자세한 기준을 공개하지 않던 관행이 한계에 부딪쳤다는 것이다.
가령 SK하이닉스는 지금까지 세후 영업이익에서 각종 투자비용을 뺀 값인 '경제적 부가가치(EVA)'를 성과급 산출 기준으로 삼았다. 최근 "EVA 계산법이 모호하다"는 비판에 직면하자, 하이닉스는 앞으로 영업이익만으로 성과급을 산출하도록 제도를 아예 바꾸기로 했다. 삼성전자도 OPI 산식을 외부에 공개한 적이 없는데, 세후 순이익에서 각종 비용을 뺀 나머지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재원을 바탕으로 내부 기준에 따라 각 부서에 할당할 성과급 비율을 정하는 식이다.
손혁 계명대 회계학과 교수는 "보상 체계를 더 투명하게 바꾸고 직원들로부터 일정 수준의 동의를 얻어야 성과급 본연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에선 구체적인 성과급제 산식과 운영 방식에 대한 구성원의 동의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고 한다. 성과급 액수 못지 않게 '정해진 이유'를 알려줘야 저항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기업은 그런 소통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게 손 교수의 지적이다.
공정에 민감한 MZ 세대가 논란 촉발
MZ 세대의 부상도 최근 성과급 논란이 커진 배경으로 꼽힌다. 공정과 실리를 중시하는 이들은 기성세대와 세상을 바라보는 창(窓) 자체가 달라 원칙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면 참지 않고 불만을 표시한다.
실제 SK하이닉스의 성과급 논란을 불붙인 것도 4년차 이하 직원들이었다. 입사 8년차 대기업 직원 김모(33)씨는 "지금까지 노조가 없어서 성과급 불만을 얘기도 못했는데 사실 성과급이 얼마나 공정하게 산출되는지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 "우린 월세도 못내는데" 한숨
기업의 속내는 복잡하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요즘 개인 불만 등이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퍼지고 쉽게 사회 문제로 부각되다 보니 노조가 이를 이용해 갈등을 더 부추기진 않을까 걱정이다"고 전했다.
이러한 성과급 논란이 일부 대기업 직원들만의 배부른 고민이라는 따가운 시선도 엄연히 존재한다. 같은 대기업이라도 정유, 항공, 철강업계 등은 지난해 실적 악화로 성과급이 아예 없거나 대폭 감소했다. 최근 시중은행들이 막대한 이자수익으로 성과급 잔치를 벌인 데 대한 시선도 싸늘하다.
서울 홍대에서 자영업을 하는 김모(33)씨는 "장사가 안돼 월세 내기도 벅찬데 일부 대기업의 성과급 잔치를 보면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한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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