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희·백건우, 1976년 파리서 결혼.. 다음해 납북 직전 탈출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배우 윤정희 부부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함께 겪었다. 1972년 독일 뮌헨 올림픽의 축하 공연으로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이 세계 초연될 당시 이들은 처음 만났다. 영화 ‘효녀 심청’의 현지 상영차 독일을 방문했던 윤씨는 남편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회고했다. “오페라 극장 계단에 순수하게 생긴 한국 남자가 있었다. 자리를 잘 몰라 그분에게 좌석을 물었더니 친절하게 안내해줬다.” 그 청년이 백건우였다.
이들 부부는 1976년 3월 재불(在佛) 화가 이응로의 집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신랑과 신부는 웨딩드레스 대신 한복을 입었고, 예물도 백금 반지 한 쌍이 전부였다. 파리에 신혼집을 차린 이들 부부는 이듬해 이응로의 부인 박인경의 권유로 당시 공산권이었던 유고슬라비아의 자그레브(현재 크로아티아의 수도)로 연주 여행을 떠났다가 납북(拉北) 위기를 겪었다. 당시 신변의 위협을 느낀 백씨 부부는 가까스로 자그레브 주재 미 영사관으로 탈출한 뒤 무사히 파리로 돌아왔다.
1980년대부터 백씨는 프로코피예프·라흐마니노프·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 음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음반 같은 굵직한 녹음과 연주로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윤씨도 23세에 영화 ‘청춘 극장’으로 데뷔한 뒤 300여 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1960~1970년대 문희·남정임과 더불어 ‘1세대 트로이카’로 불렸다.
하지만 남편의 공연 당일이면 아내 윤씨는 언제나 무대 뒤편 대기실에서 남편의 구두를 닦고 연주용 연미복을 매만졌다. 그는 “백건우 비서 노릇은 나 아니면 아무도 못할 거야”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윤씨는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서 주연을 맡아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과 카이로 영화제 평생 공로상 등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시’에서 그가 맡은 배역은 알츠하이머 환자 역할이었다.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윤씨가 알츠하이머로 투병 중이라는 사실은 남편 백건우의 2019년 인터뷰로 뒤늦게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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