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與단체 입김 한번에 뽑혀버린 '백선엽 안내판'

원선우 기자 2021. 2. 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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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현충원 묘소, 친여단체 시위 "당장 없애라"
현충원 측은 당일 철거·폐기 "찾는 사람이 줄어서 뽑았다"
지난해 7월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제2묘역에 설치됐던 백선엽 장군 묘소 안내판(위). 현충원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5일 백 장군 묘의 이장(移葬)과 안내판 철거를 요구하자 당일 철거했다(아래). /육군협회·신현종 기자

국립대전현충원 경내에 있던 고(故) 백선엽(1920~2020) 장군 묘소 안내판이 일부 친여(親與) 단체 항의로 철거됐다. 7일 국가보훈처와 대전현충원 등에 따르면, 지난 5일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회원 20여 명은 대전현충원 장군 제2묘역에 안장된 백 장군 묘소 바로 앞에서 집회를 열고 백 장군을 이장(移葬)하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충원 주차장과 장군 제2묘역에 설치됐던 ‘故 백선엽장군 묘소’ 안내판도 없애라고 요구했다.

한 참가자는 “친일파 안내판이나 세우고, 이게 뭐하는 짓이냐”며 “반성 안 하느냐”고 했다. 이들은 현충원 측에 “문재인 정권이 국립묘지법을 개정해서 이장한다고 하는데 오히려 대전현충원 원장은 안내판을 세우고 있다”며 “국민 여론이 가만히 놔둘 것 같으냐”고 했다. 그러자 현충원은 당일 바로 안내판을 뽑아냈다. 현충원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안내판을 철거한 후 폐기했다”며 “집회 참가자들의 요구 때문이 아니라 백 장군 안장 후 시간이 지나면서 찾는 사람이 적어져 철거한 것”이라고 했다.

백 장군은 6·25 전쟁 영웅이자 창군(創軍) 원로다. 그는 6·25 당시 낙동강 최후 방어선에서 병력 8000명으로 북한군 2만명의 총공격을 막아내 전쟁의 판도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미군은 백 장군을 ‘한·미 동맹의 상징’으로 예우했다. 하지만 국내 좌파들은 백 장군이 20대 초반 일본군 장교로 복무한 전력을 들어 지속적으로 그를 ‘친일파’라고 주장해왔다. 백 장군의 1사단장 후임 송영근 예비역 중장은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 전쟁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의 안식을 이런 식으로 방해하는 나라가 또 어디 있겠냐”고 했다.

2018년 11월 21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주한미군이 주관한 백선엽 장군(왼쪽 둘째) 생일 파티에서 해리 해리스(오른쪽) 당시 주한 미 대사가 무릎을 꿇고 백 장군을 맞이하고 있다./남강호 기자

◇“나라 구한 영웅의 안식, 이리 방해하는 나라 또 있을까”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은 지난 5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고(故) 조문기 애국지사 13주기 추도식을 마치고 곧장 백 장군 묘소로 향했다. 이들은 ‘육군대장 백선엽의 묘’라고 적힌 묘비 앞에서 ‘반민족행위자 백선엽 국립묘지에서 이장하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을 흔들며 시위를 했다.

이들은 현충원 관계자들에게 “왜 백 장군만 안내판이 있느냐” “개인 묘소냐”며 손가락질을 하고 고성을 질렀다. ‘독립운동가를 때려잡던 놈’이라는 목소리도 들렸다. 한 참가자는 백 장군 묘비 앞에서 “독립운동가들을 토벌하던 만주사관학교 출신”이라고 했다. 참가자들은 백 장군을 ‘반민족 행위자’로 지칭하면서 ‘이장하라’ ‘국립묘지법 개장하라’ 등 구호를 외치며 팔을 흔들기도 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편찬 등 이른바 ‘친일 청산’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로 지난해 7월 백 장군이 현충원에 안장될 때도 반대 시위를 벌였다.

지난해 8월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아베규탄 시민행동'이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 취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소란이 이어졌지만 현충원은 이들을 제지하지 않았고 이들의 요구대로 백 장군 안내판을 철거했다. 현행 국립묘지법은 ‘누구든지 국립묘지 경내에선 국립묘지의 존엄을 해칠 우려가 있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충원은 “당시 직원 20여 명이 나가 상황을 관찰했지만 국립묘지의 존엄을 해치지 않는 범위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현 정부 들어 백 장군 폄훼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7월 백 장군이 현충원에 안장된 후 더불어민주당과 친문·좌파 일부는 백 장군 파묘(破墓)를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백 장군 안장 1개월 뒤부터 ‘친일 파묘법’을 본격 추진했다. 보훈처는 홈페이지의 백 장군 정보란에 ‘친일 반민족 행위자’라는 문구를 명시했다. 정부가 백 장군을 ‘친일파’로 공개 낙인찍은 것이다. 이에 앞서 육사는 6·25 당시 백 장군의 활약을 그린 웹툰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하기도 했다.

지난해 7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백선엽 장군 빈소에 문재인 대통령 조화가 놓여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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