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대일외교, 냉정과 열정 사이

김청중 2021. 2. 7.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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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일 신임 주일대사 활동 개시
한·일 양국, 첨예하게 대립 구조
외교안보문제 다양한 변수 작용
서둘기보다 신중하게 대응해야

“상상력이 좀 부족한 것이 아닌가요?”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말했다. 지난해 11월 한일의원연맹 대표단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와 면담 후 다음날 한국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다.
김청중 도쿄특파원
김진표 회장은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과 관련해 도쿄올림픽까지 피고 기업의 압류자산 매각 절차를 봉합해야 한다는 것과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한·일 관계, 한반도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매각 절차 중단과 관련해서는 “대법원이나 법원행정처나 이런 사람들도 한·일 관계가 파국으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사법부가) 일부러 (매각 절차를) 빨리 당겨서 하지 않는 한 (자산 매각까지) 상당한 시간이 있다”고도 했다.

강제동원 소송과 관련해 박근혜정부의 사법 개입 논란이 있었던 만큼 민감한 발언이다. 사법부 판단이라 행정부가 개입할 수 없으며 피해자 중심주의로 해결돼야 한다는 문재인정부의 기본 입장과도 결이 다르다.

결국 ‘피해자 측과 협의하느냐’, ‘올림픽이 안 열리면 복안이 있느냐’는 질문을 했다. ‘상상력이 좀 부족한 것 아니냐’는 김진표 회장의 말은 대답이라기보단 핀잔이었다.

국회 취재 초년병 시절부터 절감했다. 국회의원의 정치과정은 상상초월이다. 법률에 따라 어떤 범위 내에서 정치과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측하면 오판이 되기 일쑤다. 국회의원은 스스로 만든 법을 위반하면서도 새로운 결과를 도출할 수 있고, 입법을 통해 위법을 합법화할 수 있었다. 국회의원은 입법을 통해 정치적, 사회경제적 행위를 규정할 수 있고, 만들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정치인은 꿈을 팔고 꿈을 실현해 가는 직업이다. 상상력 충만을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상상력은 정치인에게 없어선 안 된다. 현실을 넘어 미래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출신이 여러 분야에서 활력이 될 수 있는 긍정적 부분이다.

문제는 정치인의 상상력이 잘 통하지 않는 분야도 있다. 외교안보가 대표적이다. 외교안보처럼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에 철저히 입각해 대응해야 하는 분야가 있을까. 그 현실이란 상대국 정부뿐 아니라 자국 여론, 상대국 여론, 제3국 정부와 제3국 여론 등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는 고차방정식이다. 한반도 주변 4강국 대사로 호기롭게 나갔던 정치인 중 성공의 예를 찾기 어려운 이유일 수 있다.

성공은커녕 독이 된 경우도 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에 의욕적으로 나섰다가 국민 여론을 무시한 2015년 12월28일 합의로 지금도 부담을 주고 있는 사례가 있다.

강창일 신임 주일대사가 부임 후 2주간의 격리를 끝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일본에서 공부하고,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역임한 강창일 대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일본 전문가이자 일본통이다. 의정활동 중에도 한·일 역사문제와 현안에 대해 탁월한 식견을 보여줬음을 잘 알고 있다.

당부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너무 의욕을 앞세우지 말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한·일은 현재 구조적으로 대치하고 있다. 상상력보다는 대사 한 명의 노력으론 한·일 관계 개선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을 대사 직무의 출발점으로 삼았으면 한다.

특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정부가 새로 출범한 국제정세의 급변기다. 중국 견제를 분명히 하는 바이든 행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는 달리 버락 오바마 행정부처럼 한·일 양국에 관계 개선을 위해 직접 압력을 넣을 수 있다. 우리도 부담이지만 일본도 부담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우리 입장을 적극 관철할 필요가 있다. 섣불리 움직여 되치기를 당하기보단 당분간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일본의 소설이자 영화가 있다. 작금의 대일외교 스탠스에 이보다 걸맞은 제목이 있을까. 여기의 한 대목이 ‘기적이란 그렇게 쉽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한·일 관계에서 과욕은 금물이다.

김청중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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