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는 매춘? 얼빠진 논문" 하버드 동료 교수·학생들도 비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강제 동원된 성노예가 아닌 매춘이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해 논란이 된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를 향해 하버드 학내외에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하버드대 학내 신문인 ‘하버드 크림슨(The Harvard Crimson)’은 7일(현지 시각) ‘위안부가 일제에 자원했다는 하버드 교수의 논문이 국제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존 마크 램자이어 하버드대 교수 논문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신문은 한·미 다수의 법률학자, 역사학자들이 램자이어 교수의 주장에 몇가지 결함이 있다고 판단했으며 논문 출처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하버드대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는 카터 에커티 교수는 램자이어 교수 주장에 대해 “경험적·역사적·도덕적으로 엄청나게 부족하다”고 평했다. 에커티 교수는 같은 대학 앤드루 고든 역사학과 교수와 함께 램자이어 교수의 논문을 반박할 저널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대 역사학과 교수는 램자이어 교수의 논문에 대해 “충격적”이라며 “근거 자료가 부실하고 학문적 증거를 고려할 때 얼빠진 학술작품”이라고 했다. 이어 “램자이어 교수는 앞뒤 사정이나 실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해당 논문은 개념적으로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쓰였다”고 했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연구해온 뉴욕시립대 사회학과 민병갑 교수는 램자이어 교수의 논문에 대해 “일본 제국주의의 논거에만 근거한 주장”이라며 “램자이어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가 성노예라고 입증한 이전의 수많은 연구부터 반박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윤리담당 변호사를 지낸 리처드 페인터 미네소타대 로스쿨 교수는 트위터를 통해 “(램자이어 교수 논문에 따르면 일본군이 저지른) 강제 성착취가 단지 계약에 의한 것뿐이란 말인가”라고 반문하며 “추상적 이론과 대안적 사실이 진짜 사실을 왜곡할 때 벌어지는 일”이라고 썼다.
신문은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등을 인용해 램자이어 교수가 일제 전범기업 미쓰비시 그룹으로부터 후원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하버드대에 재학 중인 한인 학생들도 램자이어 교수를 비판했다. 하버드대 로스쿨 한인 학생회(KAHLS)는 지난 4일 성명을 내고 “(이번 논문이) 인권 침해와 전쟁 범죄를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을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미 전역의 법대 학생 800명도 이 성명에 동참했다. 하버드대 학부 한인 유학생회(KISA)는 대학 본부에 램자이어 교수의 사과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램자이어 교수는 신문 인터뷰에서 “로스쿨 학생들의 책임. 이번 논문에 대해 학생들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하면서도 더는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연구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앞서 램자이어 교수는 오는 3월 출간 예정인 학술지 ‘인터내셔널 리뷰 오브 로 앤드 이코노믹스’ 제65권에 ‘태평양전쟁에서의 성계약’(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게재했다. 논문 정보 사이트에 실린 초록을 보면, 램자이어 교수는 위안부 여성들과 고용주인 위안소가 계약 관계였으며 그 계약의 역학 관계를 살펴보면 양자가 주어진 조건 하에서 상대와 상호작용하며 최대한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게임 이론’의 논리가 반영됐다고 주장했다.
램자이어 교수는 1954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자마자 일본 미야자키현으로 이주해 18세까지 살았고 일본법과 법경제학을 전공했다. 미국 내 일본학 발전과 일본 사회·문화 이해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2018년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인 욱일장을 받기도 했다.
램자이어 교수의 주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성노예로 규정한 국제 사회의 보편적 인식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1993년 ‘고노 담화’와도 배치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강제 성노예(enforced sex slaves)’라고 표현하는 것은 유엔의 권고 사항이다. 지난 1996년 채택된 유엔 인권위원회 보고서에 ‘성노예’라는 표현이 등장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통용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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