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논의 앞둔 '인신매매 방지법'..엇갈린 시선

최민지 기자 2021. 2. 7.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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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규정과 다른 '인신매매·착취' 용어 사용..15일 소위 상정
시민사회 "국제사회에서 통용 않는 개념..처벌규정도 없어"
대표발의 이수진 의원 측 "유엔 취지 따른 제정, 처벌 충분히 준용"

[경향신문]

지난 5일 수화기 너머 필리핀 이주 노동자 A씨(31)의 목소리가 떨렸다. 7년 전 경기도의 한 미군 부대 앞 유흥업소에서 보낸 6개월에 대해 그는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가수를 꿈꿨던 A씨가 예술·흥행 비자(E-6)를 받고 한국에 도착했을 때, 그의 일터는 일자리를 소개해준 국내 공연기획사의 약속과 많이 달랐다. 기획사 측 설명과 달리 업소는 공연을 하지 않았다. 손님들에게 주스를 팔면 그 값의 일부분을 포인트로 쌓아 임금으로 받았다. 업주 B씨는 유사 성행위와 성매매를 강요했고 여권 압수와 감금은 일상이었다.

시민단체 등의 도움을 받아 탈출한 A씨는 업주를 인신매매 혐의로 고소했지만 B씨는 성매매 알선과 상습강제추행 등 혐의로 입건됐다. 업주가 받은 처벌은 징역 1년·집행유예 2년뿐이었다. ‘사람을 사고파는 행위’로 모호하게 규정된 형법상 인신매매죄가 업주에게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A씨와 같은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인신매매·착취방지와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로 국회에 제출됐다.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이 안의 인신매매 정의가 모호하고, 처벌규정이 없다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의원 안은 여성가족부 등 관련 정부부처의 의견이 반영된 사실상의 정부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의원 안은 인신매매의 정의와 관련해 ‘인신매매·착취란 성매매 착취, 성적 착취, 노동력 착취, 장기 등 적출 등의 착취를 목적으로 사람을 모집, 운송, 전달, 은닉, 인계 또는 인수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그간 형법이 인신매매를 사람의 ‘매매(買賣)’로 한정해 국제사회가 정한 인신매매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을 보완한 것이다. 2000년 유엔이 채택한 인신매매 방지 의정서는 인신매매를 ‘착취를 목적으로 상대방을 속이거나 취약한 지위를 이용하려고 강제적 수단을 사용하는 행위’로 규정한다.

A씨를 대리했던 공익법센터 어필의 김종철 변호사는 “이 의원 안의 인신매매 정의 규정이 의정서상 정의에 가까워지긴 했다”면서도 “국제사회에서 통용되지 않는 ‘인신매매·착취’라는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모호하게 규정된) 현행 형법상 인신매매죄 적용이 어렵게 했다. 이런 정의를 통해 인신매매 관련 통계에는 많이 잡히게 해 한국의 인신매매 처벌이 약하다는 국제사회 비판을 피하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제정안이 인신매매 범죄 처벌 조항을 별도로 두지 않은 점도 문제라고 지적하며 “인신매매가 처벌되지 않는 기존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인신매매죄 형법 조항이 생긴 2013년 이후 지난해 12월까지 이 조항으로 처벌된 사례는 8건에 불과하다. 김 변호사는 “A씨 사건이 똑같이 일어난다 해도 이 의원 안으로는 B씨가 인신매매죄로 처벌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를 식별하는 절차 규정이 빠지거나, 미등록 외국인이 피해자인 경우 강제 출국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김 변호사는 “여가부 초안에 법무부와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가 조금씩 손을 대며 누더기가 됐다”고 말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오는 15일 법안소위에 해당 법안을 상정한다. 이 의원실 측은 3월 내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한다. 의원실 관계자는 "본 법안은 UN국제의정서의 취지에 맞게, 인신매매‧착취범죄의 ‘피해자 보호’를 위해 새로 준비된 것이다. UN국제의정서는 ‘인신매매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의 필요성을 선언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 법은 지금까지 국내법에 규정되지 않은 ‘피해자 보호’를 법제화하기 위해 마련됐다"며 "법이 제정되면 피해자는 제6조에 의해 보상과 배상의 권리를 보장받고, 정부는 제14조에 의해 피해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보호하기 위한 피해자 식별‧보호지표를 개발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인신매매 및 착취범죄의 개념은 제정안 제2조 정의조항에서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제정안 2조를 보면 성매매 착취부터 노동력 착취, 장기매매 범죄 이르기까지, 인신매매와 착취에 관한 38개의 죄목이 총망라됐다"며 "또한 처벌조항은 각 범죄별로 형법뿐 아니라 아청법 등 특별법들에 가중처벌까지도 규정돼 있으므로, 현재 이 법안이 규정하고 있는 죄목의 처벌 사각지대는 없다. 문제로 삼고 있는 낮은 형량은 형벌조항의 미비가 아니라 재판부의 가벼운 양형 판단으로 인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통상적으로 새로운 법 제정에는 다양한 의견들이 제기되는 만큼, 여가위 차원의 공청회 등에서 충분한 의견수렴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어필과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등이 모인 인신매매특별법제정연대(가칭)는 처벌 조항을 포함한 시민사회안을 마련해 국회에 발의할 계획이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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