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발 성과급 논란..2030은 부모세대와 다르다
[경향신문]
SK하이닉스에서 촉발된 ‘성과급’ 논란이 삼성전자, LG화학 등 또 다른 대기업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돈 잘 버는 일부 대기업이나 특정 사업부의 문제가 아니라 불공정하고 불투명한 것을 참지 못하는 2030세대의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이들은 성과급을 ‘가욋돈’ 같은 보너스가 아니라 정당한 보상의 한 종류로 여기고 있었다. 회사 마음대로 주는 성과급이 아니라, 납득할 만한 기준에 따른 ‘공정한 급여’로 책정되길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 “평생직장 사라졌는데…”
기업 간 연봉 차이 만드는 핵심 요소
“노력에 대한 평가라 생각해 민감”
“보상 적으면 언제든 이직할 수도”
7일 국내 4대 그룹(대기업집단)에 근무하는 2030세대의 얘기를 들어 보니, 이들은 성과급에 대한 인식이 기성세대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기성세대는 성과급을 ‘부수적으로 추가된 소득’으로 여겨온 반면 이들은 성과급이 연봉 차이를 만드는 핵심 요소라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대기업에 8년째 다니는 A씨는 “대기업이라고 해서 기본급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며 “회사가 기본급은 억누르고 성과급을 늘려 불만을 불식시켜 왔는데, 최근엔 기업별로, 기업 내부에서도 사업부별로 성과급 차이가 커지다 보니 불만이 쌓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금 다니는 대기업이 ‘평생직장’이라는 인식도 희박했다. 국내 유수의 대기업에 10년째 다니는 B씨는 “선배들은 지금 성과급이 적어도 나중에 회사가 잘되면 더 크게 보상해줄 거라고 믿었다는데, 우리는 ‘이번에 못 받으면 나중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사이에서는 ‘지금 받는 보상이 적으면 기회가 될 때 언제든 이직할 수 있다’는 생각도 강하다.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다 보니 비교도 많이 하게 된다. 다른 회사 성과급에 대한 정보를 뉴스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손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로 성과급이 높은 회사들이 알려지다 보니 그에 따른 불만도 쌓인다. 자동차 업계에서 일하는 C씨는 “대학이나 학점은 노력에 따른 결과라고 생각하는데, 대기업 입사는 ‘내가 이 기업에 왜 붙었는지, 왜 떨어졌는지’ 설명도 잘 안 되고 우연적인 요소가 많다”며 “그런데 어느 회사에 입사했느냐가 몇년 뒤에 엄청난 성과급 차이로 벌어지니 부당하단 생각이 든다”고 했다. 기본급은 액수가 적더라도 ‘그 정도 수준을 받아들이고 입사했다’고 생각해 상대적으로 불만이 적은 편이다. 하지만 성과급은 입사 후 ‘나의 노력에 대한 평가나 보상’이라고 생각해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 객관적 잣대·절차적 공정 우선
‘공정’ 민감한 세대인식과도 닿아
성과급 액수, 경영진 자의적 결정에
“납득할 만한 기준을 제시” 요구
젊은 세대들은 무엇보다 성과급이 명확한 기준 없이 경영진의 자의적 판단으로 결정된다는 데 불만이 컸다. 디스플레이 대기업 5년차인 D씨는 “요즘은 적자라 성과급이 거의 없지만 몇년 전에 입사 이후 최대 영업이익이 났을 때에도 ‘업계 전망이 나쁘다’면서 조금밖에 안 주더라”며 “영업이익이 다르면 성과급도 달라야 하는데, 동료들끼리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D씨는 “당장 성과급 얼마 더 주는 것보다, 올해 조금 받더라도 회사가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점수나 자격시험 등 명확한 기준에 따른 평가가 공정하다고 믿는 젊은 세대의 전반적인 인식과도 맞닿아 있다. SK하이닉스의 사례를 보면, 입사 4년차 직원이 사장에게 보낸 전체 공개 메일에서 성과급 지급 기준을 밝히라고 요구한 것이 논란을 키웠다. 결국 SK하이닉스는 지난 4일 내년부터 성과급을 영업이익과 연동 책정해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로 노조와 합의했다.
대기업들은 성과급 책정 권한이 회사에 있고, 책정 기준은 회사 기밀이라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 강하다. 그러나 경영진이나 사측이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젊은 세대를 납득시키려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 담론을 연구해 온 김정희원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는 “2030세대는 굉장히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살았지만 주택 등 삶의 기반을 마련하긴 힘든 세대다. 그러다 보니 공정성에 대한 민감도가 굉장히 높다”며 “기업들이 성과급을 책정할 때 관련 정보를 어느 정도 공개하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소통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미덥 기자 zor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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