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시여, 왜 이리 불공평합니까" 천재를 향한 질투와 분노
훌륭한 인격의 궁정음악가 살리에리
경박하고 천재적인 모차르트 만난 후
재능 앞에서는 노력도 소용없자 좌절
모차르트 파멸시키기 위해 신에 도전
무대에 꽉 찬 긴장 객석 숨죽이게 해
“내가 추구했던 고결함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지? 내가 신께 맹세했던 것들은 다 어디로 간 거야. 그 모차르트라는 인간은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야. … 나는 단순히 잉크로 그려진 악보 따위가 아닌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보고 있습니다. … 당신은 제게 타인의 재능을 정확히 알아보는 재능을 주셨네요. 그 유일한 재능으로 나는 나 자신이 영원히 평범한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모차르트를 향한 살리에리의 질투는 진정한 음악의 세계를 자신에겐 보여만 주고 거둬간 신을 향한 분노로 바뀐다. 그리고 신의 사랑을 독차지한 모차르트를 파멸시키는 길을 택하는 것으로 신에게 도전한다.
“오늘밤 이 도시의 어느 술집에선 그 어린아이가 깔깔대며 한 손으로는 당구채를 든 채로 다른 한 손으로는 생각나는 대로 음표를 써 내리겠죠. 하지만 그 음악은 절대적인 아름다움이 될 것이고, 내가 두 손으로 신께 기도하며 몇 날 며칠을 고치고 또 고쳐가며 써 내려간 음악은 한낱 보잘것없는 쓰레기가 되겠죠. 불공평한 신이시여. 인간을 조롱하지 마. 당신은 불공평해. 나는 앞으론 당신의 장난에 굴복하지 않을 거야, 절대. 욕망을 갖게 하셨으면 재능도 주셨어야죠. 이제부터. 우린 영원한 적입니다. 영원한 적.”
이처럼 죽음을 앞둔 음울한 말년의 살리에리가 등장하며 시작한 공연은 질투와 분노로 거센 감정의 폭풍을 일으키며 객석을 숨죽이게 한다. 무대에 꽉 찬 긴장은 모차르트 영혼엔 불멸을, 살리에리 영혼엔 죽음을 갖다주는 ‘레퀴엠’이 살리에리 도움으로 완성되면서 풀어진다. 다시금 천재가 창조한 음악 세계에 압도된 살리에리는 죽어가는 모차르트에게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나 헛된 일이다. 살리에리의 마지막 선택은 자신처럼 하늘이 내린 불공평에 신음하는 모두를 위로하는 ‘용서’다. 무대에 홀로 서서 “여러분이 땅으로 돌아갈 시간이 왔을 때 내 이름을 부르세요. 그리고 여러분이 지독한 실패를 느꼈을 때, 자비라고는 없는 신의 조롱을 느꼈을 때, 내 이름을 부르세요. ‘안토니오 살리에리. 평범한 자들의 수호자.’ 내가 용서해드리겠습니다. 당신을 용서합니다. 당신을 용서합니다. 당신을 용서합니다”라고 선언한다. 내 안의 ‘살리에리’를 떠올리던 객석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안방극장에서도 여러 번 상영된 밀로시 포르만 감독의 걸작 영화 ‘아마데우스(1984)’가 워낙 유명하나 ‘아마데우스’는 연극이 먼저다. 젊은 모차르트의 죽음은 당대부터 여러 소문이 돌았는데 결국 러시아 대문호 푸시킨이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한 것으로 설정한 짧은 희곡을 썼을 정도다. 이를 다시 ‘에쿠우스’와 ‘블랙 코미디’, ‘고곤의 선물’ 등으로 현대 가장 성공한 극작가로 손꼽히는 피터 셰퍼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만들었다. 1979년 영국 국립극장에서 초연됐고 이듬해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됐다. 영국 초대 살리에리는 영화 ‘사계절의 사나이’ 토머스 모어 역으로 유명한 폴 스코필드, 미국 초대 살리에리는 바로 ‘반지의 제왕’ 간달프로 유명한 이안 맥켈런이다.
피터 셰퍼가 워낙 유명했고, 엉뚱하게 모차르트 독살설을 다룬 연극으로 알려져 세계적 화제가 되면서 ‘아마데우스’는 우리나라에도 거의 실시간으로 들어왔다. 기록을 찾아보면 80년 극단 춘추가 국내 초연으로 소개한 후 몇 차례 공연됐는데 원로배우 윤주상이 살리에리, 송승환이 모차르트를 맡은 적도 있다. 게다가 극단 춘추 초연은 어엿하게 피터 셰퍼에게 당시 돈 100파운드, 약 40만원을 원작료로 지불했다고 한다. 과장급 월급이 50만원이던 시절이다.
지난해 말 개막했던 이번 공연은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중단됐다가 지난 2일 재개됐다. PAGE1 프로덕션으로 2018년 초연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대호평받은 이지나 연출작. 객석 1000석 규모의 대극장에 연극을 올리는 건 큰 도전인데 무대를 빈틈없이 채우는 데 성공했다. 살리에리 역에 지현준·김재범·차지연, 모차르트 역에 최재웅·백석광·박은석·성규·강영석이 나온다.
공연이 재개된 지난 2일 무대는 차지연·강영석 몫이었다. 건강이상을 극복한 후 지난해 5월 국내 초연 모노극 ‘그라운디드’에서 엄청난 연기를 보여줬던 차지연은 이날 다시 한 번 천재에 대한 질시와 신을 향한 원망에 자멸하는 살리에리로서 객석을 압도했다. 성별 상관없이 배역을 맡는 젠더프리가 유행한 지 한참인데 이날 공연에선 그러한 점조차 의식하지 못할 정도였다. 여러 작품에서 활발히 활동해온 강영석 역시 난해한 모차르트 역을 맡아 제 몫을 했다. 독특한 웃음소리를 내며 한없이 저속하면서도 순수하고 천재성이 번득이는 양면적인 천재로서 살리에리 비중이 큰 무대의 균형을 잡았다. 서울 광림아트센터에서 2월 14일까지 공연예정인데 상황이 가능하면 연장할 예정이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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