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일 걸어 청와대로 "내가 보이십니까"
[경향신문]
고문·탄압 ‘짓밟힌 노동인권’ 상징
해고 36년·암투병 속 34일 걸어
청와대 앞 단식 농성단과 만나
“포기하지도 쓰러지지도 않겠다”
서울 입성 직전 교섭 제안한 사측
김씨에 사과·복직 등 여전히 난색
정부·정치권 향해 ‘생을 건 외침’
“문재인 대통령님 내가 보이십니까. 함께 싸워왔던 당신이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후에도 여전히 해고자인 내가 보이십니까. 전두환 정권에서 해고된 김진숙은 왜 36년째 해고자인가. 그 대답을 듣고 싶어 34일을 걸어 왔습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61)이 7일 청와대 앞에 섰다. 여전히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인 그는 이날도 푸른색 작업복 차림이었다. 암 투병 중에도 총 40일의 여정, 34일을 걸어 부산에서 청와대 앞까지 왔다. 발언하는 김 지도위원을 둘러싸고 대우버스, 한국게이츠, 코레일네트웍스, 아시아나케이오, LG트윈타워 해고노동자 등이 함께했다.
김 지도위원은 1986년 2월 노조 집행부의 어용성을 폭로하는 유인물을 제작·배포했다는 이유로 경찰로부터 3차례에 걸쳐 고문을 당한 뒤, 그해 7월 징계해고됐다.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민주화위원회)가 2009년, 2020년 두차례 그의 복직을 권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해고자로 꼬박 36년을 살면서도 김 지도위원은 노동자들과 함께했다. 2011년 1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김주익 지회장이 숨졌던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올랐다. 그해 11월 노사가 합의를 하며, 309일간의 농성을 마치고 내려왔다. 2018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으나 2019년 12월 대구 영남대의료원에서 고공농성 중이던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 100㎞ 도보투쟁을 벌였다.
이번 ‘희망뚜벅이’ 도보행진 역시 그의 복직을 위해 청와대 앞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간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시작했다. 김 지도위원의 복직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모임 ‘리멤버 희망버스 단식단’은 지난해 12월22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무기한 노숙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이날로 48일차다. 7명이 함께 시작했으나 5명이 실신해 응급실로 향했고 두 명만 남았다. 이들은 김 지도위원이 권고한 끝에야 이날 단식을 중단했다.
지난해로 그의 법적 정년은 지났다. 당초 김 지도위원 측은 사측에 세 가지를 요구했다. 먼저 사과다. 회사가 부당해고 사실을 공식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어 재취업이 아닌 ‘복직’이 이뤄져야 하며, 2009년 민주화위원회의 복직 권고 이후 ‘임금 정산 및 퇴직금’ 지급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진중 측은 지난해 12월 복직이 아닌 ‘재취업’과 공식 사과 없는 위로금 8000만원을 제안했다. 해고 기간의 임금 지급은 업무상 배임이 될 수 있다며 거부했다.
지지부진하던 협상은 김 지도위원의 서울 입성을 앞둔 지난 4일 사측 요청에 따라 이뤄졌다. 노사가 만난 첫 공식 교섭이었다. 김 지도위원 측에 따르면 한진중은 사과 대신 ‘유감표명’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재취업과 위로금 지급에 대한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 교섭은 공전했고, 사측은 다음날 교섭 불가를 전했다.
김 지도위원은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이를 빌미로 회사에서 해고됐다. 해고 노동자로서 그의 삶 자체가 우리 현대사에서 되풀이됐던 노동자에 대한 국가폭력의 대표 사례가 됐다. 그의 복직은 개인의 명예회복을 넘어 민주주의와 인권을 회복하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정부와 정치권은 그간 중재자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최근 들어 박병석 국회의장, 정세균 국무총리,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등이 김 지도위원 측을 만났지만, 별다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사이 김 지도위원은 청와대 앞에 도착했다. 도보행진은 종료됐지만, 복직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포기하지 맙시다. 쓰러지지도 맙시다. 저도 그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고희진·최민지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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