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일 도보행진 마무리..김진숙 "나는 36년간 유령이었습니다"

김윤주 2021. 2. 7.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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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 변호사가 대통령인 나라에서 왜 아직도 노동자들은 굶고 해고되고 싸워야 하는가. 이주노동자들은 왜 비닐하우스에서 살다 얼어 죽어야 하는가. 전두환 정권에서 해고된 김진숙은 왜 36년째 해고자인가. 그 대답을 듣고 싶어 34일을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36년간 나는 유령이었습니다. 자본에게 권력에게만 보이지 않는 유령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내가 보이십니까."

7일 오후 2시50분께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 선 한진중공업의 마지막 해고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주먹을 불끈 쥐고 오른팔을 치켜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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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뚜벅이 행진 "연대의 시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의 마지막 해고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지난해 12월 30일 복직없이 정년없다며 청와대를 향해 걷기 시작한 희망뚜벅이 행진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들머리에서 약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노동인권 변호사가 대통령인 나라에서 왜 아직도 노동자들은 굶고 해고되고 싸워야 하는가. 이주노동자들은 왜 비닐하우스에서 살다 얼어 죽어야 하는가. 전두환 정권에서 해고된 김진숙은 왜 36년째 해고자인가. 그 대답을 듣고 싶어 34일을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36년간 나는 유령이었습니다. 자본에게 권력에게만 보이지 않는 유령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내가 보이십니까….”

7일 오후 2시50분께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 선 한진중공업의 마지막 해고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주먹을 불끈 쥐고 오른팔을 치켜들었다. 지난해 12월30일 부산에서 복직과 명예회복을 요구하며 도보 행진을 시작한 지 40일 만(실제 도보 행진은 34일)이다. 700여명이 참여한 이날 행진은 오전 11시 서울 동작구 흑석역에서 출발해 한진중공업 본사가 있는 용산구 남영역,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 단식농성장을 거쳐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마무리됐다. 김 위원의 복직을 촉구하며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48일간 단식농성을 했던 이들은 이날 김 위원과 만난 포옹한 뒤 단식을 중단하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날 낮 12시40분께 남영역에서 만난 김 위원은 암 투병 중에도 한파를 헤치며 400여㎞를 걸어왔음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김 위원에게 희망뚜벅이 행진은 36년 전에 경험한 고문과 해고 등의 국가폭력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되새김질하는 시간이었다. 그는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대공분실에서 3차례 고문을 당하고 부당해고를 당했다. “고문당했을 때를 포함해 36년 전 해고됐을 때 당시의 상황들이 주로 떠올랐습니다. 그 당시에는 피하려고만 했는데, 비로소 저 자신도 36년 전의 국가폭력을 직시할 수 있게 됐어요.”

희망뚜벅이 행진은 ‘연대의 시간’이기도 했다. 이날 행진에는 대우버스, 한국게이츠(현대차 협력사) 등 해고노동자들이 김 위원과 함께 발을 맞췄다. 김 위원은 “해고노동자들에 대해 보도로만 접하다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 사연을 들으니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대우버스 해고노동자 가운데 한 명인 심대인(45)씨는 “같은 해고노동자로서 36년째 싸우고 계신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아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날 낮 1시10분께 김 위원은 서울역 철도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의 농성장을 찾아 “해고 없는 세상을 위하여 투쟁”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서울에서 행진에 합류한 시민들은 ‘수고하셨습니다’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응원합니다” “김진숙 파이팅” 등을 외쳤다. 제주 강정마을에서 새벽 비행기를 타고 온 오두희(66)씨는 “국가로부터 부당해고라는 인정을 받았는데 복직하지 못한 김진숙씨의 사연이 강정마을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느꼈다”며 “김 위원이 복직하고 제자리로 돌아가야 비로소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에 사는 안영신(47)씨는 “크레인농성 당시 희망버스를 5차례 직접 탔는데, 우리 사회 노동자들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걸 일깨워준 경험이었다”며 “노조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고문하고 해고를 한 국가폭력이 잘못됐다는 선언을 대통령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경찰은 낮 1시께 서울역 앞에서 “인원을 나눠 이동해달라”며 희망뚜벅이 일행을 한차례 막아섰고,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 인파가 몰리자 “감염병예방법·집시법 위반”이라며 확성기로 수차례 경고 방송을 했다. 그러나 도보행진 참가자들과 경찰의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도보행진은 마무리됐지만 김 위원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과 함께하는 이들에게 외쳤다. “앞으로 얼마나 더 먼 길을 가야 할지 모를 우리들. 포기하지 맙시다. 쓰러지지도 맙시다. 저도 그러겠습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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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주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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