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표현 쓰지 말자] '결정장애' '꿀먹은벙어리' '집단적 조현병'
[이런 표현 쓰지 말자] 장애를 열등한 것으로 규정, 장애 비하 표현 정치권에서도 남발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정치권에는 유독 장애를 뜻하는 말로 상대를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을 열등하게 보는 것이다.
미디어오늘은 5년 전인 2016년 4월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상대 비난용으로 '미쳤냐'는 표현을 쓰는 것을 고민하자고 제안했다. 정치 노선과 생각이 다르면 비판할 수 있고, 일반 국민은 정치인들을 풍자·조롱할 수 있다. 이 과정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이나 장애 비하 표현을 사용하는 건 곤란하다.
'미쳤다', '돌았다', '정신 나갔다' 등 정신 장애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반인권·불법 행위를 한 이들을 비판해도 괜찮냐는 물음이다. 정신 장애인 대다수는 마음의 상처가 많은 이들일 뿐이지만 비윤리적 범죄 집단처럼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정신 장애를 뜻하는 표현이 일상에서 욕설로 사용되기도 한다.
[관련기사 : 장애인의 날, “미쳤냐”는 말도 다시 돌아봅시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지난 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나경원 서울시장 예비후보에 대해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미친듯이 설쳤다”고 평가했다.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나 예비후보가 불법 행위를 했거나 당시 제1야당 원내대표로서 잘못된 정치 행보를 보였다는 주장을 하며 굳이 '미친듯이 설쳤다'고 해야 할까. 반대로 미친 사람들, 정신 장애인들은 나 예비후보처럼 행동할까?
이재오 4대강국민연합 상임대표는 지난달 21일 “금강·영산강 보 파괴는 미친 짓”이라고 했다. 자신이 집권 세력이던 시절 추진했던 사업을 반대하면 정신장애인들이 하는 짓이 되는 걸까. 실제 미친사람들, 정신장애인들이 그 자체로 부정, 비도덕 혹은 모욕의 대명사로 불리는 건 타당할까.
지난 1일 국민의힘 의원 31명은 북한 원전(핵발전소) 지원 의혹 관련 여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을 우습게 아는 것이 아니라면 '집단적 조현병'이 아닌지 의심될 정도”라고 했다.
이에 정신장애인 당사자단체들은 '집단적 조현병' 발언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사외이사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정치적 의도를 갖고 정신장애 혐오를 상대방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저게 정상인처럼 비쳐도 정신장애인들이 많다”며 “이 사람들까지 포용하긴 힘들 거라 생각한다”고 했고,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 전 대표를 비판하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정신장애인”이라고 했다.
박인순 전 자유한국당 의원은 “조국 이 사람은 정신병이 있다”고 했고, 진중권씨도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가리켜 “정신 상태가 조금 걱정된다”고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사회를 정신분열적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꿀먹은 벙어리' 발언도 비판을 받았다. 김재식 국민의힘 부대변인은 지난 4일 박영선·우상호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공천 여부를 '당 결정에 따른다'고 하자 “정작 민주당은 왜 꿀먹은 벙어리인가”라고 논평했다.
정치권에서 장애 비하 용어를 쓰면 언론은 이를 헤드라인에 올리고 많은 이들이 이런 표현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된다. 종종 인권단체들이 인권위에 진정을 넣으면 잠시 잠잠하다 또다시 반복하는 패턴이다.
'결정장애', '선택장애'도 곱씹어 볼 말이다. 여기서 '장애'는 열등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지난해 8월12일 조선일보 기사 “이상돈 '4대강이 홍수예방? 황당한 거짓말' '문대통령은 결정장애'”를 보면 이상돈 전 의원이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문 대통령이 '결정장애'라도 있는가 싶다”고 말했고, 조선일보는 이를 제목에 넣어 강조했다. '대통령이 얼른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 '대통령이 빠른 시일 내 결정해야 한다' 등 대체가 가능한 표현이 있다.
정치권과 언론은 적어도 이미 지적이 나온 표현만이라도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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