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환자 살린 미래의료, 본격 출발!"
"61세 당뇨병 기저질환 감염자, 혈당과 산소포화도 이상 신호!"
지난해 3월 고려대 안암병원 감염내과 손장욱 교수의 스마트 폰에 메시지가 울렸다. 경북 경주시의 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에 입원한 환자의 상태가 의심된다는 것. 손 교수는 급히 인근 구급차를 불러 환자에게 산소 호흡기를 장착시켜 인근 병원으로 옮겼다. 경주 생활치료센터에서 연거푸 벌여졌던 '작은 기적들'은 정부의 지원으로 6개 의료기관, 8개 정보통신 기업 등이 만든 '정밀의료 병원 정보 시스템(P-HIS·Precision Hospital Information system)' 덕분에 가능했다.
당시 생활치료센터는 실내 감염 위험과 의료진의 부족으로 수용 환자들을 돌보는데 쩔쩔 맬 수밖에 없었다. 이때 고대의료원 의료지원단이 해결책을 제시했다. 환자들의 스마트 폰에 P-HIS 앱을 설치하고 자신의 생체정보를 기록케 했다. 인공지능(AI)은 이들 정보 가운데 위험신호를 감지해 의료진에게 알려줬다.
개인건강기록(PHR) 플랫폼을 통한 의료·건강관리의 유용함을 생생히 보여준 사례였다. PHR 플랫폼은 병원들의 의료기록, 개인의 생체활동기록, 유전자 정보 등을 한꺼번에 보관하고 인공지능과 데이터분석솔루션(CDW)을 활용해 개인 맞춤형 진단, 치료 방향을 제시토록 하는 '의료정보의 은행' 격이다. P-HIS는 PHR을 클라우드 서버에서 작동케 해서 활용도를 극대화시킨 플랫폼이다.
고려대안암병원 재활의학과 이상헌 교수(57)는 이 정부과제를 이끌면서 맞춤형 의료의 선봉장에 서게 된 의학자다. 이 교수는 4년 동안 온힘을 기울였던 과제를 그대로 묻힐 수 없어, 이를 실현하는 벤처기업을 만들었다. 그가 대표이사로 있는 기업 '휴니버스'는 고려대의료원, 삼성의료원, 네이버 등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PHR 플랫폼은 미래의학의 토대여서 미국, EU 등에서는 선두 경쟁이 펼쳐지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멈칫멈칫했다. 이 플랫폼을 구축하려면 병원들이 의무기록을 공유하고, 용어와 질병 코드 등을 통일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주요 병원들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2017년 정부 차원에서 대규모 과제를 발주시켰고 이상헌 교수가 이 과제의 결과물을 탄생시킨 것.
이 과제가 발동하면 과학자들은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서 맞춤형 치료법을 개발하고, 제약회사는 신약 개발의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벤처기업이 합류해서 개인별 건강관리 앱을 개발하면, 환자들은 쉽고 편하게 맞춤형 건강관리를 할 수 있게 된다.
"의료정부 분야에서 정부의 연구과제가 상용화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고려대의료원이 미래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고, 뜻을 같이 하는 병원과 기업들이 있어서 가능했지요. 이를 발전시켜 국민 건강에 기여하는데 제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이 교수는 최근 삼성서울병원과 용어, 질병 코드 3만7000여개의 표준화를 이뤄 PHR 사업의 토대를 다졌다. 이를 바탕으로 올 3월 고려대안암병원을 시작으로 고려대구로병원(6월), 고려대안산병원(8월)에서 기존 전자의무기록(EMR)을 클라우드 기반의 P-HIS로 바꾸는 작업을 한다. 클라우드 기반으로 PHR 시스템의 유용성을 확인하고나서는 현재 대기 중인 17개 병원을 거쳐 전국의 병원으로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이 교수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자신이 의료정보의 고갱이에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는 어렸을 때 과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이모부인 전병훈 고려대 세종캠퍼스 부총장의 권유에 따라 고려대 의대에 입학했다. 예과 때에는 검도부에 들어가서 휴일이나 방학 때도 목검과 살았다. 이 교수는 검도 공인 3단으로 현재 고려대 검도부 지도교수이기도 하다. 검도에서 비롯된 체력과 정신력, 자신감 덕분일까, 이 교수는 목표를 세우면 포기를 모르는 추진력으로 주위에 정평이 나있다.
이 교수는 고려대 구로병원 재활의학과 전임의로서 척추, 근골격계의 통증관리를 중심으로 재활이 필요한 온갖 환자를 돌보다가 고려대 안산병원이 증축되자 자리를 옮겼다. 전임의 신분이었지만 과장대리 직함으로 매일 아침 6시 반부터 자정을 넘겨서까지 하루 70여 명의 환자를 보며 '1당10'의 역할을 했다. 그런데 헉! 2008년 교수 심사를 앞두고 논문 발표가 교수임용의 주요 잣대로 규칙이 바뀌었다. 안암, 구로병원의 전문의와 달리 밤잠 자지 않고 환자를 돌보느라 논문 작성은 엄두도 못 냈던 이 교수는 황당하고 허탈했지만 주저앉지 않았다.
그는 미국으로 눈을 돌렸다. 뉴욕주립대 러스크재활병원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던, 배명고 선배 안정환 교수에게 SOS를 보냈다. "선배님, 몇 달만 임상연수를 할 수 있을까요?"
이 교수는 러스크재활병원에서 재활의학의 첨단의술을 배우면서 미국의 명문대학 45군데에 연구 지원서를 보냈다. 이메일만 보내면 안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편지를 인쇄해서 우편으로 함께 보냈더니 스탠퍼드 대의 영챈 교수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금 당장이라도 척추중재술을 배울 수 있다."
이 교수는 외래교수였던 리처드 더비 박사와 짝을 이뤄 '한 많은 논문'을 쓰고, 또 썼다. 당시 스탠퍼드대에서는 인근 벤처기업이 개발한 플라스마 치료기로 척추질환 통증을 줄이는 시술을 하고 있었는데, 이 교수의 눈에는 약점이 뚜렷하게 보였다. '척추 중심부에 플라스마를 공격하는 것보다 척추에서 튀어나온 수핵을 직접 공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데….' 이 교수가 의료기기 회사에 아이디어를 제안했지만, 회사는 개발에 주저했다. 더비 박사는 특허출원부터 하라고 제안했고, 이를 준비하고 있을 때 고국의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립선암 3기 진단을 받아서 몇 년 못살 것 같은데, 손자들과 같이 살고 싶은데…." 아버지는 몇 년이 아니라 지난해 10월까지 15년을 더 살고 별세했지만, 아들의 길을 만들어줬다.
이 교수는 귀국해서 그동안 그를 원하고 있던 모교의 교수로 복귀했고, 인공장기센터 선경 교수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플라스마 기기를 개발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다음해 국책과제에 선정됐고 2009년 사업화에 성공했다. 척추 수술을 안 하고 튀어나온 부분에 1㎜ 관을 꽂고 플라스마를 쏘아 통증을 줄이는 치료법이 《통증의학》 《신경수술저널》 등 국제학술지에 발표됐고, 우리나라 언론들에도 앞 다퉈 소개됐다. 전국에서 척추 통증 환자들이 몰려왔다.
2013년 김영훈 안암병원장(현 고려대의료원장)이 불러서 조심스레 물었다. "이 교수, 플라스마 기기의 개발 과정을 유심히 봤어요. 연구하면서 무엇이 힘들던가요?" 이 교수가 몇 가지 얘기를 하자 김 원장이 조용히 입을 뗐다. "그럼 이 교수가 연구부원장을 맡아 연구 환경을 개선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다음해 인사가 나자, 병원이 술렁거렸다. 병원에서 어떤 보직을 맡은 적이 없던 중견 의사가 부원장이라니! 전 해에 고려대 안암병원이 구로병원과 함께 국가연구중심병원으로 선정돼, 더욱 더 막중한 자리였다.
2017년에는 김효명 고려대의료원장이 이 교수에게 정부가 곧 병원정보시스템 연구 과제를 공모한다고 하니 준비하라고 귀띔했다. 사실 이 교수도 알고 있는 과제였다. 분당서울대병원이 주인인 과제라고 알려진 사업으로.
분당서울대병원은 병원정보화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었고, 박근혜 대통령 주치의를 지낸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이 분당에서 기획조정실장으로 근무할 때부터 준비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과제 공고가 뜨기도 전에 병원과 기업들이 분당서울대병원 컨소시엄에 들어가려고 줄을 설 정도여서 그곳에서 과제를 맡는 것이 '떼놓은 당상'이라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의료정보에서 이 교수는 초보자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교수는 "안 됩니다" 대신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말 그대로 최선을 다했다.
이 교수는 삼성서울병원의 병원정보시스템이 가장 원활하다고 판단하고, 이 시스템을 만든 삼성SDS를 찾아갔다. 정부 과제에 참여 안한다는 삼성SDS 임원을 설득하고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아주대의료원, 길병원, 분당차병원 등에게도 합류를 제안했다. 네이버와는 클라우드 시스템을 활용키로 합의했다. 그리고 이들 컨소시엄과 밤을 새워 제안서를 작성, '골리앗을 꺾는 다윗'의 기적을 이뤄냈다.
이 교수는 매일 7시 반부터 병원 재활의학과 회의를 하고 8시 반에 회진을 돈 다음부터, 진료를 보는 화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9시부터 휴니버스 대표 겸 의료원의 의료정보, 의료기기 개발 사업을 한다.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의 출판사 '스르핑거 네이처'와 척추중재에 대한 교과서를 쓰는 것 외에는 재활의학에 집중할 수 없어 그의 시술순서를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늘 미안하다.
"의료원 벤처기업을 출범시켰는데, 벤처기업은 성공확률이 5% 이하이지 않습니까? CEO가 100% 몰입해도 성공하기 힘든 데, 재활 환자를 보면서 사업체를 이끌어야 하니까 개인 시간을 줄여서 사업에 몰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적 PHR 플랫폼의 기반을 만들고 전문경영인을 영입하고 저는 진료현장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그때에는 재활의학 환자를 우리가 개발한 정밀의료 시스템으로 치료하고, 원격으로 건강을 관리토록 할 수가 있겠지요?"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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