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5·18과 광주의 정의와 늘 함께하셨죠"
예비 검속 상태서 목포 5·18 주도
선교사 통해 '광주 참상' 세계 알려
5·18 진상규명 투쟁 앞에서 이끌어
20년 동안 '고난받는 자들과 예배'
"목사님이 오늘의 5·18 마련하셨죠"
목사님, 천하장사도 쓰러질 수밖에 없는 생전의 짐을 내려놓으시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오셨으니 이제는 그분 곁에서 편히 쉬소서.
저는 목사님을 뵈올 때마다 저 무거운 짐을 어찌 지고 계실까 늘 궁금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5·18민주화운동 피해자와 가족, 양심수, 미전향장기수, 장애인 등 힘없고 나약한 자들과 국가권력의 위협 속에 방치된 분들에게 언제나 구원의 희망이셨습니다. 그 노고와 정성이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 통일운동의 꽃을 피워가고 있습니다.
목사님, 1995년 9월 말 5·18특별법제정 청원을 위한 100만명 서명 용지를 3부 복사해 리어카에 싣고 국회를 들어서는 저에게 “송군, 이제부터 국민과 함께 일세”라고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목사님께서 5·18진상규명, 책임자처벌, 명예회복, 집단배상, 기념사업의 실마리를 열어주셨습니다. 당신은 고난의 5·18과 광주의 정의와 언제나 함께하셨습니다. 40여년간 당신은 5·18진상규명과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여러 단체의 대표를 수행해 오셨습니다. 5·18구속자협의회, 민주쟁취국민운동 광주전남운동본부 등의 공동대표, 5·18학살자재판회부를 위한 광주전남공동대책위원회 상임대표, 5·18기념재단 이사장에 이르기까지 당신은 5·18에 대한 사명과 책임으로 일관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 오늘의 5·18을 마련하셨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5·18민주화운동이 어떤 의미였는지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습니다. 80년 5월17일 예비검속자 명단에 오른 당신은 우선 몸을 피해 목포의 5·18항쟁을 주도했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 광주의 참상을 선교사들을 통해 세계의 기독교계에 알리는 데 주력하셨죠. 세계선교단체들로부터 답지한 성금으로 광주에서 여전히 부상을 입고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과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생계를 지원하기도 하셨습니다. 1984년 처음으로 독일로 가셔서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세계에 직접 알리면서 당시 독일 종교청 소속 폴 슈나이츠 목사 일가족을 통해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인권 관련 자료들을 일본을 거쳐 독일로 보냈고, 그 자료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직후 모두 다시 한국에 들어와 지금 김대중도서관과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역사를 증언하고 확인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980년 5월27일 진압작전 이후 광주는 고립무원 형극의 도시였습니다. 계엄군의 총탄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 여전히 피투성이인 채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부상자들, 경찰들의 계급특진까지 내걸린 수배자들에게 목사님은 어쩌면 유일한 희망이었는지 모릅니다.
당신의 도움으로 윤한봉 선생이 미국으로 밀항할 수 있었고, 1982년 16명의 회원이 무진교회에서 처음으로 모임을 갖고 5·18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투쟁을 시작하는 5·18부상자회의 깃발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당신의 노력은 광주, 전남지역 양심수들을 직접 지원하는 일로 이어졌고, 1980년부터 시작한 ‘고난받는 자들과의 예배’는 20년 동안 이어져 민주화운동 활동가들의 울타리가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풀려나온 저와 같은 후학들이 다시 민주화운동의 역사현장에 설 수 있게 해주신 분 또한 목사님이셨습니다. 5·18구속자협의회와 전남민주청년협의회, 처음으로 5·18진실이 전 국민 앞에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었던 1988년 국회청문회, 5·18문제 해결의 5대 원칙을 결정하던 순간에도 늘 당신의 결단은 역사의 방향을 바꾸고 저희의 삶을 올곧게 하는 이정표가 됐습니다.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막중한 임무를 맡은 저희에게 목사님의 빈자리는 너무 아득하여 억장이 무너집니다.
목사님, 저희가 5·18진상규명의 과업을 마칠 때까지 목사님을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굽어살펴주시고 부릅뜨고 지켜봐 주십시오.
진실로 당당하고 온유하셨던 목사님. 1997년 4월 전두환, 노태우 등이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죄의 중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던 그 순간 “이제부터 5·18은 새로운 시작입니다”라고 말씀하신 그 뜻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깁니다. 당신께서 내려놓으신 그 많은 짐과 사명을 아직은 부족하지만 이제 우리 후배들이 나누어지겠습니다. 영면하시옵소서.
송선태/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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