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구름처럼..몽환적 풍경화의 정수
기억과 무의식 세계 섞어
이 세상에 없는 공간 그려
서울 삼청동 초이앤라거 갤러리에 들어서면 이국적인 풍경화에 매료된다. 프랑스 출신으로 독일 쾰른에서 활동하는 화가 피에르 크놉(39) 그림은 혼돈스럽지만 신비롭다. 기억과 무의식 세계를 섞어 이 세상에는 없는 풍경을 그린다. 의식적으로 기억해 내거나 우연히 찾은 이미지, 사진으로 담은 인상 등 모든 소재가 응축되어 캔버스에 구체화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감정들과 분위기들을 작가 만의 독창적이고 고유한 색감으로 표현한다.
외딴 산 속 수영장이 있는 별장, 굴뚝 연기가 거대하게 피어오르는 집은 낯설지만 익숙하다. 작가의 추억 속 풍경에 상상력을 더했기 때문이다. 채도가 낮은 보라색과 녹색, 회색 등으로 채워 몽환적이면서도 서정적이다. 저런 곳이 실재한다면 한 번 발을 딛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공간이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그의 작품은 다른 세계를 내다볼 수 있는 창(窓) 같다. 관람객은 그 창 너머 오묘하고 고요한 공간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새로운 창을 만든 요소는 이번 개인전 제목 '테트라크로매틱 비전(Tetrachromatic Visions·사색형 색각)'이다. 색을 네 종류의 원추세포로 지각하는 것으로, 삼색형 색각을 지닌 평범한 사람들보다 적색과 녹색 사이 색을 더 잘 구분한다.
작가는 "평범한 눈보다 더 많은 것을 보는 것은 자신의 지각을 자유롭게하고, 그림을 통해 현재의 시간과 공간을 잃어버리도록 또는 초월하도록 요구함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크놉의 아시아 첫 개인전을 연 초이앤라거는 "풍경화라는 전통적인 장르를 재해석해 밀도높은 분위기와 감성을 불러 일으킨다"며 "캔버스 위에 진동하며 빛을 발하는 색상의 세계는 시대와 시간를 초월한 것처럼 보인다. 낮과 밤,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하나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1982년 프랑스 낸시에서 태어나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자랐다. 2013년 뒤셀도르프 예술아카데미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으며, 2019~ 2020년 독일 칼스루헤 예술 아카데미 회화과 초대교수를 역임했다. 전시는 10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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