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눈 맞추려 지붕에 올라간 여자
인간·동물 공존 담은 영상
고래 소리 설치작품도 전시
카메라로 마애불 훑으며
코로나 금기어 접촉 일깨워
현대미술가 홍이현숙(63) 영상 작품 '석광사 근방'은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고민한 결과물이다. 작가는 지난해 봄부터 가을까지 서울 갈현동 재개발지역을 배회하는 길고양이들과 교감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두 달간 먹이를 주자 그제서야 도망가지 않았다고 한다.
화면에서 작가는 바닥에 엎드려 고양이와 눈을 맞추려고 하고, 담벼락을 올라타기도 한다. 진정한 교감은 동물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양이처럼 살아봐야 고양이 처지를 알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갈현동 석광사에서 산신이 타고 다니는 호랑이상을 흉내내고 올라타기도 한다. 같은 고양이과인데도 호랑이는 영물(靈物)로 추앙받지만, 길고양이들은 애정과 동정, 혐오의 대상이다.
공허한 개념미술이 아니라 '행동하는 예술'을 보여주는 그는 이번 전시에서 고래와 소통도 시도한다. 전시장에 뗏목처럼 설치한 작품 '여덟 마리 등대' 주변 스피커 8대에서 고래 8종의 소리가 나온다. 미국 캘리포니아 몬터레이만 아쿠아리움연구소가 태평양에서 채집한 고래 소리를 토대로 제작했다. 전시장 조명을 낮추고 뗏목을 흔들리게 만들어 망망대해 표류를 연출했다.
작가의 권유 대로 뗏목에 앉아 귀를 기울이니까 뱃고동 같은 밍크고래, 소 울음 같은 혹등고래 등 다채로운 소리가 들려온다. 다만, 고래가 내는 고주파 음역대 소리는 인간에겐 그저 침묵이다.
영상 작품 '고래자세'는 고래 소리를 인간의 언어로 받아쓰는 과정을 담았다. 아르코미술관 정문 2층 유리창에 파도 포말처럼 붙어 있는 단어 '뿌르르르' '휭우우' 등이 그 소리다.
4개 영상으로 이뤄진 '각각의 이어도'에서는 출렁이는 벼 사이를 헤엄치는 작가를 발견할 수 있다. 논이 바다로 느껴졌다고 한다. 다른 2개 화면에선 기상을 관측하고 바다 생태계를 연구하는 이어도해양과학기지 CC(폐쇄회로)TV를 통해 주변 바다 모습이 실시간으로 재생된다. 제주 바다 속을 유영하는 스쿠버의 깊은 숨소리가 들리는 화면도 있다. 중국이 영토 소유권을 주장하는 이어도는 수중암초이자 전설에 등장하는 유토피아다. 일기예보 등 미래를 예측하고 영역을 확장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담긴 현장이다.
작가가 시어머니에게 얻은 낡은 이불 호청에 관람객의 외할머니 이름을 쓰게 하는 설치 작품, 방구석을 굴러다니는 영상 작품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정체성을 묻는 작업이다. 전시는 3월 28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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