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동물과 아기, 동물도 정말 편안할까요?"
'육아와 슬기로운 반려생활' 수의사 곽지윤씨
"동물의 바디시그널 제대로 알아야 사고 방지"
아기와 동물이 함께 있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사랑스럽다. 갓난아기를 핥아주는 강아지, 배를 드러내고 같이 누운 고양이, 아기의 작은 품에 꼭 안긴 동물의 모습은 부모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게 되는 반려생활일 것이다.
그런데 ‘훈훈한 모습’이 사실은 인간만의 착각이었다면 어떨까. “우리집 동물과 아이는 사이가 좋다구요? 알고 보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수의사 곽지윤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동물과 아이의 사진을 볼 때마다 아찔하다고 말한다. 도대체 사진에 숨겨진 위험 요소가 무엇이길래.
“아이가 있든 없든 모두가 알아야 할 것들”
아이 둘, 개 둘, 고양이 둘, 어른 둘. 곽지윤씨의 집에는 많은 동물들이 함께 산다. 반려동물 네 마리를 키우며 첫 아이를 낳은 곽씨는 주변에서 ‘어떻게 하면 아이와 동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수의사이긴 하지만 보호자들에게 안내할 만한 전문적 가이드라인은 없었다.
“동물행동학을 배우긴 했지만 지식이 협소한 편이었어요. 저뿐 아니라 보호자분들에게 도움이 되려면 더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2018년 그가 문을 두드린 곳이 미국 반려가정 부모교육전문가 과정(Family Paws Parental Educator·이하 반려부모 교육과정)이었다. 미국에서는 조산사, 훈련사, 일반 부모들도 이 수업을 듣는다. 지난 연말 과정을 이수하고 최근 웹세미나를 개최한 곽씨를 29일 서울 송파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앞서 1월21일 그가 강연자로 나선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슬기로운 육아생활’ 웨비나는 금요일 저녁 9시에 열렸음에도 신청자가 3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강연이 끝난 뒤 개설된 오픈채팅방에서도 질문이 쏟아졌다. 주최 쪽인 네슬레퓨리나에 따르면, 참가자들은 주로 현직 수의사와 수의대생들이었다.
“일반 보호자분들보다 의외로 수의사 분들이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주셨어요. 강의 전까지는 ‘이 주제로 뭐 강의할 게 있어’라는 반응이었거든요. 근데 막상 살펴보니 중요한 내용인데 미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조차 못했다고 하시더라구요. 사실 반려부모 교육과정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은 아이가 있든 없든 반려인이라면 모두 알아야 하는 내용이예요.”
부모는 안전벨트…“동물의 시그널을 읽어라”
그는 왜 아기와 강아지 사진들을 보고 놀랐을까. “사고가 나기 전까지 대부분 ‘우리 집은 문제없어’라고 생각해요. 귀여운 아기의 모습에 집중하지 않고 동물의 몸짓만 보면 상당히 달라보여요.” 일반적으로 개가 자신의 발이나 아기의 얼굴을 핥는 것, 배를 드러내고 눕는 것은 모두 거절을 뜻한다. 그러나 그 조차도 교육을 이수하기 전까지는 “동물과 함께 있는 내 아기의 모습이 예쁘니까” 종종 동물의 바디시그널을 놓치곤 했다.
목을 끌어안는 것, 뽀뽀하는 것, 얼굴을 들이밀고, 쫓아가서 괴성을 지르며 팔 다리를 휘젓는 것. 아기는 좋아하고 동물은 싫어하는 행동이다. 그는 아이들이 하는 일반적인 행동이 동물에게는 스트레스가 될 수 있고, 사고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동물들이 참아주는 거거든요. 처음에는 부드럽게 거절을 표현해요. 핥거나 배를 뒤집고, 자리를 피하죠. 그래도 행동이 지속되면 이빨을 보이고 결국 으르렁대죠. 싫어하는 행동을 참아줬지만, 으르렁대면 결국 혼나는 건 또 동물이예요.” 이런 동물의 바디시그널을 제때 알아채지 못하면 결국 물림사고로 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경고다.
곽씨는 예측불가능한 두 존재의 공존을 위해서는 부모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부모는 안전벨트예요. 절대로 아이와 동물을 홀로 둬서는 안돼요.” 출산 전 기본 교육(개의 경우 앉아, 엎드려, 기다려, 하우스 등)과 동물 문제행동 파악, 건강검진 등을 철저히 하라는 것이 그의 조언이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로 꼽은 것은 ‘위험 요소를 애초에 차단’하는 것이다.
‘의인화’가 일으키는 오해들
“공간분리를 자꾸 얘기 하게 되네요. 흔히 우리는 울타리를 치면 동물을 가둔다고 생각해요. 동물들은 그저 자기 자리에서 편하게 쉬는 것 뿐이거든요.” 곽씨는 인간의 시선으로 동물을 자꾸 의인화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필요하면 얼마든지 실내에서도 잠깐 줄을 이용해 개를 묶어둘수도 있단다.
‘공간이 좁아져 답답하다’, ‘묶어서 억압한다’는 건 모두 인간의 해석이라는 뜻. “아이가 없더라도 서로의 공간이 정해져 있으면 편해요. 손님이 왔을 때나 부모가 급한 일을 처리할 때 동물들은 언제든지 정해진 장소에서 기다릴 수 있어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적응시키면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아요.”
이 과정에서 그가 강조한 태도는 바로 일관성이었다. “나이 많은 동물이든 어린 동물이든 동물은 언제든지 배울 수 있어요. 중요한 건 보호자의 일관된 행동이죠.” 동물이 수행하는 ‘양보’는 늘 일관된 보상으로 답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 불쌍해 보인다고 해서 혹은 상황이 다르다고 해서 반응이 다르면 훈련이 더뎌질 수 밖에 없다.
곽씨가 손꼽은 또 다른 의인화의 실수는 ‘아이와의 첫 만남’이다. “환상이 있잖아요. 아이가 처음 집에 들어오는 날 개에게 아기 기저귀 냄새를 맡게 한다든가 얼굴을 들이민다든가. 혹은 섭섭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죠.”
사실 반려동물에게 아기는 ‘새 가구’ 수준의 무엇이란다. “동물이 반가운 건 아마 며칠간 집을 비운 반려인일 거예요. 아기에게는 관심이 덜하겠죠. 집에 새 가구가 들어왔다고 해서 기쁘거나 서운하지 않은 것처럼 동물에게 아기도 아직은 그저 미지의 존재일 뿐이예요.” 때문에 소개를 시키는 일도 덤덤하고 천천히, 아기가 평온할 때 오히려 동물에게는 좋은 기억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아이가 더 좋은 반려인이 되는 길”
그는 반려동물과 육아는 가족 모두의 일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생아 육아는 육체적, 정신적 고갈을 경험하게 되는 극한의 연속이예요. 이때 파양을 많이 고민하게 되죠.”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장기전’에 대비한 몇 가지 원칙을 세워야 한다. 나만의 시간을 확보할 것, 역할을 분담할 것, 늘 관찰하고 중재할 것.
“한 번에 되는 건 없어요. 훈련도 몇 년에 걸친 일이 되겠죠. 하지만 어려서부터 반려동물과 건강한 관계를 형성한 아이들은 자라나면서 더 좋은 보호자로 자라날 거예요.”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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