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공룡'들 미래차 진출 속도.. K-자동차도 액셀 밟을까 [이슈 속으로]

나기천 2021. 2. 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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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 바뀌는 자동차 산업
"자동차는 달리는 전자기기"
완성차 중심서 친환경·자율주행차 이동
애플·中 바이두·日 소니 등 글로벌 기업
완성차 업계·부품사와 '합종연횡' 시도
中 10년내 EV강국 선언.. 獨·佛도 가세
한국 모빌리티 혁신 속도는
EV 완성차·배터리 분야 경쟁력 갖춰
핵심 부품은 세계 점유율 1.9% 불과
전장산업 R&D 투자.. 선택과 집중 필요
자율차 운행 관련법 정비 등 서둘러야
기아가 ‘애플카’ 생산과 관련해 애플로부터 4조원 규모의 투자를 받을 것이란 ‘미확인’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장이 요동쳤다. 미국의 애플은 글로벌 시가총액 1위의 IT(정보기술) 기업이다. 이런 회사가 자동차 산업 진출을 선언했고, 한국의 완성차 회사가 이와 협력한다면 국내외 관련 업계에 상당한 파장을 낳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를 한국 완성차 업계의 ‘대단한 성과’로 생각하기에 앞서 곱씹어 볼 부분이 있다. 애플 외에도 중국의 바이두, 일본의 소니 등의 굴지 IT 기업이 전기차·자율주행차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한국의 자동차 업계는 이런 패러다임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준비돼 있다면 과연 이를 선도할 연구개발(R&D) 능력은 갖췄을까.

불행히도 현재 상황으로 봐선 “아닌 것 같다”는 게 정부·학계 쪽 판단이다. 애플 같은 IT 기업이 차 시장에 진출하면서 기존의 완성차 업계를 찾는 이유는 그들이 갖지 못한 제조·조립 능력 때문이다. 핵심인 소프트웨어 등은 내가 제공할 테니 기존 완성차 업계는 ‘껍데기’나 만들라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IT 기업이나 혁신 스타트업이 자동차 산업의 주역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이미 자동차가 ‘움직이는 혹은 바퀴 달린 IT기기’라고 표현되는 상황이다. 국내에도 이러한 변화에 대비한 새로운 자동차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전기자동차(EV) 수요는 전년 대비 16.4% 증가한 264만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5년 수요 예상치는 850만대다.

현재 글로벌 EV 시장에서 현대·기아가 판매량 기준으로 4위권에 올라 있다. 또 LG전자는 EV의 핵심인 리튬이차전지 세계 1위다. 삼성SDI는 4위, SK이노베이션이 6위로 추격 중이다. EV 완성차 및 배터리 분야에서는 한국이 글로벌 수준의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얘기다.
‘애플카’ 렌더링 이미지. 애플인사이더
하지만 이를 고정불변의 우월적 상황으로 보긴 어렵다. 중국이 향후 10년 안에 독보적인 EV 강국이 되겠다며 국가 차원의 지원책을 시행 중이다. 독일의 폴크스바겐은 2025년까지 50종 이상의 전기차를 생산한다. 프랑스 르노도 2022년까지 전 세계 판매대수의 30%를 EV로 채우기로 했다. 일본의 도요타자동차는 2025년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 예정인 100여종의 모든 차종에서 EV와 하이브리드차를 양산한다.

EV와 함께 또 하나의 시장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꼽히는 자율차는 한국이 세계 6위권 정도로 추정된다. 또 글로벌 자율주행 시장 규모는 2020년 71억달러, 2025년 1549억달러, 2030년 6565억달러로 급성정할 전망이다.

문제는 부품이다. 국내 자율주행 주요 부품 시장은 글로벌 시장의 1.96% 정도에 불과하다. 이들의 산업 경쟁력을 100으로 볼 때, 미국은 143, 독일은 121, 일본은 106 정도로 앞서 있다.

전문가 집단에서는 한국의 모빌리티 혁신 속도를 늦추는 가장 큰 장애물로 이들 부품사의 경쟁력을 꼽는다. 국내 자동차 산업은 3만여 개의 부품, 관련 소재와 서비스 등이 연결되어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수직계열 및 통합적인 구조를 기반으로 자동차 산업을 단기간에 육성했으나 미래차 전기전자(전장) 부품 산업의 공급기반은 취약한 실정이다. 자율차 관련 공급 기반인 소프트웨어가 특히 그렇다고 한다. 전장 산업의 R&D 투자도 완성차 업계가 아니라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주도하고 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자동차 전장 부품 생산 가능 국내 기업은 전체 공급 업체의 5%에 불과하며, 전장 부품 생태계를 형성하는 데 중심이 되는 중핵(Keystone) 부품 업체는 소수에 불과하다”며 “미래차 시장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산업 경쟁력의 근간이 되는 부품 기업의 신기술 개발 및 확보를 위한 R&D 자금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정부의 노력도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신성장 동력 확보에 미래차가 필수적임을 인식하고 자동차부품 기업에 대한 사업 전환과 R&D를 지원 중이다. 최근에는 2030년까지 1000개 부품 기업을 미래차 분야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부는 ‘자동차산업종합발전계획’을 지난 2003년에 마지막으로 만든 뒤 추가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자율주행을 위한 인프라의 첨단화, 자율주행차의 운행 관련 법·제도, 자율차의 법적 지위 부여나 보험제도 정비 등도 아직 미진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산업구조 재편에 따른 기존 산업의 반발도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다. 내연기관에서 정보통신기술(ICT)이 융합된 EV·자율차 등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자동차 산업의 고용 감소를 부를 것으로 예상된다. 우버 서비스가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기존 모빌리티 산업 종사자와 극심한 갈등을 빚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각국의 미래차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인데 EV, 자율차, 수소차, 플라잉카 등의 모든 모빌리티 분야에서 한국 정부와 산업계가 월등한 성과를 내기를 기대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여러 분야로 분산하지 말고 정말 잘할 수 있는 미래차종과 연관 산업으로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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