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사랑' 지심도 붉은 동백꽃이 피었습니다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최현태 2021. 2. 7. 14:02
'동백의 섬' 지심도 원시림 트레킹
마끝 장식한 멋진 곰솔 군락과 쪽빛 바다 풍경 황홀
3월이면 후드득 떨어지는 꽃잎 붉은주단 깔아 주겠지
지세포항을 출발한 배는 바닷길을 직선으로 달려 15분 만에 지심도에 닿는다. 좌우로 길쭉하게 바다에 누운 모습인데 하늘에서 보면 섬의 모양이 ‘마음 심(心)’자를 닮아서 지심도(只心島)라는 이름을 얻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섬 전체가 숱이 풍성한 청년 머리처럼 빽빽하게 나무로 덮여 있다. 대부분 동백나무이고 곰솔, 후박나무 등이 섞여 있다. 선착장에 도착하면 범바위에 올라앉은 인어조각상이 여행자들을 맞는다. 안내판에 호랑이와 지심도 바다 용궁에 살던 인어공주의 사랑이야기가 담긴 ‘범바위 전설’이 적혀 있다. 인어공주를 보고 첫눈에 반한 호랑이가 사랑을 고백하자 인어공주는 용왕의 허락을 받아오겠다며 용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인어공주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호랑이는 바위에 가죽을 남기고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 맞춤법도 엉망이고 내용이 허술해 누가 지어낸 얘기 같다.
마끝 장식한 멋진 곰솔 군락과 쪽빛 바다 풍경 황홀
3월이면 후드득 떨어지는 꽃잎 붉은주단 깔아 주겠지
“배 띄워라∼♩♬” 거제에 머문 지 3일째. ‘님(동백꽃)’ 만나러 지심도에 들어가야 하는데 도무지 배가 뜨지 않는다. 계속 풍랑주의보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요즘 화제의 음악프로그램 ‘팬텀싱어 올스타전’에서 라비던스팀이 매시업해서 부른 민요 ‘몽금포타령’과 ‘배 띄워라’의 가사가 내 마음 같다. 갈 길은 멀고 행선은 더딘데 배가 뜨지 않으니 강 건너 벗님네들처럼 마냥 앉아서 기다릴 수도 없고 난감하다. 늦바람 불라고 성황님 조르고 싶은 심정이다. 제발 내일은 꼭 배를 띄워야 할 텐데.
#마음에 고요함을 안기는 울창한 원시림
“바람이 없으면 노를 젓고 바람이 불면 돛을 올리자 내 님을 향해 ♩♬” 밤새 ‘배 띄워라’를 흥얼거리며 간절하게 소원한 덕분인지 4일째 드디어 뱃길이 열렸다. 반가운 마음에 첫배를 타고 지심도로 떠난다. 장승포항에서만 출항하던 지심도 유람선은 지난해 지세포항에서도 뱃길이 열리면서 가는 길이 훨씬 수월해졌다. 장승포항은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2시간 간격으로 다섯 차례 배편이 있고 돌아오는 마지막 배는 오후 4시50분이다. 지심포항에서도 다섯 차례 운항한다. 오전 8시45분부터 오후 4시45분까지 2시간 간격이고 지심도에서는 오후 5시5분이 마지막 배다. 유람선 매표소에서는 1시간 트레킹 코스라고 설명하지만 실제는 훨씬 더 소요되기 때문에 시간계산을 잘해야 한다. 지세포항에서 첫배를 타고 들어갔는데 쉬엄쉬엄 구석구석을 모두 둘러보니 3시간30분 정도 걸려 오후 1시5분 배로 돌아왔다. 늦어도 세 번째 배편인 낮 12시30분(장승포항)이나 12시45분(지세포항) 배를 타야 여유 있게 둘러볼 수 있다.
지세포항을 출발한 배는 바닷길을 직선으로 달려 15분 만에 지심도에 닿는다. 좌우로 길쭉하게 바다에 누운 모습인데 하늘에서 보면 섬의 모양이 ‘마음 심(心)’자를 닮아서 지심도(只心島)라는 이름을 얻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섬 전체가 숱이 풍성한 청년 머리처럼 빽빽하게 나무로 덮여 있다. 대부분 동백나무이고 곰솔, 후박나무 등이 섞여 있다. 선착장에 도착하면 범바위에 올라앉은 인어조각상이 여행자들을 맞는다. 안내판에 호랑이와 지심도 바다 용궁에 살던 인어공주의 사랑이야기가 담긴 ‘범바위 전설’이 적혀 있다. 인어공주를 보고 첫눈에 반한 호랑이가 사랑을 고백하자 인어공주는 용왕의 허락을 받아오겠다며 용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인어공주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호랑이는 바위에 가죽을 남기고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 맞춤법도 엉망이고 내용이 허술해 누가 지어낸 얘기 같다.
스마트폰에 지심도 앱을 내려 받고 블루투스를 켜면 주요 포인트마다 안내를 한다는데 실제로는 작동이 잘 안 된다. 하지만 지심도 20곳의 설명을 볼 수 있어 유용하다. 시작부터 가파른 산책로를 올라야 하니 등산화나 트레킹화를 꼭 챙겨 가야 한다.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코스를 따라가다 보면 지심도 구석구석을 잘 둘러볼 수 있다. 산책로는 울창한 원시림이 잘 보존돼 낮에도 해가 잘 보이지 않는다. 들리는 것은 오로지 새 소리와 숲을 쓰다듬는 바람소리뿐. 덕분에 피톤치드 가득한 숲은 진정한 힐링을 선사한다. 동박새터널에서는 동박새, 직박구리, 팔색조, 흑비둘기 등이 서식한다. 동박새는 동백꽃의 솔메이트. 꿀을 먹으며 꽃가루를 묻힌 채 옮겨 다녀 씨를 맺도록 돕는 고마운 새다. 워낙 겁이 많고 민첩해 직접 보기는 쉽지 않다는데 서너 마리가 계속 따라 다니니 오늘 운이 아주 좋다.
#영원한 사랑, 붉은 동백꽃 피었네 터널을 지나면 지심도 남쪽 끝 해안절벽 마끝 전망대가 등장한다.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멋진 곰솔 군락이 쪽빛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절벽 끝을 장식한 황홀한 풍경. 태양이 쏟아지는 바다는 보석 같은 윤슬이 반짝이고 해식절벽에 끊임없이 부딪히는 파도는 장엄하다.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 지심도에 오길 잘했다.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햇살과 바람소리를 즐겨본다. 고요한 평화가 가득하다.
오던 길을 거슬러 1994년 폐교된 일운면초등학교 지심분교장을 지나면 국방과학연구소와 포진지가 자리 잡고 있다. 이제 피기 시작한 동백꽃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화려한 동백꽃과 달리 지심도는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 해군기지로 사용되던 곳으로 일제는 1936년 주민들을 강제로 쫓아내고 대공포 등을 설치했다. 해방을 앞두고 일본군과 미국 공군은 치열한 전투를 벌여 섬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국방부 소유였던 섬은 2016년 다시 거제의 품에 안겼다.
탁 트인 바다의 쪽빛과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동백의 붉은 꽃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진다. 하지만 흉물스러운 포진지와 방공호는 아름다운 풍경을 삼켜버려 마끝에서 얻은 좋은 기운이 급냉동된다. 일본군배급소, 건물만 남은 서치라이트 보관 창고, 욱일기 게양대, 일본군 전등소장 관사 등 지심도 곳곳에 이런 것들이 남아 있다. 치욕적인 역사를 잊지 말아야겠지만 과연 보존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다. 사진으로만 남겨도 충분할 것 같다. 모두 걷어내고 오로지 동백꽃만 즐길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다시 국방과학연구소로 돌아와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넓은 들판이 펼쳐지는 해맞이전망대다. 이곳 역시 일본군 활주로로 사용됐던 곳인데 그나마 흔적이 없어 다행이다. 두 손으로 하트를 그린 조각상이 포토존이다. 그네를 타고 한가롭게 맞은편 지세포항의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전망대 오른쪽 길을 따라가니 드디어 수백년 동안 자란 동백나무들이 서로 부둥켜안은 동백터널이 나타난다. 사실 지심도 여행은 이곳이 하이라이트인데 동백꽃은 아직 없다. 이달 중순은 지나야 화려한 자태를 뽐낼 것으로 보인다.
3월이면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후드득 떨어지면서 주단을 깔아준다니 아름다운 풍경을 머릿속으로 상상한다. 오히려 동백터널을 지나자 양지 바른 산책로에 빨간 동백꽃이 제법 피어 아쉬움을 달래준다. 두 갈래로 자란 곰솔할매나무에서도 인생샷을 얻을 수 있다. 해안선전망대 벤치는 동백꽃과 멋진 해식절벽을 모두 즐길 수 있다. 이미 연인이 동백꽃을 등지고 앉아 사랑을 속삭인다. 동백의 꽃말은 ‘진실한 사랑’ 또는 ‘영원한 사랑’이란다.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은 봄이 오기 전 서둘러 지심도를 찾아보기를.
거제=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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