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내면 너만 다쳐" 끊이지 않는 권력형 성비위

김성호 2021. 2. 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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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접수사건 꾸준히 증가 추세
친고죄 폐지, 피해자 중심주의에도
"고소 못해요" 한숨쉬는 피해자 속출

[파이낸셜뉴스] #. 20대 초반 중증지적장애인 여성 A씨는 경기도 한 야학에서 70대 야학 교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장애인일자리 사업 1년 계약직으로 이 야학에 파견된 A씨는 교장이 “시낭송을 알려주겠다” “화분 정리하는 법을 알려주겠다”며 CCTV 사각지대로 데려가 성추행을 했다고 증언한다. A씨는 교장이 “어머니에게 말하면 어머니도 일 할 수 없게 하겠다”고 해 역시 장애를 가진 어머니가 일을 잃을까 염려했다고 증언한 것으로 파악됐다. 교장은 법정에서 혐의를 전부 부인하고 있다.

권력형 성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직장과 학교, 학원, 군대 등에서 권력형 성범죄 고소고발이 잇따른다. 정부가 나서 근절을 외치고 사법기관은 엄벌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관련 범죄율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안희정 전 충청남도 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이어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까지 가해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상황에서 전반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일선 경찰에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범죄 고소가 접수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fnDB

■업무위력 성범죄 급증, "회사 가기 무서워"

7일 경찰에 따르면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 범죄율이 치솟고 있다. 경찰이 수사결과 죄가 된다고 판단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비율은 간음이 2011년 1건에서 2019년 18건으로 늘었다. 추행은 훨씬 더 많았다. 2011년 64건에서 2019년 220건으로 급증했다.

기소의견 송치율도 크게 높아졌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과 추행을 합쳐 2011년 신고접수 120건 중 65건만 기소의견 송치한 경찰이 2019년엔 308건 중 238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2019년 기소의견 송치율 77.2%로, 2011년 54.1%보다 크게 높아진 수치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범죄는 직장이나 학교 등 같은 조직에서 힘이 있거나 업무상 권위가 있는 가해자가 제 영향력 아래에 있는 피해자에게 성적 폭력을 가하는 범죄다.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사례만 찾아봐도 다양한 조직에서 이러한 범죄가 발생했다.

대학교 총장이 교직원을, 학교 교장과 교감이 평교사를, 교사가 학생을, 목사가 신도를, 의사와 심리상담사가 환자와 내담자를, 회사 상사가 부하직원을, 도지사가 비서를, 경찰이 사건 관계자를 강간하고 추행한 사례가 확인됐다.

범행방식은 대동소이하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직무수행이나 입시, 고용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권위를 이용해 피해자에 대한 부적절한 접촉을 늘려가고 마침내 범죄에 이르는 것이다.

패션업계 중견기업에서 7년차 디자이너로 일하는 B씨(32·여)는 수석디자이너에게 수년째 폭언과 성추행을 겪었다고 말한다. B씨는 지난해 가을부터 법적대응을 고려해 녹취 등 증거를 확보했지만 아직 고소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B씨는 “(가해자가) 업계에서 알려진 사람이라 너무 알려질까봐 걱정이 된다”며 “가까운 친구가 변호사라 상담을 했는데 이 일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잘 알다보니 법정대응을 하는 걸 도리어 말리더라”고 털어놨다.

B씨는 “친구가 비슷한 사건을 맡았는데 가해자가 징계만 받고 같은 팀에 여전히 근무했다면서 나중에 업무로 불이익을 알게 모르게 받았다고 하더라”라며 “소문도 워낙 빨리 나다보니 차라리 이직을 하는 게 개인한테는 나을 수 있다고 해 걱정 된다”고 말했다.

가해자가 조직 내에서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범죄 사례에서 피해자들이 도리어 피해를 보는 사례도 속출한다. fnDB

■버티거나 떠나거나··· 고소 못하는 피해자들

국내 굴지 대기업 계열사 과장으로 근무하는 C씨(41·여) 역시 상급자에게 성추행과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 미혼인 C씨는 유부남인 가해자가 지속적으로 만남을 요구했으나 들어주지 않자 성추행과 성희롱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C씨는 “처음에 믿고 있는 선배들한테 알렸는데 ‘그 자식 나쁘다’면서도 증언해달라니 ‘나는 모르는 걸로 해달라’고 하더라”며 “정식 절차를 밟아 문제제기하니까 알게 모르게 경고만 줬다고 하고 끝내더라”고 답답해했다. C씨는 지난해 고과가 전년도보다 크게 미달했다며 “고과를 가해자가 주도록 하는데 이게 정상적인 건가”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C씨는 “(회사에서) 밖으로 새나가면 내 탓인 것처럼 말하고, 능력 좋은 사람을 옮기겠냐고 다른 팀 갈 거면 나한테 가라고 해서 그냥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위계에 의한 성추행은 경찰에 고소고발하기도 쉽지 않다. 증거를 확보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곁에서 증언해줄 동료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피해자의 일관된 증언을 증거로 채택하는 등 피해자 중심주의를 원칙으로 삼고 있지만 조직 내에 계속 남고 싶은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은 여전히 마땅치 않다. 법적대응을 포기한 피해자들이 “고소는 회사를 떠난다는 뜻”이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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