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로 읽는 과학] 20주년 맞은 인간게놈프로젝트(HGP)의 유산

고재원 기자 2021. 2. 7.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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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제공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4일 ‘20’이라는 숫자를 표지로 실었다. 숫자 위로는 ‘인간 게놈(Human Genome)’이란 글자도 보인다. 사이언스는 미국과 영국 등 6개국 공동연구팀으로 이뤄진 ‘인간게놈프로젝트(HGP)’의 2001년 2월 12일 ‘인간게놈지도’ 완성 발표 20주년을 앞두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특별호를 발간했다. 

인간게놈지도는 인간의 DNA에 있는 30억 개에 이르는 염기쌍을 모두 읽어 유전자 지도를 그리는 프로젝트다. 인체를 세포보다 작은 DNA 수준에서 분석하는 최초의 시도였다. 인간게놈지도를 완성하면서 인간의 성장과 질병 등에 관련된 유전자를 확인할 수 있었고, 이는 곧 유전병이나 난치성 질환을 치료하는 데 개인의 유전자를 활용하는 개인 맞춤형 치료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사이언스는 특별호를 통해 인간게놈지도가 발표된 이후 20년 간 축적된 다양한 유산을 살펴봤다.

신속한 데이터 공유의 정신 키웠다

인간게놈지도는 개방형 과학의 시금석이 됐다. 인간게놈프로젝트 연구자들은 1990년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전 세계 모든 연구팀이 분석한 인간 게놈 정보를 24시간 이내에 공유하기로 약속했다. 이전에도 과학계에서는 데이터를 공유하는 경우가 일부 있었지만, 소규모 그룹에 한정되거나 관련 논문이 발표된 이후에는 데이터 공유를 철회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사이언스는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오늘날 데이터 공유 조성 문화에 영향을 미쳤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사태도 이런 선례가 있었기에 바이러스 게놈 데이터를 빠르게 공유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다양성 부족은 인간게놈 분석의 한계 가져온다
사이언스는 “게놈이 조상이나 지역에 따라 기원이 다르다고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전학 연구는 여전히 유럽인에게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유럽인의 게놈 데이터가 매우 크고 얻기가 쉬우며 연구비 지원도 더 잘 이뤄지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사이언스는 “이런 경향이 지속된다면 전 세계 게놈 연구에 지장을 초래하고 결국 인류의 역사나 생물학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다행히 최근 인간 게놈 분석에 대한 다양성이 늘고 있는 만큼 이를 가속화하기 위해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밀의학(precision medicine)의 가치와 경제성
게놈 정보를 사용하는 정밀의학에 대한 논쟁은 정밀의학을 환자 치료에 적용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정밀의학의 가치를 배제하고 경제성 논리에만 따르면 정밀의학이 환자에게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경제성은 환자의 치료비 지불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가치는 치료에 사용된 비용 대비 얼마나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지를 따진다. 사이언스는 “정밀의학은 현재 정체 상태”라며 “경제성과 가치를 동시에 높이는 경우에만 정밀의학의 잠재력을 끄집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종과 유전학의 얽힘을 끝내야 한다
인간게놈지도가 발표된 이후 인종은 유전자에 기록된 자연적 구분이 아니라 사회적 구성을 뜻한다는 사실이 다시금 확인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인간게놈지도가 인종 사이의 유전적 차이의 근거로 사용되는 일도 벌어졌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인간게놈지도를 근거로 유전적 우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유전적 차이가 과학적으로는 무의미하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졌지만, 유전적 차이에 의한 인종 연구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사이언스는 “생물 의학 연구의 다양화가 인종 집단 간의 유전적 차이를 찾는 목적에 집중되면 안 된다”며 “유전학을 통한 인종 차별은 이제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이후 세계의 게놈 프라이버시
오늘날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의 게놈 데이터가 공개돼 있다. 이런 게놈 데이터의 민주화는 유전학적 이해를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됐지만, 유전자 정보를 이용해 개인을 식별하고 이를 통해 감시하는 역기능도 나타났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이런 현상을 더욱 가속화했다. 국경 검문소에서는 전염병 통제를 위해 입국자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여행객의 유전자 정보로 개인을 식별할 수 있게 됐다. 사이언스는 “유전자 감시 기술 사용에 관한 지침이 필요하다”며 “대중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게놈 혁명의 힘을 활용하기 위해 공개 토론이 필수”라고 밝혔다.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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