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팔방미인' 페트병.. 獨, 보증금 돌려줬더니 회수율 '껑충' [연중기획 - 지구의 미래]
그릇·의류.. 투명페트병 추출원료 쓰임 커
獨, 빈용기 무인 회수기 등 반납 절차 간편
유럽, 음료병 재활용페트 함유 30% 권고
2030년까지 70%로 확대.. '순환경제' 속도
제품 만들려면 생산자가 재생원료 구해야
국내서도 "빈용기 보증금제 활성화 필요"
정부, 내년 카페 일회용컵부터 적용키로
A씨는 어느 날 마트에 장 보러 가다 집 안에 굴러다니는 소주 빈병 3병을 챙겨 나갔다. 빈병을 반납하고 보증금을 돌려받을 목적이었다. 마트에 도착한 그는 입구 근처에 있던 무인회수기가 사라져 한참을 찾아야 했다. 결국 고객센터에 물어 매장용 카트가 가득 놓인 곳 구석으로 무인회수기가 이전된 사실을 알았다. 기기 주변에는 각종 병뚜껑이 흩어져 있었다. 병만 회수 대상이고 뚜껑은 회수기 반납 대상이 아니다. 이 사실을 몰라 뚜껑을 제거하지 않고 온 사람들이 마구 버려둔 것이다.
A씨는 어렵게 빈병을 반납하고 기계에서 영수증을 뽑았다. 소주병당 보증금은 100원이라 300원이 적혀 있었다. 영수증을 현금으로 바꾸려고 마트 고객센터를 한 번 더 갔다. 고객센터 직원들이 각종 제품 교환과 환불, 민원처리 업무 등에 바빠 한참을 기다려 100원짜리 동전 3개을 거머쥐었다. A씨는 다음 날 아파트 단지에서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를 했다. ‘투명 페트병은 별도로 분리하라’는 공지에 따라 페트병을 담은 바구니와 기타 플라스틱 제품을 담은 바구니를 따로 챙겨 내놓았다. 관리사무소에서 마련한 분리수거함 안을 들여다보니 투명 페트병과 다른 플라스틱 제품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그것들을 다시 분리해서 정리해야 하는 경비 아저씨들은 매번 고생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12월부터 투명 페트병은 일반 플라스틱과 구분해 별도로 배출해야 한다. 환경부는 대규모 아파트를 중심으로 투명 페트병을 수거할 마대도 새로 배포했다. 이 제도가 적용되는 전국 아파트 단지에 배포됐거나 배포될 마대만 4만개다. A씨는 페트병도 유리병처럼 무인회수기에 반납하고 보증금제도를 도입하면 반납하기도 편하고 재활용도 더 열심히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B씨는 마트에 가면서 가득 찬 장바구니를 챙겨 나갔다. 장바구니 안에는 각종 페트병과 유리병, 맥주캔이 들었다. 그는 마트에 도착하자마자 입구에서 쭉 직진하면 보이는 무인회수기로 향했다. 기계에 병을 넣자 기계 속 장치가 병에 붙은 라벨을 인식해 얼마를 돌려받을 수 있는지 보여줬다. 페트병은 하나에 0.25유로씩, 유리병은 종류에 따라 0.15유로 혹은 0.08유로씩 쌓인다. 빈병을 많이 넣을수록 돌려받는 돈도 당연히 많아진다. 오랜만에 장바구니 가득 재활용품을 담아와 돌려받는 돈이 8유로(1만700원쯤)가 넘었다.
흐뭇한 기분으로 기기에서 영수증을 뽑은 B씨는 장을 보기 시작했다. 필요한 물건을 다 산 B씨는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대에 물건을 모두 올려놓은 뒤 맨 앞 물건 위에 보증금 영수증을 뒀다. 점원은 영수증에 찍힌 바코드를 확인한 뒤 계산해야 할 금액에서 보증금 액수만큼 뺐다. 이때 B씨가 원하면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도 있다. 병이 몇 개 안 되면 푼돈 같아도 많이 가져가면 한 끼 식사값도 건질 수 있다. 가끔 빈병 교환 영수증을 잃어버려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다. 독일에는 이 영수증을 주우려고 마트 주변을 서성이는 노숙인이 눈에 띄기도 한다.
‘재활용 선진국’ 독일은 2003년 빈용기보증금제도를 도입했다. 독일식 이름은 ‘판트(Pfand)’다. 판트를 시작한 후 독일의 재활용 시장은 격변했다. 현재 유럽연합(EU)은 순환경제로 전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폐플라스틱을 관리하지만 2003년만 해도 플라스틱 무단투기도 빈번했다. 독일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판트 도입 후 3년 만인 2006년 모든 소매점이 일회용 캔과 유리병, 페트병을 회수하도록 의무화하자 전 매장의 회수율이 98%에 달하는 성과를 기록했다.
이제 유럽은 ‘페트’를 어떻게 더 수거할지가 아니라 어떻게 더 사용할지 고민한다. 크게 페트는 석유에서 추출된 페트(Virgin PET)와 재활용된 R-PET(재활용페트·Recycled PET)로 나뉜다. 석유에서 페트를 추출하려면 석유를 시추해야 한다. 유럽은 현재 음료용기에 R-PET 함유량이 30%가 되도록 권고한다. 이 비율은 점차 증가해 2030년에는 용기당 R-PET 함유량을 7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시중에 유통된 페트병을 수거해 새 페트병의 70%를 다시 채우는 것이다. 재활용 페트를 사용해야 하는 이상 사업자는 자발적으로 폐페트를 찾아 나선다. 대다수 제품은 디자인 단계부터 겉에 포장재는 다시 회수할 수 있는지, R-PET 함유율이 얼마나 되는지 명기한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생수업체가 유럽에 진출하려 하면 물 성분이 아무리 좋아도 페트 함유량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제품을 수출할 수 없다.
하지만 EPR가 생산자의 재활용 자체의 목적이 되면서 사업자 중심의 경제구조 변화와 소비자의 재활용 제고까지 기대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빈용기보증금제도 활성화가 필요한 대목이다. 재활용만으로 돈을 돌려받는 데다 재활용품 수거율이 오를수록 소비자 의식 변화도 기대할 수 있다고 김 조사관은 예상했다. 그는 지난해 초등학생들의 편지로 매일유업이 자사 제품에서 빨대를 없앤 일을 언급하며 “소비자가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빈용기보증금제도가 정착 초기에 예산을 대량으로 투입해야 하고 소규모 소매점과 편의점이 많은 국내 특성상 독일과 같은 보증금제도가 운영되기 어렵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홍수열 자원순환경제사회연구소 소장은 “아파트 단지에 쌓인 페트병을 동네 가게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며 “오히려 재활용품을 소화할 여력이 안 돼 현장에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재활용률을 높이는 일환으로 내년부터 카페 일회용 컵에 보증금을 포함할 예정이다. 홍 소장은 “이게 당장 도입하기 어려운 페트병 보증금 대신 일회용 컵부터 단계적으로 확대하려는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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