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잡스의 '신비주의' 집착에 데였다

한지연 기자 2021. 2. 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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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협력사에 엄격한 비밀유지 계약 요구..어길시 위약금매기거나 계약종료 등
애플의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였던 고 스티브 잡스. (사진제공=블룸버그)


'신비주의' 스티브 잡스의 유산은 여전히 애플에 살아 숨쉬고 있다. 신제품 출시에서 '놀라움'을 중시한 잡스의 철학은 곧 '비밀주의'로 이어졌다. 애플은 협력사에 악독한 수준의 비밀유지 계약을 요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어길시 가차없는 위약금이나 계약 종료 협박이 기다린다.

블룸버그 통신은 5일(현지시간) "현대차가 애플과의 애플카 생산 협의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면서 애플이 현대·기아차그룹과의 논의를 최근 일시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경제매체 CNBC는 이를 두고 "애플이 협력사와의 관계에 있어서 '비밀 준수'(secercy)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보여준다"며 "현대차가 이번에 배웠듯 애플과 비즈니스를 한다는 것은 아마 누구에게도 말해선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평했다.
여러 협력업체 동시 접촉·함정수사까지
애플의 유별난 비밀유지계약((NDA·Non Disclosure Agreement)은 악명 높다. 자사 직원들에게 비밀유지 계약서를 작성하게 하고, 아직 출시되지 않은 제품은 코드명을 정해 부른다. 디지털 포렌식 회사와 계약을 맺고 기밀 유출자는 끝까지 잡아낸다.

가차없는 정보유출 방지 강요는 내부 뿐만 아니라 협력사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애플은 생산시설을 운영하지 않아 아이폰 등 주력제품도 협력사에 위탁 생산을 맡기는데, 공개된 협력사는 폭스콘과 TSMC 정도다.

하나의 계약을 체결할 땐 여러 업체들과 동시에 접촉하고 논의가 마무리 되기 직전에 협력 업체를 최종 선정한다. 편리한 원스톱(one-stop)라인을 선호하는 다른 업체들과 달리 애플은 하나의 회사에만 의존하지도 않는다.

협력사엔 애플만의 '보안 유지'강령이 내려온다. 협력사로부터 정보가 유출되는 기미가 반복되면 '함정 수사'가 시작된다. 로이터통신은 "애플이 각각 다른 협력사들에게 다른 부품을 제공해 유출의 근원지를 찾는다"고 전했다.

유출의 구체적인 증거를 찾지 못할 땐 계약이 끝나는 즉시 협력사를 교체해버리기도 한다. 한 협력회사 소식통은 "유출자가 누군지 명확히 알 수 있는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공급업체들끼리 서로를 손가락질하는 비난 게임이 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로이터통신은 "애플의 전술은 마치 첩보 소설에나 나올 만 하다"며 "비밀 유지 집착은 실리콘밸리에서도 정평이 나있다"고 평했다.

애플카 / 사진제공=애플허브 인스타
비밀 유지 위반시 엄격한 위약금 부과
애플의 지나친 비밀유지 강요는 협력사에겐 '공포'로 다가온다.

대만 폭스콘 홍하이 공장은 '요새'를 연상케하는 보안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폭스콘의 한 직원이 아이폰 시제품을 공장 밖에서 잠깐 꺼냈다가 고용주의 심문을 받고 투신한 사례는 애플과 협력사가 보안 유지에 말그대로 '목숨을 걸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로이터통신은 "애플과 계약을 체결할 때 기밀 유지 조항이 포함된다는 것은 놀랄 것도 없는 사실"이라며 "위반사항이 발견되면 대개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된다"고 익명의 협력사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몇년 전 애플의 과거 디스플레이 협력사였던 'GT어드밴스드테크놀로지스(GT Advanced Technologies)'는 파산하면서 애플을 고소했다. 애플의 지나친 위약금 때문에 파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GT가 법원에 제출한 고소장에 따르면 애플은 이 업체에 1개의 비밀유지가 깨질 때마다 5000만달러(약 561억7500만원)를 물어야 한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었다. 또 다른 계약서에는 애플과 관련된 어떠한 홍보도 사전 서면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애플과 GT는 추후 350만달러의 합의금 지불에 합의했다.

애플이 먼저 협력업체와의 관계를 밝힐 때는 예외적으로 언급이 가능하다. 애플은 '미국 제조기업을 지원하는 사례'로 터치스크린용 유리를 납품하는 코닝을 언급한 바 있다.

웬델 윅스 코닝 최고경영자(CEO)는 애플이 최근 아이폰12 출시에서 새로운 강화유리를 언급하기 전까진 애플을 언급하는 것이 편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윅스 CEO는 "애플의 이름을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회사 내부에서도 애플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애플을 부르는 '코드명'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폭스콘 충칭공장 입구 / 사진제공=폭스콘 충칭공장

'신비주의' 잡스, 비밀유지 집착
애플의 신비주의 집착은 잡스의 성향에서 비롯됐다. 잡스는 신제품 출시 이벤트를 '스펙터클한 일'로 만들기 위해 철저한 비밀 유지를 강조해왔다. '놀라움과 즐거움'은 지금도 여전한 애플의 마케팅 콘셉트다.

오죽하면 현재 밝혀진 몇몇 협력업체 사례 역시 업체가 파산하거나 애플이 공개를 허락하는 등 특별한 전제 하에 알려진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애플의 비밀유지 문제에 정통한 소식통은 "비밀유지 협약을 위반해 위약금을 부과받은 회사의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며 "그러나 애플은 유출이 의심되는 상황이 지속되면 계약을 파기하겠다는 경고를 계속해서 내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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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기자 vividhan@mt.co.kr, 황시영 기자 appl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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