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달라' 대만에 읍소한 獨, 'EU 반도체 자립' 팔 걷었다

알트마이어 獨 경제장관, EU에 최대 67兆 투자 제안
"즉시 1.35兆 내겠다"..IPCEI 두번째 프로젝트 추진
역내 반도체업체에 "내달 1일까지 투자계획서 내라"
車반도체에 우선 보조금 지급..첨단제품 투자 병행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전 세계적인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인해 완성차업체들이 잇달아 공장 문을 닫거나 감산(減産)에 들어간 뒤 세계 최대 파운드리업체인 TSMC를 소유하고 있는 대만 정부에 고개를 숙였던 독일이 유럽연합(EU) 내에서의 반도체산업 육성을 위해 총대를 메고 나섰다.

최근 미국과 일본도 아시아에 치우쳐 있는 반도체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국 내 생산을 늘리려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 간 경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5일(현지시간) 독일 경제매체인 한델스블라트에 따르면 페터 알트마이어 독일 경제장관이 최대 500억유로(원화 약 67조2700억원) 규모를 목표로 EU 내 첨단 반도체 제조기술을 선도하기 위해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10억유로(원화 1조3500억원)을 즉각 투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019년 말 EU 차원에서 미래산업 기술 확보와 노동시장 안정화를 위해 출범한 EU 공동 관심분야 주요 프로젝트(IPCEI)의 일환으로 추진된다.

앞서 IPCEI 첫 프로젝트로, 독일과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등 7개국 정부와 BMW, 오펠, 바스프 등 기업들이 참여하는 32억유로 규모의 배터리 프로그램을 런칭한 바 있는데, 반도체가 두 번째 프로젝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알트마이어 장관은 이를 위해 프랑스, EU 집행위원회 등과 구체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알트마이어 장관은 최근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인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폭스바겐, 다임러, BMW 등 자국 완성차업체들의 원성에 왕 메이화 대만 경제부장관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TSMC와 논의해 (독일에 대한) 반도체 공급량을 늘려주는 게 독일 자동차산업에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해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대만 측은 차량용 반도체 공급을 늘려주는 대신 언제든 독일 바이오업체들이 생산하는 코로나19 백신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으로 반도체 자립화의 필요성을 절감한 독일 정부는 EU와 공동으로 역내 반도체산업 강화에 나서기로 한 것. 이 같은 사태의 긴박성을 감안해 유럽 반도체업체들에게 다음달 1일까지, 또는 늦어도 3월초까지는 반도체 투자 계획서와 그에 따른 정부 보조금 지원 요청서를 함께 제출하도록 했다.

알트마이어 장관은 “EU 기업들이 독일과 EU 내에서 특허와 개발, 생산시설을 갖추고 안전한 공급망과 강력하고 폭넓은 기반의 반도체 산업을 꾸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폭스바겐 이사회 소속 한 이사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폭스바겐은 유럽의 반도체업계 강자들이 아시아, 미국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함께 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며 “유럽이 소프트웨어와 반도체분야를 선도해야 하며 이를 위해 IPCEI가 이들 기업을 돕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당장 눈 앞에 닥친 차량용 반도체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 내 차량용 반도체업체인 인피니언 테크놀로지스, 글로벌 파운드리,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에게 우선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제품 공급 확대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내년과 내후년이 되면 차량용 반도체에서는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자율주행을 비롯한 첨단엔진제어장치 등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은 초미세공정이 요구되는 만큼 이 분야에서의 기술 개발과 생산능력 확충 등에 적극적인 자금 지원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정훈 (futures@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