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예술영화관 '라이카시네마'의 도전 "극장은 살아있다"
[경향신문]
극장으로 가는 발걸음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영화관은 역대 최저 관객수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1월 11일 하루 동안 극장을 찾은 관객은 1만782명뿐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55개 영화관이 휴·폐관했다. 극장의 자리를 OTT 서비스가 대신했다. 코로나19가 지나간 뒤에도 극장이 예전처럼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극장은 살아 있다
그래서 ‘라이카시네마’의 개관 소식은 반갑다. 감염병 위기 속에 영화관을 연 것만으로도 도전이다. 게다가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예술영화관을 표방한다. 지난 1월 13일 서울 연희동의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독 지하에 문을 연 39석짜리 단관극장은 “그래도 극장의 가치는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하는 공간이다.
“어떻게 지금 영화관을 오픈할 수 있냐는 말을 많이 들어요. 그런 질문에 딱히 또렷한 대답을 할 수가 없어요. 팬데믹이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고, 아예 일상이 될지도 모르죠. 어떤 상황에서도 극장이라는 곳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여전하고, 관객이 거리를 두고 앉긴 해도 영화를 볼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언제 오픈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시설투자 해놓고 가만히 있는 것이 너무 안타깝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오픈을 알렸습니다.”
2018년 10월, 이한재 SPDG 대표(33)는 라이카시네마가 있는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독의 설계에 합류했다. 스페이스독은 연희동 주민들이 이용하는 문화공간을 짓고 싶어했던 중소기업 이화유니폼 서기분 대표의 의지로 세워졌다. 서 대표에게 소액투자를 받은 인연이 있던 이 대표가 설계부터 공간 운영까지 맡게 됐다. 연희동 토박이인 그는 줄곧 콘텐츠 만드는 일에 몸담아왔다. 스페이스독 운영을 위해 또래 창작자들과 ‘SPDG’라는 회사도 만들었다.
2층짜리 주택이 허물어진 자리에 4층짜리 건물이 들어섰다. 지하 1층은 라이카시네마, 1~2층은 카페와 다목적 공간이다. 3~4층은 창작자들이 작업실로 쓴다. 라이카시네마의 이름은 1957년 소련 우주선 스푸트니크 2호를 타고 우주를 비행한 최초의 개 이름에서 따왔다. 서울 예술영화관 중 유일한 돌비 애트모스(입체 음향 기술) 상영관을 자랑한다. 그런데 왜 영화관이었을까.
“서 대표님도 저도 지하 공간이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를 함께 보고 즐길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랐어요. 제가 공연장을 운영한 적이 있는데, 공연장은 생각보다 진입장벽이 있어요. 특정 가수의 팬들만 모인다든지, 공연을 유치하거나 기획해야 하죠. 영화는 매주 상영작이 나오는데다 동네 주민들이 쉽게 모여 편하게 즐길 수 있을 거라고 봤어요. 동네에 있는 복합문화공간에 가장 어울리는 콘텐츠가 영화이고, 영화가 이곳의 근간을 담당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출발은 순조롭다. 1월 13일부터 24일까지 개관기획전에서 상영한 영화 중 <화양연화>, <라라랜드>, <지옥의 묵시록 파이널컷>, <패터슨>은 전 회차가 매진됐다.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로 한칸씩 띄어 앉아야 했기 때문에 회차당 최대 19석을 운영했다. 19석 기준 좌석 점유율은 77%에 달했다. 요즘 시국에, 첫 시작치고는 감사한 반응이라고 이 대표는 말한다. 밤 9시면 문을 닫아야 하는 요즘에는 하루 3~4편을 상영한다. 대개는 젊은 관객들이지만 신문기사를 보고 찾아왔다는 노부부와 어르신들도 기억한다.
■버티고, 버텨라
2월 2일에는 ‘22(투투)데이’라는 테마로 사랑에 대한 4가지 영화를 상영하는 작은 기획전을 열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화양연화>, <윤희에게>, <캐롤>이 상영시간표에 올랐다. 최근에는 <세상의 모든 디저트: 러브 사라>와 <내겐 너무 어려운 연애>가 개봉했다. 배우 장국영의 대표작 <해피 투게더>도 재개봉했다.
어떻게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추구해나갈지 고민이다. 인지도가 높은 영화는 날짜와 시간에 관계없이 예매율이 높지만, 생소한 작품은 주말이어도 예매율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공헌적 역할을 하면서도 실수익을 남겨야 하는 고민과도 연결된다. 한가지는 분명하다. 좋은 시설에서 좋은 영화를 보는 것에 비싼 값을 매기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올 수 있는 친근한 공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최근에 기분 좋았던 피드백 중 하나가 이곳이 ‘영화 편집숍’ 같다는 거였어요. 앞으로 테마가 있는 편집숍처럼 기존에 와보셨던 분들도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여러 기획을 시도해볼 예정이에요. 여러 브랜드, 영화제를 주최하는 기관과도 프로그램이나 콘텐츠 협업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버텨라.” 복합문화공간 에무, 아트나인, 아트하우스모모 등 예술영화관 운영자들이 이 대표에게 가장 많이 건넨 말이다. 이미 자리를 잡은 예술영화관들은 라이카시네마에 든든한 힘이 되고 있다. 극장산업 위기의 시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라이카시네마는 선배 극장들과 함께 오래가고 싶다.
이 대표는 “많은 사람이 영화를 사랑하고, 극장이 줄 수 있는 가치를 믿는다면 버틸 수 있을 거다, 잘 버텨달라는 말씀을 하신다”며 “영화와 극장에 애정을 가지고 모인 구성원들이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발로 뛰겠다”고 말했다. 프로그래밍과 배급 업무를 맡고 있는 문유정 이사는 “라이카시네마가 영화업계나 종사자들에게 활기를 찾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함께 으쌰으쌰 잘해보고 싶다. 오래가고 싶다”고 했다.
집 밖으로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운 요즘, 라이카시네마 사람들이 관객들에게 건네고 싶은 인사는 짧고 굵다. “어서 오세요. 다시 영화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곳이 언제나 쉽게 올 수 있는 곳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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