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장관이 왜? 한미연합훈련 발언 쏟아내는 이인영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3월로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을 앞두고 관련 발언을 쏟아내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북한은 훈련 중단을 요구하고 미국은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정치·외교적으로 민감한 상황에서 주무 부처인 국방부나 합동참모본부가 관련 언급을 되도록 자제하는 것을 감안하면 다소 이례적인 행보이기 때문이다.
한·미 연합훈련에 관한 이 장관의 공개 발언은 최근 열흘(1월25일~2월4일)간 4차례로, 2~3일에 한번 꼴이었다. 지난달 25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군사 훈련도 심각한 군사적 긴장으로 가지 않게 우리가 지혜롭고 유연하게 해법을 찾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언급한 게 시작이었다.
지난 1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선 “군사훈련이 연기돼서 남북 관계가 개선되는 데로 물꼬를 틀 수 있다면 그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 국익에도 도움이 되겠다”고 말했다. 이 장관이 염두에 둔 ‘지혜롭고 유연한 해법’이란 게 결국 훈련 연기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장관은 이틀 뒤(3일) 서울외신기자클럽 초청 간담회에서도 “군사훈련 문제가 한반도에 심각한 갈등상황으로 번지지 않도록 우리도, 북한도 지혜롭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관련 질문도 나오지 않았는데 “외신들도 최근 관심을 가지고 계신 몇 가지 사항에 대해서 통일부의 입장을 간단히 말씀드리겠다”며 훈련의 조정·연기 문제를 선제적으로 거론한 것이다.
이 장관은 하루 뒤(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도 ‘한·미 연합훈련이 실시될 경우 북한의 태도와 대응’을 묻는 더불어민주당 이용선 의원의 질문에 “3월 예정돼 있는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진행된다면 일정한 반발과 그로 인한 긴장의 유발 가능성, 이런 것은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군사훈련 문제가 긴장을 고조시키고 남북한의 갈등으로 점화돼 나가는 방식보다는 유연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방식을 찾아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이 장관이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한 것은 남북 정상이 연쇄적으로 입장을 내놓으며 이 문제가 상반기 한반도 안보 정세를 좌우할 핵심 이슈로 떠오른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초 노동당 제8차 대회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 보고에서 우리 정부의 방역·인도 협력 제안 등을 ‘비본질적 문제’로 치부하며 “(남조선 당국은) 첨단 군사장비 반입과 미국과의 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해야 한다는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를 계속 외면하면서 북남합의 이행에 역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매번 예민하게 반응한다”며 “(훈련 조정 문제를) 남북 군사공동위원회를 통해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고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한·미 연합훈련의 조정 문제를 동맹인 미국도 아니고 북한과 논의하겠다는 발상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 소식통은 “김정은이 직접 훈련 중단을 요구한 이상 우리가 아무런 성의 표시도 하지 않으면 남북관계의 경색 국면이 장기화·고착화하는 것을 넘어 자칫 북한의 충동적 도발로 훨씬 나쁜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정부 내에 팽배해 있다”며 “이인영 장관이 총대를 멘 것도 그런 차원일 것”이라고 했다. 이 장관의 거듭된 훈련 관련 발언들이 ‘훈련 조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알아달라’는 대북 메시지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이 장관의 행보는 국무위원인 동시에 여당 중진 정치인이라는 그의 특별한 입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아무래도 정치인 출신의 정부 고위 당국자가 직업 관료나 군 출신보다는 언행에 있어 상대적으로 유연하고 자유로운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장관 본인도 훈련에 관해 발언할 때 ‘정치인의 입장’임을 전제하는 경우가 많다.
여권 관계자는 “전대협 초대 의장 출신으로 대북·통일 정책을 자신의 전문 분야로 간주해 온 이 장관으로선 작년 7월 취임 이후 남북관계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해 답답한 상황일 것”이라며 “3월 한·미 연합훈련 기간 북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면 임기 내에 남북관계를 반전시키기 어렵다고 보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 같다”고 했다.
외교가 일각에선 “한미동맹 이슈인 연합훈련에 대해 국방·외교 장관도 아닌 통일 장관이 훈수성 발언을 이어가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직 외교관은 “통일부 장관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멤버인 이상 군사·동맹 이슈에 대해 발언권이 없다고 할 순 없다”면서도 “주무부서인 국방부·외교부도 의견 표명을 자제하는 상황에서 통일부 목소리만 계속 들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이인영 장관의 최근 발언들
▶1월 25일 출입기자 기자간담회
“한·미 연합훈련 관련해 통일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아무래도 주무 부서는 통일부가 아닌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의견 개진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가지 문제(코로나, 도쿄올림픽, 바이든 정부 대북정책, 전작권 전환)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지혜롭고 유연하게 대처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북·미, 우리는 물론 서로에 긴장을 조성하는 부분을 자제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군사 훈련도 심각한 군사적 긴장으로 가지 않게 우리가 지혜롭고 유연하게 해법을 찾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한국 정부 문제만 아니라 북쪽의 시각도 유연하고 열려 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2월1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
“통일부 장관으로 군사훈련이 많은 것보다는 평화회담이 많은 것을 당연히 원합니다. 개인적으로 정치인의 입장에서 군사훈련이 연기되어서 남북 관계가 개선되는 이런 데로 물꼬를 틀 수 있다면 그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 국익에도 도움이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2월3일 서울외신기자클럽 초청 간담회
“외신들께서도 최근 관심을 가지고 계신 몇 가지 사항에 대해서 통일부의 입장을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3월에 예정된 한미연합훈련은 코로나 상황과 도쿄올림픽, 그리고 미국 신정부의 대북정책, 우리 정부의 전시작전권 환수 절차 등 종합적 측면을 고려하며,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에 부합하는 방향에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정리해 나갈 것입니다. 다만, 군사훈련 문제가 한반도에 심각한 갈등 상황으로 번지지 않도록 우리도, 북한도 지혜롭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2월4일 국회 대정부질문
“그들(북한) 나름대로 군사 문제를 근본 문제로 부각시켰고 그런 과정에서 첨단 군사 무기나 아니면 한미군사훈련, 이런 것들을 예로 적시했었기 때문에 3월 예정돼 있는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진행된다면 나름대로 일정한 반발과 그로 인한 어떤 긴장의 유발 가능성, 이런 것은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일 것 같습니다. 다만 우리 측이 한미연합군사훈련과 관련해서 코로나 상황이라든가 또 도쿄올림픽의 상황이라든가 그리고 미국의 대한반도정책의 정립 과정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 내부에 군사적 수요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작전권 환수와 관련해서 이른바 절차적인 어떤 이행과 관련해서 꼭 필요한 이런 훈련, 이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을 함께 서로 열어놓고 이해하면서 군사훈련 문제가 다시금 긴장을 고조시키고 남북한의 갈등으로 그렇게 점화돼 나가는 이런 방식보다는, 또 북미 간의 새로운 갈등의 어떤 계기로 작용하는 이런 것보다는 좀 더 유연하게 지혜롭게 대처하는 이런 방식을 찾아나가야 하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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