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시대의 디테일

노주희 2021. 2. 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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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정부 또한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보호주의 통상정책을 펴리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그 방식은 다를 것이다. 한국의 시민사회와 국회, 언론이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EPA

보호무역주의는 원래 미국 민주당의 전통적인 통상정책 기조였다. ‘미국 우선’이라며 신보호주의를 들고나온 트럼프는 공화당의 이단아였다.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에 부통령을 맡았던 바이든은 당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미국 등 12개국이 참여한 다자간 무역협정) 타결을 추진하는 등 민주당 내에서 자유무역파로 분류되던 인물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엔 자국 산업과 노동자들을 먼저 보호해야 한다는 보호무역주의 성향의 의견도 표명해왔다. 더욱이 지금은 코로나19로 미국 경제가 망가진 상황이다.

그래서 바이든 정부 또한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보호주의 통상정책을 펴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바이든은 이미 후보 시절에 의료물자와 에너지, 반도체, 핵심 원자재 등의 첨단산업 부문에서 미국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이를 위해 ‘미국산 우선 구매법(Buy American Act)’ 등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중국의 막대한 대미 흑자가 불공정한 무역관행 때문’이라는 관점은 원래 민주당 통상정책의 기조였다. 바이든은 코로나19 사태의 책임이 중국에 있다는 미국 내 여론 또한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도한 미·중 1단계 무역합의가 발효된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중국의 미국산 수입을 목표만큼 늘리지 못했다는 불만이 확산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중국에 대한 강경한 통상정책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바이든의 통상정책이 트럼프와 같을 것이라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던가. 같은 기조이지만, 그 기조를 실행하는 방식은 사뭇 다를 것으로 보인다.

첫째, 바이든은, 트럼프가 동맹국들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수입 규제 및 관세 부과를 하면서 내팽개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복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새 행정부는 한국, 유럽연합(EU) 등 동맹국에 대한 기존의 무차별적 무역 공격을 수정하거나 철회하고, 이 국가들과의 연대 및 다자주의를 회복하려 할 것이다. 이는 곧 중국을 견제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둘째, 바이든은 다자간 무역협정을 중심으로 디지털서비스세, 기후위기 등 신(新)통상 이슈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려 할 것이다. 트럼프는 TPP에서 미국을 탈퇴시켰다. 한국(한·미 FTA) 및 캐나다·멕시코(NAFTA)와 체결했던 자유무역협정은 재협상했다. 많은 나라가 참여하기 때문에 미국의 이익을 관철하기 힘든 다자간 협상보다 상대방을 찍어놓고 압박할 수 있는 양자 간 협상을 선호했던 것이다. 반면, 바이든은 파리기후협약 재가입은 물론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미국을 제외하고 타결·발효된 TPP)에도 참여 가능성을 타진할 것으로 점쳐진다. 양자에서 다자로의 변화다.

셋째, 트럼프 재임 기간 사실상 중단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개혁도 재가동될 것이다. 특히 트럼프의 방해로 고사 상태에 빠진 WTO 분쟁해결 절차부터 회복시킬 전망이다.

소수 통상 관료와 전문가들이 정보 독점

이처럼 기조는 같아도 방식이 다르다. 방식의 차이는 곧 세계 통상질서의 재편으로 이어진다.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유관부처와 민관 연구소, 업계가 바이든의 통상정책 방향을 정리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데 여념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다른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2006~2007년 한·미 FTA 협상 당시 그토록 뜨거웠던 시민사회 진영이 최근의 통상 논의에서는 자취를 감췄다. 국회와 언론도 통상 정책에 대한 견제와 감시 역할을 포기한 것 같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소수의 통상관료와 전문가들이 통상 관련 정보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이슈가 산적해 있다. 바이든 정부의 출범과 함께 글로벌 차원에서 새로운 무역규범을 형성하기 위한 ‘투쟁의 장’이 펼쳐질 것이다. 이에 한국의 시민사회와 국회, 언론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중대한 국익 훼손으로 귀결될 수 있다.

노주희 (경기국제평화센터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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