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성의 금융CAST]인터넷은행들의 말 못할 그림자..중금리
기대와 달리 1금융 은행들과 경쟁하며 고신용자 대상 영업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인터넷전문은행, P2P금융이 갖는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인터넷 기술의 발달에 따라 나타난 금융업이라는 데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 당국도 정책적으로 지원을 많이 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인터넷전문은행 인가도 내주고, P2P금융업의 합법화 길도 열었습니다. 기존 은행들이 하지 못하는 역할에 대한 기대감입니다.
그러나 이런 본래 취지와 다르게 인터넷전문은행들도 고신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신용대출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이를 개선하기 위해 중신용자 대출 확대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고신용자 대상 신용대출이 주된 사업 영역으로 보입니다.
P2P금융은 업계 신인도가 떨어진 터라 많은 이들에게 금융사로서의 신뢰를 주기에 부족한 모습입니다. 중금리 대출 플랫폼은 우리에게 요원한 것일까요?
중금리 대출은 무엇?
중금리 대출의 사회적 의미는 ‘약자를 위한 대출’입니다. 저금리와 고금리 사이의 깊은 골을 메우는 데도 의미가 있습니다.
은행에서 대출을 못 받으면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 혹은 카드론 등을 이용해야하는데, 금리가 거의 점프를 뛰는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1금융권 금리와 2금융권, 그 밖의 사금융 간 금리 골이 그만큼 깊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2월 기준 한국은행이 집계한 1금융권 은행 가중평균 금리는 2.80%였습니다. 기준금리가 0.5%로 떨어지면서 최근 수년간 극적으로 떨어졌습니다. (지난해 12월에는 3.40%였습니다.) 신용도가 높은 사람일 수록 많은 돈을 보다 싼 금리로 빌릴 수 있게 된 것이죠.
새마을금고의 일반 대출 가중평균 금리는 3.98%, 신용협동조합의 일반 대출 가중평균 금리는 3.92%였습니다. 아무래도 지역 사회에서 은행들과 직접 경쟁하는데다 시장 금리까지 낮으니 은행권과 차이가 많이 줄었습니다.
합밥적인 대부업체 금리는 이보다 더 높고 불법사금융은 훨씬 높습니다. 1금융권에서 멀어질 수록 금리 폭은 커집니다. 신용도에 따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저금리 시대 더 뚜렷해졌습니다. 금리 인하에 따라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신용도가 올라갔고, 이들이 빌리는 돈 규모도 커졌습니다.
NICE신용평가에 따르면 고신용자군(1~3등급) 신규신용대출 금액 비중은 2012년 44.5%에서 2019년 62%로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4~7등급 신규 신용대출 금액 비중은 49.3%에서 35.6%로 줄었습니다. 고신용자일수록 돈 빌리기 쉽고 저신용자일수록 돈 빌리기 어렵게 된 것입니다.
왜 중금리 대출이 중요한가?
은행에서 선호하는 1~3등급 신용자가 아니라면 2배 가까운 이자를 더 내야합니다. 대출 가능 금액도 더 줄어듭니다. 이런 고금리 대출은 중하위 신용자들의 이자 부담을 가중시키고 신용 점수 하락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중하위 신용등급자가 되면 벗어나기 쉽지 않은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보통 대출을 받으면 신용점수는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하락 폭은 은행권에 가까워질 수록 적습니다. 만약 2등급 신용자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 2등급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3등급으로 떨어지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평균적으로 0.5단계 정도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2금융권이나 대부업체에서 고금리 대출을 받게 되면 1.5등급이 떨어집니다. 등급 하락 폭이 3배 가량입니다. 4등급 신용자라면 5등급, 6등급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1금융 대출은 더 힘들어집니다.
혹여 한끝 차이로 은행 대출을 못 받았는데, 금리 부담은 물론 신용 등급 하락의 굴레까지 쓰게 된다면 중신용자들은 억울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5%로 낮췄다고 한들 이들이 체감하는 효과는 적은 것이지요.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깨기 위해 필요한 게 중금리 대출입니다. 5~10% 사이의 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다면, 대출자는 이자 부담을 덜고, 신용등급 하락 걱정도 덜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대를 받고 시작한 게 인터넷은행인데, 이들 은행들은 아직까지 기대에 못 미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019년 기준 2개 인터넷은행들의 신용대출액은 12조3700억원인데, 이중 대부분(97%)는 은행 대출 이용이 가능한 고신용자들에 집중됐습니다. 중금리 대출 비중은 3%도 안되는 것이지요.
금리 격차를 메우는 것은 기술 뿐
은행들도 할 말은 있습니다. 금융당국의 건전성 규제를 직접 받는 은행 입장에서 중금리 대출을 해주기가 쉽지 않습니다.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고 규제도 덜한 2금융권이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2금융권은 왜 중금리 대출을 쏙 뻬고 고금리 대출에 주력하는 것일까요? 채무 불이행에 대한 리스크를 고려했을 때 중금리 대출 수익성은 낮다는 데 있습니다. 이들 금융사 입장에서 세부적으로 중하위 신용자들의 신용도를 따지기 쉽지가 않습니다. 과거 채무 불이행 전력이 있는 사람과 은행 이용 이력이 없어 신용도가 낮은 사람은 구분돼야 하는데, 이런 구분이 쉽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설령 과거 채무를 연체한 경력이 있다고 해도, 지금 소득이 일정하고 성실하게 채무를 갚을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보다 싼 이자로 대출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기존 신용평가에서는 이런 사람들의 구분이 되지 않다보니 뭉뚱그려 고금리 대출을 받아야 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자활을 억누르는 셈입니다.
실제 저축은행들은 대형사 몇 곳을 제외하고 대부분 저축은행 중앙회 시스템을 공유합니다. 대부업체들은 각각의 신용도 평가가 어렵기 때문에 고금리부터 시작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기존 신용평가를 뛰어넘는 대안신용평가는 중금리 대출 확대의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 카카오뱅크도 자신들만의 대안신용평가 시스템을 구축 중이라고 했고, 네이버파이낸셜은 스마트스토어 입점자들을 대상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부실에 대한 딜레마가 관건
다만 우려되는 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부실에 대한 우려입니다. 중하위 신용자 대출이라면 따라붙을 수 밖에 없습니다.
달리 말하면 금리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떼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높은 금리는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과 같은 비용일 수 있습니다.
왜냐, 신용 등급이 하위로 갈 수록 연체나 부실에 대한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보다 3년전 자료이긴 하지만 2017년 한국신용정보원에 등록된 수치를 보면 1등급 신용자의 채무 불이행 가능성은 0.05%입니다. 5등급까지는 0.7%로 1% 미만이지만 7등급 이상부터 급격히 늘어납니다. 9등급이 11.87%, 10등급이 33.03%에 이릅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도 중하위 신용자들의 주택담보채권이 연쇄 부실이 일어나면서 발생했습니다. 주택 경기 과열에 편승한 은행들의 대출 남발과 부도 위험성을 무시한 유동화가 걷잡을 수 없는 신용 사태로 비화됐습니다. 결국 21세기 최대 경제 위기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같은 사태를 어떻게 피해가야 할까요. 금융당국의 적절한 감시, 금융사들의 탐욕 제어, 신용도에 따른 합리적인 금리 산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 역할은 (지금껏 이를 제대로 못한) 인터넷은행 뿐만 아니라 은행과 2금융권이 함께 해야할 부분입니다.
김유성 (kys40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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