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김명수 대법원장, '견책'했으면서 책임은 안 진다?
어떤 주장을 하든 너는 누구 편이냐고 묻는 사람이 너무나 많은 시대이기에 미리 밝혀둔다. 나는 임성근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 그 자체는 명분이 있고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재판개입 행위가 반헌법적이라는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1심 형사 재판의 결론에도 동의한다. 개인적으로는 사법농단 관여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글을 쓴 적도 있다. 2월 28일 이후 임 부장판사의 임기가 만료되어 퇴직하면 탄핵심판 청구 자체가 각하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지만, 퇴임 이후에도 반헌법적 행위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판단을 내려야 하는 소의 이익이 존재한다는 의견 역시 경청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일그러져버린 '법관 탄핵'의 명분
하지만 2018년 하반기에 사법농단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마무리된 이후 2년 넘게 시간이 흐르면서 사법농단 관여 법관에 대한 탄핵의 명분과 대의는 너무나 많이 일그러져 버렸다. 명분이 분명하고 필요성이 뚜렷했던 법관 탄핵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오염된 것에는 많은 사람의 책임이 있다. 책임을 회피하면서 거짓말을 한 대법원장, 법관 탄핵을 사실상 방치하다가 탄핵 대상자의 임기만료가 눈 앞으로 다가와 각하 논란이 불거지게 됐는데도 '공교롭게도' 핵심 지지층에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 통제'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자 탄핵소추를 적극 추진하기 시작한 여당, 이 과정에서 사법농단 행위에 연루된 인물로 지목됐으면서도 의원직을 유지한 채 법관 탄핵 발의에 동참한 특정 여당 의원과 해당 의원에 대해 침묵한 다른 여당 의원들, 그리고 여당의 정치적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법관 탄핵 자체를 삼권분립에 대한 위협이라고 규정하고 정략적으로 비난한 야당. 이 모든 이들이 법관 탄핵의 명분과 대의를 훼손한 원인 제공자들이다.
그러나 법관 탄핵의 명분과 대의를 망쳐버린 책임이 가장 큰 사람을 한 명만 꼽자면 김명수 대법원장을 지목할 수밖에 없다. 임성근 부장판사의 행위는 가벼운 징계 사안에 불과하고 사실상 탄핵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 사람, 사실상 자신이 주도한 징계 처분의 결과로 임성근 부장판사가 사표를 낼 수 있는 상황이 됐는데도 정치권 움직임을 거론하며 사표를 반려하고 이에 대해 거짓말하며 책임을 회피하려고 했던 사람, 법관 탄핵을 반대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근거를 제공했으면서도 설명을 요구받자 침묵하는 사람, 사법부의 최고 법관이자 사법행정권의 최고 책임자가 김명수 대법원장이기 때문이다.
● '법관 탄핵' 오염의 최고 책임자, 김명수 대법원장
김명수 대법원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 살펴보자. 김명수 대법원장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검토해보겠다. 입으로는 얼마든지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행동에는 의도와 목적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제시하는 서류는 2018년 10월 12일 자 대한민국 관보의 일부다. 어떤 법관에 대해 대법원장이 징계처분을 했음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문서다. 이 문서에 등장하는 "대법원장"은 김명수대법원장을 뜻하고, 징계 처분의 대상자는 임성근 부장판사다. 많은 사람이 잊고 있지만 임성근 부장판사의 사법농단 행위에 대해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미 2018년 10월에 징계처분을 했고 이를 관보를 통해 공식적으로 발표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김명수 대법원장은 임성근 부장판사의 재판개입 행위에 대해 어떤 처분을 했을까?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라고 판단하며 중징계를 처분했을까?
"징계의 종류: 견책"
김명수 대법원장은 임성근 부장판사의 재판개입 행위에 대해 "견책" 처분을 했다. 행정학 사전을 찾아보니 "견책"은 "업무상 과오를 저지른 공무원에게 꾸짖고 타일러서 잘못을 뉘우치게 하는 징계처분"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인사 관련 자료에 징계 처분 기록이 남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불이익이 거의 없는, 공무원이 받을 수 있는 가장 가벼운 수위의 징계 처분이다. 법에 의해 신분이 보장되는 법관은 다른 공무원과 달리 탄핵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파면하거나 해임할 수는 없지만, 견책 외에도 정직[일정 기간 직무를 정지하는 것], 감봉[일정 기간 급여를 줄이는 것]의 징계는 처분할 수 있다. 그럼에도 김명수 대법원장은 임성근 부장판사의 행위가 파면[=탄핵의 결과]은 커녕 정직이나 감봉을 줄 정도도 아닌 가벼운 사안이라고 판단해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참고: 탄핵심판과 달리 대법원의 징계 사건에는 시효가 있다. 재판개입으로 규정된 임성근 부장판사의 3건의 행위 중 대법원은 징계 시효가 남아있는 1건의 행위에 대해서만 판단해 '견책을 처분했다. 그러나 3건은 재판개입이라는 본질이 같을 뿐만 아니라, '죄질' 면에서는 대법원 징계 처분의 이유가 된 1건이 가장 좋지 않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견책'은 1건에 대한 것이고, '탄핵소추'는 3건에 대한 것이라 다르다는 변명은 성립하지 않는다.')
● '재판개입은 견책 사안'…탄핵 명분 흔든 대법원장
즉, 김명수 대법원장의 '행동'은 임성근 부장판사의 재판개입 행위가 "중대한 헌법 위반"이 아니라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임성근 부장판사가 공개한 녹취파일에도 "탄핵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발언이 포함돼 있지만, 이에 앞서 2018년 10월에 김명수 대법원장은 임성근 부장판사 사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명백하게 한 셈이다.
나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관여 법관들에게 견책 등의 가벼운 징계를 하며 사실상 면죄부를 부여했을 때 이를 비판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러나 어쨌든 자신의 처분을 스스로 뒤집지 않는 이상, 대법원장에게는 공식적 처분을 통해 밝힌 결론을 설명해야 할 책임이 있다. '탄핵할 사안으로 보지 않는다'라는 입장 말이다.
(참고: '정직'과 '감봉'과 달리 '견책'의 경우 징계집행권자가 대법원장이 아니라 소속 법원장이다. 하지만 징계 여부와 수위를 의결하는 법관징계위원회의 위원장과 위원, 간사는 모두 대법원장이 임명하거나 위촉한다. 징계 처분의 공고도 대법원장이 한다. 징계집행권자가 해당 법관의 소속 법원장이기 때문에 '견책' 처분은 대법원장이 한 것이 아니라는 형식논리적 변명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김명수 대법원장은 최근 국회에서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가 추진되기 시작하자 이에 대해서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견책' 처분을 한 후 2년 넘게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잊었으리라고 생각한 것일까? 임성근 부장판사의 행위와 탄핵소추 움직임에 대한 입장을 국회의원이 질의까지 했지만 '견책' 처분을 했을 때 이미 대법원은 이 사안을 탄핵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취지의 설명을 하지 않았다.
국회와 헌재의 권한을 존중했기 때문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국회와 헌재의 권한을 존중하는 것과 대법원장으로서의 자신의 판단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양립 불가능하지 않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판사가 무죄 판결문을 쓴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2심 재판부의 권한을 무시하는 일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대법원이 징계 과정에서 '탄핵할 일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린 사실과 그 이유를 밝히는 것은 대법원과 별개로 탄핵소추를 추진하는 국회의 권한을 침해하는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탄핵소추는 국회의 권한이지만 대법원장인 나는 이미 임성근 부장판사의 행위가 탄핵사유는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가장 가벼운 징계 처분을 한 적이 있다. 탄핵할 일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당당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시 말하지만 이 결론을 내가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침묵하는 대법원장
김명수 대법원장은 임성근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처분에 대한 책임을 회피했다. 반복해서 이야기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은 임성근 부장판사의 행위에 대해 파면은 커녕 가장 가벼운 징계인 '견책'으로 끝날 일이라는 결론을 발표했던 사람이다. 이렇게 징계 절차를 마무리했기 때문에 김명수 대법원장에게는 임성근 부장판사가 사표를 제출하면 이를 수리해야 할 법적 의무가 생겼다. 그럼에도 김명수 대법원장은 임성근 부장판사가 사표를 제출하자 '국회의 탄핵소추 논의'를 언급하며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
물론 정직이나 감봉 처분을 했다고 하더라도 징계 과정이 끝난 이후 사표를 수리할 의무는 마찬가지로 발생한다. 하지만 징계 과정에서 임성근 부장판사의 행위가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고 선언하고, 가장 높은 수위의 징계인 '정직 1년'을 처분했다면,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국회의 탄핵소추를 기다리겠다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태도가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을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손으로 징계를 해야 할 때는 가장 가벼운 '견책'으로 마무리해놓고, 당사자가 사표를 내자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논의될 수 있으니 사표를 수리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비겁한 처신이라고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표 반려 과정에서 탄핵을 언급한 적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가, 임성근 부장판사가 대화 녹취파일을 공개하자 하루 만에 "기억이 불분명했다"라며 사과한 일은 지켜보기가 민망할 정도의 블랙코미디였다.
● 김명수 대법원장이 할 수 있는 두 가지 선택
김명수 대법원장의 '견책' 처분이 문제가 되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법관 탄핵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논리적 근거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진보 성향'의 대법원장마저 견책 정도로 끝낼 일이라고 발표했는데도 탄핵을 추진하는 것은 사법부에 대한 정치적 공세라는 주장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제 와서 침묵한다고 해서 "대법원장"이 "견책" 처분을 공고했다는 관보의 기록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견책' 처분에 대한 책임을 도저히 피할 수 없다.
지금 김명수 대법원장이 해야 할 일은 두 가지 중 하나다. 지금이라도 '견책' 처분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해명하든지, 아니면 국회와 헌법재판소의 권한 행사와 별개로 2018년 10월에 자신이 처분한 '견책'은 적절한 조치였으며 임성근 부장판사의 행위는 법관을 탄핵할 정도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혀야 한다. 임성근 부장판사에게 가장 가벼운 수위의 징계를 실질적으로 처분한 사람이자 탄핵소추가 무리한 행위라는 주장에 근거를 제공한 한 당사자로서, 그리고 대한민국 3부 요인의 한 사람이자 사법행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당연히 감당해야 할 책임이자 의무이다. 타조가 짚더미에 머리만 처박는다고 사냥꾼이 타조를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듯이 대법원장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한다고 해서 책임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설마 임성근 부장판사에게 한 말에 대한 기억이 9달 전 일이라 "불분명"했다고 주장했듯이, 2년 4개월 전에 한 견책 처분이라 기억이 불분명하다고 변명할 것인가?
● 대법원장은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임성근이 한 일은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가 아니다'라는 일종의 소신(?) 발언이든, '생각해보니 그때의 견책 처분은 잘못이었다'라는 고백과 사과든, 국민과 사법부 구성원들은 대법원장으로부터 명확한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7년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됐을 때 "(저는) 31년 5개월 동안 법정에서, 그것도 사실심 법정에서 당사자들과 호흡하면서 재판만 해온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수준인지, 어떤 모습인지 이번에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판사의 본업인 재판에만 집중해온 성실한 법관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김명수 대법원장은 설명할 의무가 있다. 대법원장은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사진=연합뉴스)
임찬종 기자cjy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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