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섬' 교동도를 가다
◀ 김필국 앵커 ▶
설 명절이 다음 주입니다.
이렇게 명절이 다가올 때면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누구보다 큰 분들이 있죠?
◀ 차미연 앵커 ▶
아무래도 북한에서 피난왔던 실향민들일텐데요.
고향 떠난지 70년 세월이 지난만큼 이젠 생존해계신 분이 많지 않다는데요.
이상현 기자가 이 '실향민들의 섬' 교동도를 찾아가봤습니다.
◀ 리포트 ▶
강화도를 지나 서해쪽으로 향하면 나타나는 '실향민의 섬' 교동도.
7년전 생긴 교동대교로 이젠 배가 아닌 차량으로도 들어가는데요.
북한과의 거리가 불과 2~3킬로미터로, 섬 전체가 민간인통제구역인 곳입니다.
이런 곳에 70년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특별한 시장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봤습니다.
[이상현 기자/ 통일전망대] "교동도 한복판에 자리한 대룡시장 입구입니다. 아직도 옛 모습을 많이 간직한 시장이라는데요, 어떤 모습인지 지금부터 저랑 함께 들어가보시죠."
한국전쟁때 황해도 연백군 주민들이 한강을 건너 잠시 피난왔다가, 남북분단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자 생계를 위해 연백시장을 본따 만들었다는 골목시장.
차 한대가 간신히 지나갈만한 비좁은 골목길 양편으로 조그마한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1960~7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상점들 사이로 가장 먼저 눈에 띈건 떡 방앗간이었습니다.
설 명절을 앞두고 쉴새없이 뽑아낸 가래떡이 김을 모락모락 내며 줄을 서 있고, 재래시장 특유의 정겨움까지 더해져 손님들의 발길을 이끕니다.
"찍지 말고 먹어봐, 먹어봐요." "오 쫀득쫀득하네요 와우"
바로 앞 정육점도 명절특수로 분주하긴 마찬가지.
"여기 줄서요, 주말에는요 여기 다 막 줄서요."
실향민인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이곳에서 정육점을 운영한다는 이 사장님은 이 시장의 상인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최성호/대룡시장 상인회장(실향민 2세)] "저 집이 떡을 팔면 같은 건 안팔아요 서로가. 저기서 찹살떡을 팔면 (여기는) 송편을 팔고 이런 문화가 북한식 문화같아요. 자유스럽게 서로 막 경쟁하기보다는 경쟁속에서 보이지 않게 정리를 하고서 (장사를) 하시더라고요."
정육점 바로 옆 자리는 예나 지금이나 양복점입니다.
"제가 중학교 교복 맞춘 곳이에요"
6살이던 1950년, 엄마와 언니는 북에 남겨두고 아빠와 단 둘이 이곳으로 피난왔다는 이순덕 할머니가 이 양복점의 안 주인.
한때 4천명 넘게 있다가 이제 45명밖에 남지 않은 교동도 실향민 1세대중 한분입니다.
[이순덕/ 교동도 실향민(77세)] "(그 옛날 기억이 나세요? 연백군 기억이?) 사는 동네는 생각나지. 데려다주면 집이 어딘지 알지. 눈 안에서 그림처럼 다 알고 있지. 지금은 못가서 그렇지."
5년전 돌아가신 실향민 할아버지의 시계방은 할아버지의 밀랍인형과 소품으로 기념관처럼 만들어졌고, 그 주변의 이발관과 다방의 모습은 마치 시간여행을 떠나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지역의 특산물이 된 순무김치.
"배추꼬리 있죠? 그 맛이 나요. 이게 이북에서 왔다고 그러더라고요. 달고 구수한 맛이 있죠? 김치맛도 달라요"
연백찹살떡같은 북한식 음식들은 이제 실향민의 자손들이 이어받아 시장 방문시 빼놓을수 없는 코스로 키워가고 있습니다.
"엄마 아버지가 연백 사시다 피난나오셔서 이거 우리가 2세니까 배워서 이렇게 하는거에요"
여기에, 건물 벽 곳곳에 그려진 옛 정취 가득한 벽화들까지 더해져 대룡시장은 몇해 전부터 이른바 힙한 관광지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박은비(딸)/임정순(모)/서울 금천구] "여기가 되게 예쁘게 조성되어있고 부모님 어렸을때의 감성을 느낄수 있어서 일부러 찾아왔어요." "어렸을때 시골의 기억이 나죠 아무래도. 우리 어렸을때 시골에서 살았으니까 이런 분위기가 너무 푸근하고 좋아요. 옛날로 돌아온 것 같아요."
대룡시장을 뒤로 하고 찾아간 곳은 북한땅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망향대였습니다.
날이 흐려 북한땅이 또렷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설을 앞두고 다시 한번 이곳을 찾은 실향민 할아버지에겐 모든 것이 또렷합니다.
10살 소년이던 1950년 피난길에, 깜빡 놓고온 놋그릇을 챙겨 금방 돌아오겠다며 북쪽으로 다시 강을 건너시던 어머니의 모습.
그게 마지막일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고, 그로부터 70년 넘은 세월이 쏜살같이 흘렀습니다.
[황래하/ 실향민(81세)] "2002년에 집을 한 40~50평 지었는데 이북 방향으로 집을 지었어요. 어머니가 하도 보고 싶어서. 꿈에라도 좀 나타나실까 해서 그랬는데 한번도 안보여주셔..하여간 그렇게 보고 싶은데도 안보여주시고..정말 무슨 일때면 어머니 생각때문에 눈물이 많이 나죠."
북녘의 조상을 위한 제단과 실향민의 이름들이 빼곡하게 적힌 기념석 한켠으론 푸드트럭으로 만든 조그마한 카페가 눈에 띄었습니다.
북한과 가장 가까운 카페인 셈인데, 무명가수 출신의 실향민 자손이 2년전 이곳 교동도로 낙향해 차린 겁니다.
매일매일 자유롭게 남북을 오가는 철새들을 보며 주변 청소를 하고 이곳을 찾는 관광객에게 설명도 해주면서 망향대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안민수/망향카페 사장(무명가수)] "참 너네(철새)들이 부럽다고 하잖아요. 여기 오시는 분들이..(철새들이) 북한에서 넘어오면 너네들은 왔다갔다 하는데 우리는 못가고 (이렇게 말들 하시죠)"
이 카페사장님이 청소하다 낙엽으로 만든 이른바 '망향대 낙엽하트'는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고, 덕분에 외지인들의 관광유입도 한층 많아졌다고 합니다.
[조현미/강화군 교동면장] "여기 분들이 북쪽에 있는 성향이 더 강했다고 하면 대교가 놓이면서 강화읍과의 거리도 가까워지고 하니까 그쪽 성향이 좀 강해진 면이 있어요. 그리고 외지분들 관광객도 많이 오다 보니까 좀 주민들이 좀 개방적으로 많이 바뀌신 거죠."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조선시대 연산군 등의 유배지였다가 한국전쟁때엔 피난민들을 넉넉히 품어줬던 외딴섬 교동도.
이제는 '시간이 멈춰버린 섬'이라는 별칭으로 도시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옛 추억을 내어주는 특별한 역할을 수행하며 우리 사회의 또다른 명소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내가 살던 교동은 아름다운 섬.. 그 속에서 사는 내가 참 좋습니다."
통일전망대 이상현입니다.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unity/6080256_291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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