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을 신은 트럼프' 초선의원에게 휘둘리는 공화당?
[전홍기혜 특파원(onscar@pressian.com)]
'하이힐을 신은 트럼프'라는 별명을 가진 마저리 테일러 그린 공화당 하원의원이 하원 교육노동위원회와 예산위원회에서 제명됐다.
민주당이 다수당을 점하고 있는 하원은 4일(현지시간) 회의를 열고 마저리 테일러 그린 의원(조지아 14선거구)이 상임위원회로 교육위원회와 예산위원회에 배정된 것을 취소하는 결의안을 찬성 230표 대 반대 199표로 통과시켰다. 공화당 의원 중 11명만 그의 제명에 찬성표를 던졌고, 대다수 공화당 의원들(199명)은 그린을 옹호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다수가 믿는 음모론인 '큐어넌' 신봉자들이 밀고 있는 그린은 최근 언론을 통해 과거 발언들이 알려지면서 국회의원 자질 논란이 일었다. 그린은 특히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 민주당 주요 정치인들을 죽이자는 주장에 동조했을 뿐 아니라 이를 추진하는 페이스북 그룹의 전국 이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 학교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해 '사기'라고 주장하는 등 인종차별과 정치적 폭력을 조장하는 발언들을 수도 없이 쏟아냈다. 하지만 공화당은 그린을 단죄하지 못했다.
물론 공화당 내에서도 '균열'이 확인됐다. 이날 그린 제명 결의안에 11명의 '반란표'가 나왔다. 앞서 트럼프에 대한 탄핵소추안에 찬성표를 던졌다가 하원 지도부에서 내몰릴 뻔한 리즈 체니 의원(와이오밍)이 3일 표결을 통해 의원총회 의장 자리를 지키기도 했다. 다만 체니 의원이 자리를 지킨 것은 투표가 무기명으로 진행된 데다가 부시 행정부 시절 전 부통령인 딕 체니의 딸이라는 독보적인 지위 때문이기도 하다.
2022년 선거를 앞두고 대다수의 공화당 의원들은 열성적이고 과격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 케빈 매카시 하원 원내대표 등 공화당 지도부들도 분명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매코널 대표는 성명을 내고 그린의 과거 발언에 대해 "공화당에 암적인 존재"라고 비판했지만, 정작 그린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지는 못했다. 매카시 대표도 그린의 발언에 대해 "공화당의 노선에 어긋난다"고 비난했지만 "학교 총기 사고를 옹호하는 의원을 교육위원회에 배정하는 것을 문제가 있다"는 그린의 상임위 배정에 대한 문제제기는 묵살했다.
오히려 의원이 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그린 의원은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끝까지 지켰고, 자신을 비난하는 공화당 지도부를 향해 "이런 나약한 태도가 공화당에 암적인 존재"라며 화살을 돌렸다. 그린은 또 지난 주말 트럼프가 격려 전화를 통해 "100% 지지한다"는 발언을 했다고 공개하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집중 공격을 빌미로 후원금을 모금해 지난 2주간 160만 달러(17억 원)를 긁어모으는 등 기세등등한 태도를 보였다.
그린 "유대인이 우주 레이저로 캘리포니아 산불 일으켜"
지난해 11월 3일 선거를 통해 의회에 처음 입성한 그린은 '큐어넌(Qanon)' 신봉자로 선거 전부터 자질 논란이 일었었다. '큐어넌'은 2017년께부터 인터넷을 통해 성장한 백인 우월주의에 기반한 음모론이다. '큐어넌'은 민주당 정치 지도자들이 외계인과 결탁한 세력(딥 스테이트)이며, 이들을 유일하게 견제하는 게 트럼프라고 주장한다. 또 이들은 딥스테이트가 소아성애자들이면서 동시에 무신론자들이라고 비난한다.
그린은 최근 언론을 통해 의원이 되기 전인 과거 발언들이 보도되면서 논란이 거세졌다. 그의 과거 발언과 활동은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었다. 그린은 소셜미디어 등에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힐러리 전 국무장관을 "교수형 시키자",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제거하기 위해 "머리에 총을 쏘자"는 주장에 '좋아요'를 누르는 등 적극 동조했다. 더 나아가 이런 주장을 실천하기 위한 페이스북 그룹에서 '전국 이사'(national director)로 활동했다. 그는 2001년 발생한 9.11 테러 공격에 대해서도 정부가 조작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린은 또 샌디 훅 초등학교, 파크랜드 고등학교 등 학교 내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해 "거짓 깃발"이라는 주장에 동의하거나 돈을 주고 고용한 배우들이 거짓으로 꾸민 사기극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2019년 총기 규제 관련 법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 국회를 방문한 파크랜드 총기 사고 피해자를 쫓아다니면서 자신이 총기 소유자라고 밝히면서 괴롭히는 동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그린은 2018년 발생한 캘리포니아 산불에 대해 우주에서 레이저 광선이 산불을 일으켰으며, 이 음모의 배후에는 제리 브라운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 유대인 로스차일드 가문이 세운 투자회사 로스차일드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유대인 혐오를 부추기기 위한 그린의 이런 말도 안 되는 음모론적 주장은 소셜 미디어에서 '유대인 우주 레이저(#Jewish space laser)'라는 해시태그를 유행시키고 있다.
그린 "큐어넌은 일말의 진실 갖고 있어"…매카시, 그린 적극 옹호
그린은 4일 자신에 대한 제명 표결과 관련해 의회에서 9.11 테러, 학교 총기 난사 사건 등과 관련된 음모론에 대해선 철회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큐어넌'에 대해선 "일말의 진실"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항변했다. 그는 "언론이 진실과 거짓을 통해 우리를 분열시키는 것에 대해 큐어넌과 마찬가지로 단죄를 하려고 할 거냐? 나는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큐어넌'을 옹호했다. 그는 "우리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며 "발언의 자유에 대해 보장해야 한다"고 자신의 과거 발언을 옹호했다. 그는 오바마 등 민주당 정치인을 사형시키자는 주장에 대해선 언급도 하지 않았다. 결국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끝까지 유지했다. 그린의 이런 해명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은 "사과가 전혀 아니다"며 반발했다.
반면 공화당 의원들은 그린의 과거 발언까지 옹호하지는 못했지만, 과거 발언을 이유로 입법 활동을 상당 부분 제한할 수 있는 상임위 제명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매카시 원내대표는 심지어 공화당이 다음 회기에 다수당이 되면 위원회 활동을 금지시킬 수 있는 민주당 의원들의 '명단'을 보유하고 있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펠로시 의장은 이에 대해 "민주당이 세운 전례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며 그린을 옹호하고 있는 공화당을 비판했다.
[전홍기혜 특파원(onscar@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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