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뉴스-광주] 임동 방직공장 터 공공개발 할까

정대하 2021. 2. 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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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근대산업유산 수두룩 공장 터 부동산업체에 매각.. "공공가치 살려야" 목소리
일신방직과 전남방직 공장 전경. 광주시 제공
2020년 한가위에 이어 이번 설에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라는 국가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이번에는 직계가족이더라도 거주지가 다르면 꼭 4명까지만 모여야 합니다. 코로나19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 직후여서 상대적으로 느슨했던 2020년 설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질 것으로 보입니다. 입춘이 지났어도 아직 봄은 오지 않았습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고향 부모님 뵈러 가는 길은 조심스럽고, 자식들 얼굴 보러 움직이는 것도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이젠 ‘민족 대이동’이란 말도 농경사회 유물로 남을 판입니다.
그래서 <한겨레21>이 ‘우동뉴스’(우리동네뉴스)를 준비했습니다. 명절에도 발이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독자들을 위해 <한겨레> 전국부 소속 기자 14명이 우리 동네의 따끈한 소식을 친절하고 맛깔스럽게 들려줍니다. 고향 소식에 목마른 독자에게 ‘꽃소식’이 되길 바랍니다._편집자주

오래된 양조장이나 낡은 극장 등은 도시의 공동유산입니다. 하지만 많은 근대 건축물이 도시 개발로 한순간에 사라지고 있습니다. 광주에서도 동구 학동에 있던 남광주역사(1934년)나 충장로5가 옛 조흥은행(1943년) 건물 등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들이 철거됐습니다. 학교·관공서·의료기관 등 근대 건축물은 비교적 보존하기가 수월하지만, 민간이 소유한 건물이나 공간은 원형 보존이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일신방직·전남방직 이사 간 터 29만㎡

이번엔 광주 방직공장이 사라질 처지에 놓였습니다. 광주시 북구 임동 100-1번지 29만1801㎡(약 8만8270평)에 있는 일신방직과 전남방직은 원면에서 실을 생산하던 공장입니다. 두 곳 모두 2018~2019년 공장 가동을 중단했습니다. 2007년 무렵부터 광주 평동산단에 새 공장을 지어 가동 중인 두 기업은, 2020년 4월 광주시에 공장 터 용도변경을 요청했습니다. 공장 용지를 주거·상업 용지로 바꿔달라는 겁니다. 전남방직 쪽은 “1995년 평동산단을 조성하던 광주시가 공장 이전을 권유하면서 (예전 터는) 상업용지로 도시기본계획을 변경해주겠다고 제안한 바 있다”고 밝혔습니다. 광주시 도시계획과 쪽은 “도시기본계획엔 상업용지로 잡혔지만 결정 고시는 나지 않은 상태”라고 해명했습니다.

임동 방직공장 터 주인이 2021년 바뀝니다. 시와 용도변경 문제를 협의하던 두 기업은 2020년 7월 한 부동산개발 업체와 공장 터 매매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2018년 12월부터 두 기업 관계자들과 용도변경 등 실무 협의를 하던 시 공무원들도 몰랐을 정도로 터 매매는 ‘슬그머니’ 진행됐습니다. 이 때문에 광주 시민 사이엔 “반세기 넘도록 공장을 운영하며 광주에서 돈을 벌 만큼 벌었던 기업답지 않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시민단체에선 “공공성을 담보하지 않고 용도변경과 종상향을 해주는 것은 명백한 특혜”라며 반발했습니다. 공장용지에서 상업용지로 바뀌는 순간 땅값이 큰 폭으로 올라 ‘특혜’ 논란이 일 수 있습니다.

시민단체 등이 민간기업의 땅을 두고 공공성을 주장하는 배경엔 ‘공장 내력’이 놓여 있습니다. 두 공장은 1935년 임동에 지은 일본 기업 종연방적(鐘淵紡績)과 간접적인 연이 있습니다. 당시 임동 일대 농민들이 일제의 가혹한 토지 수용령에 따라 문전옥답을 강제로 내줘야 했습니다. 종연방적 공장은 방적기 3만5천 추, 직기 1440대가 놓여 노동자 3천여 명이 일할 때, 국내 최대 규모 공장이었습니다. ‘가네보 공장’으로 불린 이곳에 1944년 8월 일제가 발동한 ‘여자정신근로령’을 통해 강제 동원된 10대 여성 노동자들이 하루 12시간 혹독한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임동 방직공장은 광주의 근대산업유산이자 일제 수탈의 아픔이 배어 있는 공간입니다.

종연방적은 해방 이후 적산(일제나 일본인이 소유했던 재산) 시설로 미군정에 귀속됐다가 전남방직공사로 이름이 바뀝니다. 1945년 군정청에서 운영하는 전남방직공사의 공장장으로 임명받은 인물이 김형남입니다. 한국전쟁 중인 1951년 전남방직공사는 전남방직으로 민영화돼 훼손된 공장 시설을 복구합니다. 1961년 전남방직을 일신방직과 전남방직으로 분할해 지금에 이릅니다.

광주시 북구 임동 100-1번지 일신방직 공장 안 고가 수조. 광주시 제공

1970년대 여성 노동자 6천여 명 근무

일신방직은 목화씨를 처음 들여온 고려 말 문신 문익점의 자 ‘일신’을 회사 이름으로 지었다고 해요. 전남방직 사주 김용주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아버지입니다. 전남방직과 일신방직 임동 두 공장에선 1970~80년대 무려 6천여 명의 여성 노동자가 일했다고 합니다. 임동 방직공장은 농촌에서 올라온 가난한 여성 노동자들의 꿈과 눈물이 스며든 곳입니다.

임동 방직공장에 ‘공공성’이란 가치를 담을 수 있을까요? 2020년 4월 두 기업이 시에 제출한 개발 계획은 초고층 상가아파트 단지와 호텔, 쇼핑복합시설 등을 짓는 것에 방점이 찍혔습니다. 근대산업박물관과 전시관 등 ‘공공용지’는 6.4%에 불과합니다. 광주 지역 15개 시민단체는 최근 ‘전남·일신방직(이하 전일방) 부지 공공성 확보를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를 꾸려 공공성 강화를 요구했습니다. 광주시의회 장재성 시의원은 2020년 10월 열린 임시회 때 시정질문 발언에서 “광주 전남방직과 일신방직 건물은 광주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한 장소인데, 민간 부동산 개발업체에 매각되는 것을 시가 지켜보기만 했다”고 꼬집었습니다.

광주시는 임동 방직공장 도시계획과 관련해 “역사·문화자산 보존과 공공성 있는 개발계획 마련”에 정책 방향을 두고 있습니다. 2020년 7월 전문가들과 전담팀을 꾸려 네 차례 회의를 열었습니다. 이용섭 광주시장도 2020년 10월 시의회 시정질문 답변에서 “일신방직 공장 부지는 보존 가치가 크기 때문에 공익적 가치를 담은 개발계획을 마련 중”이라고 답변한 바 있습니다. 시는 2020년 11월 임동 방직공장 터의 역사 문화적 가치 판단을 위해 공장 건축물 조사 용역을 의뢰하는 등 보존에 적극적입니다.

임동 방직공장 터에 공공성이 입혀지면 광주의 긍정적인 문화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 임동 방직공장엔 등록문화재급 근대산업유산인 물 저장 수조와 옛 화력발전소, 보일러실 등이 원형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이 기억을 공유하는 흔적입니다. 정성구 도시문화집단CS 대표는 “산업유산은 지역민 삶의 진정성이 강하게 스민 ‘진짜배기 생활유산’이고, 곧 도시의 강한 정체성으로 연결된다”고 강조합니다.

김구 선생이 1946년 2월 종연방적 전남공장을 방문했다. 광주시 제공

광주시 “공공개발 계획 마련” 방점

방직공장이나 폐조선소 공장 등을 문화·예술과 접목한 국내외 사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광주시가 앞으로 개발업체 등과 용도변경 문제를 협의하면서 ‘공공의 가치를 살린다’는 원칙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공영개발은 아니어도 공공성을 살린 개발이 추진돼 공장 안 넓고 길쭉한 공장동을 원형으로 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광주=정대하 <한겨레>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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