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간·공간 함께 사는 인간과 자연의 역사는 하나다 [김한들의 그림 아로새기기]

김예진 2021. 2. 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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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개를 위한 세상, 모두를 위한 세상
연예인 반려동물 파양의혹 수면위로
개·고양이 기르는 가정 4가구당 한집
더불어 살아가는 친구·가족으로 변해
윤정미 작가, 동물원 연작 등 통해 천착
익숙해진 관념·편견 사회적 단상 발견
소중한 '타자성' 알아야 공생 가능해져
인류세는 인간·자연환경 이분법 부정
반려동물도 귀중한 생명으로 대해야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전시 장면. 박수환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4이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사회

반려동물 파양이 수면에 떠오른 지난 한 주였다. 한 연예인이 반려동물을 상습 파양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자초지종을 밝히며 상황은 정리되었지만, 그와 상관없이 설전은 이어졌다. 같은 대상을 두고 다른 태도를 가진 이들이 대립각을 세웠다. 격렬한 대화를 보며 반려동물이 우리 사회의 커다란 화두임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4가구당 1가구에서 반려동물을 기른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는 2019년 진행한 동물 보호에 대한 국민 의식 조사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가정에서 기르는 개와 고양이는 850만마리를 넘어섰다. 1년 사이 반려견은 1.2배, 반려묘는 2배가 증가했다. 2020년에는 전보다 더 늘었을 것으로 예측한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린 시절 친구네 강아지는 ‘애완동물’로 불렸다.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기르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시간이 흐르며 동물을 하나의 생명으로 받아들여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생겼다. 더불어 살아가는 친구, 가족과 같은 존재라는 뜻이다. 이렇게 함께 사는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그동안 변해왔다. 그리고 그 존재가 점차 커지는 지금, 우리는 이 태도에 관해 전보다 더 자주 생각해야 한다. 윤정미의 ‘반려동물’ 작업을 떠올려보는 이유다.
윤정미, ‘선규네 가족과 코코와 건달이’, 서울, 삼성동, 2014..이화익갤러리 제공
# 윤정미의 ‘동물원’, ‘자연사박물관’, 그리고 ‘핑크 & 블루 프로젝트’

윤정미(1969)는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이후 홍익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과 사진디자인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에서 사진, 비디오 및 연관 매체를 전공했다. 그는 ‘공간-사람-공간 II’, ‘핑크 & 블루 프로젝트’ 등의 개인전을 열고 다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8년 제9회 일우사진상, 2012년 홍콩 소버린 예술재단 아시아 작가상 등을 받았다. 필라델피아 미술관, 보스턴 미술관 등 주요 미술 기관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작가는 일찍부터 인간 삶과 사회 구조, 그사이 관계 등을 작업에서 다뤘다. 초기작인 ‘동물원’(1998~1999) 연작에서는 동물원에서 사육하는 동물들을 포착했다. 사회 시스템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편적 삶의 은유였다. 이어서 ‘자연사박물관’(2001) 연작에서는 자연사박물관에서 전시하는 야성을 잃은 동물들을 촬영했다. 인간의 기준 체계 아래 동물을 관찰의 대상으로 대하는 모습을 내보였다.

대표작인 ‘핑크 & 블루 프로젝트’(2005∼)에서는 아이들의 특정 색에 관한 선호를 담아냈다. 여자아이의 방에는 분홍색 물건, 남자아이의 방에 파란색 물건이 가득한 모습을 기록했다. 사회적으로 젠더 고정관념을 강요받은 결과를 드러낸 것이다. 최근의 작업에서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주체적으로 변화한 아이들의 취향을 담았다. 하지만 여전히 성장 과정에서 익숙해진 관념과 편견은 그들을 지배한다.

이러한 작업은 대부분 작가의 개인적 동기에서 비롯한다. ‘핑크 & 블루 프로젝트’는 딸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목격한 일을 발전시킨 식이다. 그는 자신의 구체적 사례를 통해 보편적인 사회 현상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를 시각화하기 위해 유형학을 주로 사용해 같은 소재의 여러 대상을 유사한 구도로 촬영한다. 이때 대상의 주변도 함께 구도 안에 담아 그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여 각각의 차이점을 드러낸다. 이러한 결과물을 통해 보는 이가 특정한 사회적 단상을 발견하게 만든다.

# ‘반려동물’

‘반려동물’(2008~2015)은 작가가 2015년에 발표한 연작이다. 자녀들의 성화로 몽이라는 강아지를 키우면서 출발한 작업이다. 강아지가 집에 오자 실질적으로 돌보는 것은 작가의 일이 되었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생활은 그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몽이는 기쁨과 슬픔의 순간을 항상 나누어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주변의 지인과 그들의 반려동물을 촬영을 시작했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소개로 작품에 등장하는 대상이 늘어났다. 중산층 가정과 일인 가구 등의 사회적 양상을 작업에서 볼 수 있는 이유다. 그렇게 만난 반려동물은 각기 다른 가정의 모습만큼 종류도 여러 가지였다. 강아지, 고양이 외에 기니피그, 토끼, 거북이, 이구아나도 있었다. 주인을 만나게 된 사연과 이후의 이야기도 다양했다. 주인에게 학대를 받다가 지금의 가족을 만난 푸들도 있고 병에 걸린 아버지에게 큰 의지가 되는 마르티스도 있었다.

‘선규네 가족과 코코와 건달이’(2014)는 자라는 아이들이 있는 가족의 초상이다. 사진 안에는 엄마와 아빠, 두 명의 딸과 세 명의 아들, 그리고 강아지들이 보인다. 코코와 건달은 가족의 구성원으로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석미와 씽싱과 후추와 시로’(2015) 역시 가족의 초상이다. 가운데 석미가 앉았고 그 주변에 고양이 세 마리가 앉아있다. 그들의 사이에서는 조용하면서도 편안한 유대관계가 느껴진다. ‘반려동물’ 안에는 사람과 동물 사이의 관계가 온전히 담겨있다.

미국의 학자 도나 해러워이(Donna Haraway)는 반려를 말하며 ‘고통스러운’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그 정도로 동물과 사람 사이에서도 관계란 어렵기 마련이고 커다란 책임을 동반한다. 집에 들어올 때 반겨주는 모습에서 얻는 기쁨만큼 돌보는 데 마음을 써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만 우리는 ‘소중한 타자성’을 느끼고 깨닫는다. 그제야 우리는 비로소 누군가와 함께 산다고 말할 수 있다.
# 개를 위한 세상, 모두를 위한 세상

몇 달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이라는 전시를 마련했다. 가족 구성원과 공동체의 일부로서 반려동물인 개를 관람객으로 초청하는 전시였다. 실제로 개들은 전시장을 방문해 설치 작품 위를 직접 걸어보는 등의 체험을 했다. 인기 있는 사료로 만들어 개들의 눈길을 끄는 조각도 있었다. 전시는 이를 통해 현대사회에서 반려의 의미, 미술관의 개방성과 공공성의 범위 등을 질문했다.

전시를 준비한 학예연구사는 기획 의도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은 ‘광장’의 연장선에서 ‘인류세-광장’을 상상하는 시도일 것이다. 물론 ‘광장’을 생각하는 것, 또 다른 ‘광장’을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광장’은 늘 거대했고 인간(만)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 광장인 미술관에 인간 외 다른 존재인 개를 초청하는 다소 황당한 기획을 통해 또 다른 실천을 제안해보고자 한다.”

기획 의도에서 보이는 ‘인류세’라는 개념은 2000년에 등장했다.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폴 크뤼천(Paul Crutzen)과 생태학자인 유진 스토머(Ugene F. Stoermer)가 제시했다. 산업혁명 이후 지구 환경이 급격히 변화한 현시기를 다른 세(世)로 구분하자는 의견이다. 인류세는 근대에 인간 사회와 자연 환경을 구분하는 이분법을 부정한다. 대신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인간과 자연의 역사를 하나로 본다. 반려동물을 떠올릴 때 나와 함께 지구를 사는 소중한 생명으로 생각하자. 그 생각을 인간과 비인간의 공생으로 확장한다면 더 의미 깊을 것이다.

김한들 큐레이터·국민대학교 미술관, 박물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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