쌉싸름 달착지근 향긋한 봄맛, 쑥버무리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2021. 2. 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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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기어이 두 번째 '입춘'을 맞이했다.

아직 차갑고 단단한 땅을 뚫고 급하게 올라오는 봄맛이 있다.

쑥개떡은 해쑥뿐 아니라 완연한 봄에 파릇하게 자란 쑥으로 해도 맛있다.

봄날 쑥을 생각하면 바다 마을에서 맛보는 제철 도다리쑥국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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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맛 이야기'㊼]
채 녹지 않은 땅을 뚫고 솟아나는 쑥은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식재료다. [GettyImage]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기어이 두 번째 '입춘'을 맞이했다. 2월 3일 입춘 날 서울 퇴근길엔 큰 눈이 왔다. 봄이 이미 시작됐으니 그 정도는 겨울의 장난스러운 작별 인사인가 싶었다. 남쪽은 이미 곳곳에서 봄기운이 사르르 피어오르고 있겠지. '봄'이라고 말하고 보니, 내가 머무는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의 풍경이 그립고 그립다.

은은한 향 풍기는 쫄깃쫄깃 별미 쑥개떡

잘 씻은 해쑥에 멥쌀가루 넣고 부드럽게 버무려 만드는 쑥버무리. 씹는 맛까지 재밌는 봄철 별미다. [동아DB]
아직 차갑고 단단한 땅을 뚫고 급하게 올라오는 봄맛이 있다. 쑥이다. 털이 보송보송한 해쑥을 도려내 탈탈 털고, 상처 없이 살살 씻어 물을 빼두면 참으로 여러 맛을 볼 수 있다. 요리 솜씨 없는 사람이 봄 향기를 식탁에 퍼뜨리고 싶다면 쑥국만한 게 없다. 된장국을 슴슴하고 멀겋게 끓이고 마지막에 쑥 한두 줌을 넣어 살살 젓는다. 쑥이 연하고 보드라우면 불을 끈 다음 올려도 된다. 쑥국에 말랑하게 반죽한 수제비를 얇게 떠 넣고 익혀 먹어도 맛있다. 맨밥 옆에 쑥국 불룩 떠놓고 김치 한쪽 곁들이면 계절 문턱을 살며시 넘어가는 봄 밥상으로 충분하다. 

잘 씻어 놓은 해쑥에 멥쌀가루 넣고 부드럽게 버무린다. 쌀가루가 쑥에 골고루 묻도록 꼼꼼히 섞는다. 쌀가루가 너무 많으면 맛이 밋밋하고, 쑥이 너무 많으면 식감이 거세다. 쑥마다 쌀가루가 보송보송 묻어 있는 정도가 알맞다. 준비한 반죽을 찜기에 넣고 한 김 푹 쪄서 쌀가루가 쫀득하게 익으면 쑥버무리 완성이다. 찔 때 수분이 많으면 질어지니 찜기 바닥 물이 반죽에 닿지 않도록 조금만 넣는다. 반죽도 면포 등으로 가볍게 덮어 찌면 좋다. 

‘쑥털털이'라고도 부르는 이 간단한 찜떡은 향기에 취해 먹는 봄날 간식이다. 엉성하게 엉긴 쑥버무리를 한 움큼 뜯어 맛보면 구수하면서도 달착지근한 쌀 반죽에 쑥 특유의 개운한 쓴맛과 진한 향이 옴팡지게 배어있다. 씹는 맛도 단조롭지 않아 즐겁다. 쑥버무리 반죽에 은행, 밤, 단호박, 콩 같은 것을 같이 넣고 찌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쑥만 들어갔을 때 맛과 향이 제일인 것 같다. 

밀가루의 쫄깃쫄깃한 맛과 쑥의 은은한 향이 잘 어울리는 쑥개떡. [GettyImage]
지금은 쌀가루가 흔하지만 우리 어머니 세대만 해도 쑥떡에는 밀가루를 넣는 게 흔했다. 이름은 쑥개떡이라 했다. 쑥개떡은 해쑥뿐 아니라 완연한 봄에 파릇하게 자란 쑥으로 해도 맛있다. 쑥을 삶아 물기를 있는 대로 꽉 짠 다음 잘게 썰어 밀가루와 물을 넣고 반죽해 둥글납작하게 빚어 쪄낸다. 반죽에 소금으로 간을 조금 맞추고, 설탕도 약간 넣으면 당연히 더 맛있다. 요즘에는 쑥을 블렌더에 곱게 갈아 건더기 없이 곱게 반죽해 개떡을 만들기도 한다. 한 번 만들 때 여러 장 쪄낸 다음 식으면 냉동실에 두고 몇 장씩 꺼내 프라이팬에 구워 먹으면 별미다. 먹을 때 설탕을 솔솔 뿌려보고, 조청에도 콕 찍어 맛보자. 은은한 향과 쫄깃쫄깃하게 씹는 재미가 정말 좋다.

도다리쑥국 생각하니 봄날 통영이 그리워

향긋한 쑥 향기로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도다리쑥국 한 상. [하이원리조트 제공]
쑥은 화전처럼 얄팍하게 전을 지져 먹어도 맛있다. 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겨 먹어도 맛있다. 쑥개떡 만들 듯 간 쑥을 칼국수나 수제비 반죽에 섞으면 색도 곱고, 은은한 향도 낼 수 있다. 

봄날 쑥을 생각하면 바다 마을에서 맛보는 제철 도다리쑥국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집에서 도다리 대신 광어나 문치가자미(도다리처럼 눈이 오른쪽에 쏠려 있어 도다리랑 비슷해 보이는 생선) 등과 쑥을 같이 끓여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자 식탁에 놓인 도다리쑥국 맛에 견줄 수 있을까. 바닷길을 걷고, 낯선 식당에 들어가 설레는 마음으로 받는 밥상은 '여기'가 아니고 '거기'이기에 특별했다. 곱게 펼쳐진 봄날의 통영 바다를 떠올리며 수년 전 먹은 도다리쑥국을 잠깐 만나본다. 기억이라도 있어 감사하다. 오늘 저녁 밥상의 쑥국, 주말에 쪄먹을 쑥버무리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겠지. 이런저런 기대를 하며 아직 설익은 봄의 맛에 빠져 본다.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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