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추왓추] 드라마 '설국열차'의 별미 v 나폴리 친구의 눈부신 우정

라제기 2021. 2. 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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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차고 넘치는 OTT 콘텐츠 무엇을 봐야 할까요. 무얼 볼까 고르다가 시간만 허비한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긴 시대입니다.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가 당신이 주말에 함께 보낼 수 있는 OTT 콘텐츠를 넷플릭스와 왓챠로 나눠 1편씩 매주 토요일 오전 소개합니다.
'서스펜스 제조기' 설국열차는 계속 달린다(넷플릭스 '설국열차' 시리즈)

원작 뛰어넘기. 리메이크 작품의 저주 같은 숙명이다. 미국 드라마 ‘설국열차’도 다르지 않다. 밑그림으로 삼은 봉준호 감독의 동명 영화와 곧잘 비교된다. 안타깝게도 원작만 못하다는 평가들이 나온다.

드라마 ‘설국열차’는 망작일까. 그렇지 않다. 드라마는 화법부터 영화와 다르다. 훨씬 더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그들의 사연이 중첩된다. 시즌당 10편이니 이야기 전개는 영화보다 느리다. “원작 영화에서는 이랬는데”라는 생각을 접고 보면 드라마 ‘설국열차’는 꽤 재미있다. 새로운 볼거리가 있고, 새로운 이야기가 있다.

드라마 '설국열차'는 원작 영화와는 다른 별미를 제공한다. 넷플릭스 제공

①연쇄살인범 싣고 달리는 설국열차

이야기 얼개는 원작 영화와 엇비슷하다. 환경 악화로 지구는 급속히 얼어붙는다. 인류는 거의 절멸했다. 설국열차에 올라탄 사람들만 생존했다. 1,001칸짜리 열차는 순환 철로를 하염없이 달린다. 멈추면 곧 종말이다. 열차의 운동에너지가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원작 영화의 커티스(크리스 에번스)처럼 꼬리칸에서 혁명을 꿈꾸는 지도자 레이턴(다비드 디그스)이 있다. 레이턴은 본래 형사였는데, 꼬리칸에서 비참한 현실을 겪으면서 최하층민의 지도자로 거듭났다. 레이턴은 꼬리칸 사람들과 무력 혁명을 몰래 준비 중인데, 갑자기 설국열차 상층부의 호출을 받는다. 열차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을 해결해 달라는 요청이 잇는다.

열차 내 살인사건은 시드니 루멧 감독의 고전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1974)을 떠올리게 한다. 열차라는 한정된 공간, 오리무중인 범인, 누구나 용의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은 스릴과 서스펜스를 만든다. 레이턴은 수사를 하게 되면서 설국열차 상층부에서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다. 드라마는 연쇄살인 사건과 상층부의 비밀을 맞물리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드라마 '설국열차'는 여성주의가 반영된 여성 주인공을 내세우기도 한다. 넷플릭스 제공

②미국사회를 열차에 담다

드라마는 연쇄살인 사건을 빗대 설국열차 안에 새로 형성된 사회의 부조리를 들춰낸다. 최상층 사람들은 열차라는 운명공동체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다. 자신들의 기득권과 특권 유지, 안락한 삶만 생각한다. 열차는 칸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 중간층이 있는 한편 중하 계층이 존재한다.

열차는 세상의 축소판이다. 특히 다양한 인종들이 부대끼는 미국사회를 반영한다. 레이턴은 흑인이다. 흑인이 혁명을 주도한다는 설정부터가 의미심장하다. 승무원과 보안요원 등 열차의 중간 계층은 이민자들이 많다. 성소수자들의 사랑이 묘사되기도 한다. 인종 문제에 계층 갈등, 소수자 이슈, 여성주의가 포개지면서 담고 있는 이야기가 영화보다 풍성해진다. 영화에선 볼 수 없었던 다채로운 사랑 이야기까지 전개된다. 아무리 작은 사회라고 하나 살인을 즐기는 사이코 패스가 있기도 하다.

꼬리칸 하층민의 혁명이 성공하면 새로운 사회는 바로 건설되는 걸까. 드라마 '설국열차'는 원작 영화와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넷플릭스 제공

③혁명 이후에도 세상은 지속된다

원작 영화는 기후문제, 아동 노동의 야만성을 지적함과 더불어 기존 시스템의 파괴를 주장한다. 남궁민수(송강호)가 열차를 폭파하고, 요나(고아성)가 밖으로 나가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기존 시스템에 대한 전복 없인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없다는 감독의 급진적 사고가 담겨있다.

드라마는 다르다. 레이턴은 열차를 파괴하고 밖으로 나가는 위험천만한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물론 설국열차 파괴는 시즌 종료를 의미할 수도 있으니까). 그는 설국열차 안에서 다종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며 새로운 사회 건설을 도모하나 기존 지배세력의 반동이 기다린다. 설국열차 지도부의 비밀과 또 다른 주요 인물의 등장은 영화와 판이하게 다르다. 시즌2부터는 원작 영화와 궤도를 아예 달리 한다.

※권장지수: ★★★(★ 5개 만점, ☆은 반개)

밖은 설국이고, 열차 내에서 가진 자가 없는 자를 착취한다는 기본설정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열차 칸 사이를 움직이는 교통수단을 볼 수 있다. 영화와 다른 점이다. 5일 기준 시즌2의 2편까지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매주 화요일 1편씩 추가 공개된다. 최근 시즌3 제작이 확정됐다. 적어도 미국 시청자들은 드라마 ‘설국열차’를 재미있어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질투하고 미워하고 사랑한 나의 친구(왓챠 '나의 눈부신 친구')

오랜 친구가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인연을 맺었다. 사는 동네도 같았다. 가정 환경이 엇비슷했다. 자라면서 삶은 분화한다. 두 친구는 질투하고 사랑하고 시기한다. 이탈리아 드라마 ‘나의 눈부신 친구’는 레누와 릴라의 각별한 우정을 그린다. 눈부신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는 가슴 아린 성장기다. 동시에 전후 20세기 이탈리아(특히 남부 나폴리)의 풍속화이기도 하다.

레누(왼쪽)와 릴라는 어려서부터 친구다. 같이 뛰고 같이 웃고 같이 자라지만 성장하며 삶은 갈린다. 왓챠 제공

①소녀들의 눈물겨운 우정

레누는 초등학교에 들어가 놀라운 급우 릴라를 발견한다. 릴라가 글을 읽을 수 있다고 우쭐할 때 릴라는 글을 쓴다. 그림을 잘 그리고 어려운 산수 문제를 척척 풀어내기도 한다. 릴라는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레누보다 늘 앞선다. 용기도 있다. 권위에 도전하고 폭력에 맞선다. 레누는 그런 릴라를 질투한다. 질투는 호기심으로 변한다. 둘은 친구가 된다. 레누에게 릴라는 ‘나의 눈부신 친구’다.

둘 다 가난한 집안의 딸이다. 레누가 그나마 형편이 낫다. 어머니는 여자를 상급학교에 진학시킬 수 없다고 하나 시청 수위인 아버지는 다르다. 릴라의 경우 가업이 구두수선인 부모나 오빠나 여자가 공부를 많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영재 릴라는 정규 과정에서 일찌감치 벗어나고, 수재 레누는 어렵게 착실히 학업의 길을 걸어간다. 두 삶은 갈린다. 릴라는 레누의 지적 성장을 시기한다. 이제 릴라에게 레누가 ‘나의 눈부신 친구’다.

영재 릴라(왼쪽)는 가정환경 탓에 학업을 포기하고, 수재 레누는 상급학교에 진학해 학업을 이어간다. 두 사람의 삶이 엇갈린 요인이다. 왓챠 제공

②가부장제 견뎌내게 한 애증의 친구

소녀들은 폭력적인 가부장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한다. 가난한 남부 나폴리는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곳이다. 가부장제의 인습이 강하게 남아있기도 하다. 소녀들이 사는 동네는 주먹으로 부를 이룬 솔라라 집안이 지배한다. 레누와 릴라는 연대하며 가부장제의 부조리를 견뎌낸다.

레누와 릴라는 성장하며 다른 길을 간다. 레누는 공부에서 인생의 길을 발견하고, 릴라는 제화로 부를 이루려 한다. 릴라는 돈과 폭력을 희롱하려는 듯 솔라라 집안의 아들과 결혼하기도 한다. 레누는 지적인 남자 니노를 짝사랑하나 커다란 장애물이 앞에 놓인다. 릴라가 미성숙한 레누를 비웃듯 우정을 배신하기도 한다.

다방면에 재능이 있는 릴라에게도, 성실하고 지력이 남다른 릴라에게도 삶은 걸어가기 힘든 길이다. 둘은 때론 미워하고 때론 동병상련한다. 둘 사이 감정의 골이 깊게 패여 멀리하기도 하지만 끝내 연대한다. 이익을 기반으로 한 연대는 아니다. 오랜 친구이고 엇비슷한 곤경에 처한 여자이기 때문이다.

두 친구는 가부장제사회에 맞서 서로 감싸고 때론 갈등하고 종국엔 연대한다. 두 사람의 성장기가 눈부시면서도 아리다. 왓챠 제공

③당신이 모를 이탈리아 남부의 삶

드라마의 또 다른 주인공은 남부 이탈리아다. 따사로운 햇살이 있고, 아름다운 지중해가 가까운 곳이지만 삶은 비루하다. 북부에 비해 경제는 낙후됐고, 가난은 마피아의 번성을 불렀다. 산업화된 북부 도시 밀라노라 토리노, 수도 로마에 비해 나폴리는 억압적이다. 나폴리의 삶은 특히 여자에게 가혹하다. 요컨대 이탈리아 남부는 레누와 릴라의 굴곡진 삶을 도드라지게 만드는 배경이다.

전후 이탈리아 경제 발전에 맞춰 바뀌는 풍경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머리 나는 흙 길이 신작로가 되고, 자전거가 다니는 길에 자동차가 붐비는 광경으로의 변모는 시대극의 묘미다.

※권장지수: ★★★☆(★ 5개 만점, ☆는 반개)

이탈리아 은둔 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베스트셀러 ‘나폴리 4부작’을 토대로 만들었다. 미국 드라마 명가 HBO가 비영어권에서 첫 제작한 드라마다. 왓챠에서 시즌2까지 볼 수 있다. 이 드라마만 보기 위해서라도 왓챠에 가입할 만하다. 레누와 릴라가 살며 펼쳐내는 인생의 파노라마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의 것과 맞닿아 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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