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 박철완'은 왜 삼촌 박찬구에 칼을 빼들었나 [재계 인사이드]
朴, 주주제안 통해 이사 선임·배당 확대 요구
지분 10% 최대주주..박찬구 회장보다 많아
경영권 확보? 독립? 朴 행보 배경 추측 난무
'특수관계 해소' 선언 후 별다른 입장 안 내놔
3월 주총서 표 대결 전망..장기화 가능성도
금호석유(011780)화학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지난달 말 금호석화 박찬구 회장의 조카 박철완 상무는 주주제안을 통해 이사 교체와 배당 확대를 요구했다. 박 상무는 금호석화 지분을 10% 보유한 개인 최대주주다. 삼촌보다 많다. 박 상무는 자신을 이사회 멤버인 사내이사로 ‘셀프’ 추천했고, 직간접적 친분이 있는 또래 인물 4명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박 회장을 상대로 선전포고 한 셈이다.
금호석화는 박 상무의 주주제안을 받아들여 오는 3월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할지 검토하고 있다. 늦어도 주총 2주 전에는 주총 소집 공고를 내야 하고, 이때 안건도 함께 알려야 한다. 법적 하자가 없는 이상 금호석화가 박 상무의 주주제안을 거부할 명분은 사실 없다. 박 상무의 주주제안은 어찌 됐든 주총에 상정될 가능성이 크다. 어느 한쪽이 이기고 지는 표 대결이 불가피하다.
‘조카의 난’은 왜 벌어졌고, 조카인 박 상무가 노리는 바가 무엇인지, 앞으로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예상해봤다.
금호 안팎 사정을 종합하면, ‘조카의 난’은 박 회장과 박 상무 간에 누적된 갈등(혹은 한 쪽의 일방적 서운함)의 결과로 보는 것이 설득력 있다. 2009년 박철완 상무는 삼촌(박삼구·박찬구)들의 처절한 그룹 경영권 분쟁을 목도했다. 당시 박 상무는 아시아나항공에서 경영 수업을 받고 있었고, 그는 박삼구 전 회장 편에 섰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박 전 회장 편에 섰던 박 상무와 박 전 회장과 다퉜던 박 회장은 숙명적으로 관계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듬해 초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난이 터졌다. 채권단과 대주주 합의에 따라 박삼구 전 회장은 금호산업·금호타이어 등을 맡고, 금호석화는 박찬구 회장이 경영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 과정에서 박 상무는 아시아나 경영권을 요구했지만 채권단에 거부당했고, 박 전 회장과는 채무 상환 문제 등을 놓고 관계가 틀어졌다. 오갈 데가 없어진 박 상무를 받아준 사람은 삼촌인 박 회장이었다. 2010년 3월 일이다. 재계 관계자는 “박 회장이 형님인 박정구 회장(박 상무 부친)을 존경했고, 그런 인간적 정 때문에 자신과 싸웠던 박 상무를 받아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 회장과 박 상무가 한지붕 아래서 지내게 됐지만 숙질(叔姪) 관계는 순탄치 않았다. 이들이 공동 경영에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은 2010년 7월, 박 상무가 채권은행에 “박 회장이 독단적으로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고 항의 서한을 보내면서 갈등이 노출됐다. 공동 경영 불과 4개월 만이다.
2019년에도 기류가 묘했다. 박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을 결정하는 주총에서 박 상무는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다. ‘기권’했다. 사실상 반대였다. 개인 최대주주(10%)인 박 상무의 기권으로 박 회장은 우호 지분을 끌어모으느라 애를 먹었다. 한 해 전 배임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던 터라 2대 주주인 국민연금도 박 회장 연임에 반대했다. 우여곡절 끝에 박 회장은 연임에 성공했지만, 이 사건은 박 회장 측이 박 상무의 인식을 새삼 파악하는 계기가 됐다.
심상치 않은 관계는 2020년 임원 승진에서도 확인됐다. 박 회장의 아들이자 동갑내기 사촌인 박준경 상무가 전무로 승진했다. 박 상무는 승진에서 배제됐다. 2010년 나란히 부장에서 상무보로 승진했는데, 이 균형이 깨진 것이다. 재계 또 다른 관계자는 “박 회장 딴에는 조카인 박 상무를 챙겨준다고 챙겨줬겠지만, 박 상무 입장에서는 자신을 방치했다고 느꼈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이처럼 불편한 관계에 있는 박 회장과 박 상무는 이번 사태를 놓고 대화를 시도해봤을까. 결론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다.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하기 전 시장에 소문이 돌았고, 박 회장이 박 상무에게 사람을 보내 진위를 파악해보려 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주목할 점은 ‘사람을 보내’ 진위를 파악했다는 점이다. 껄끄러운 관계임은 물론, 삼촌 조카 간 직접 소통이 없었다는 점을 암시한다. 박 회장과 박 상무는 한 건물에 근무한다.
박 상무는 지난달 27일 ‘박찬구 회장과 특수관계인 관계를 해소한다’고 전격 선언한 이후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주주제안 내용도 언론 보도를 통해 일부가 알려졌을 뿐이다. 자신이 칼을 빼 든 그럴듯한 변(辯)이라도 내놓을 법한데, 조용하다. 박 상무를 돕고 있는 법무법인 KL파트너스 측도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KL파트너스는 금호석화와 한 건물에 입주해 있다. 운명의 장난?) 재계의 한 관계자는 “특수관계 해소 공시 이후 지금껏 이렇다 할 박 상무 측의 입장 표명이 없는 것은 의아하다”고 말했다. 박 상무의 메시지는 향후 ‘조카의 난’ 향배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박 상무를 돕고 있는 KL파트너스는 과거 박삼구 전 회장 측 자문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법무법인 세종 출신 변호사들이 세웠다.
그렇다면 박 상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추론 가능한 박 상무의 의도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이 된다.
첫째는 개인 최대주주로서 박 회장과의 공동 경영 내지 경영권 장악이다. 박 상무는 자기 자신을 사내이사, 우호적 인물들은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회계 장부 등 민감한 내부 경영 자료를 들여다볼 수 있는 감사위원(사외이사) 교체도 요구했다. 마침 오는 3월부로 감사위원 4명 중 2명의 임기가 만료된다. 다만, 주요 기관투자가 등이 박 상무의 ‘대권 도전’에 우호적일지는 미지수다.
한편으로는 박 상무가 경영권 자체보다는 ‘부대 효과’를 노렸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삼촌, 그리고 동갑내기 사촌과의 ‘어색한 동거’에 마침표를 찍을 명분 마련이 목표 아니냐는 시각이다. 이는 박 상무가 경영권 분쟁을 일으켜 주가를 띄우고 엑시트(exit) 해버릴 수 있다고 보는 시각과 맥이 닿는다. 금호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박 상무는 석유화학이라는 업종 자체에 큰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 상무가 과거 아시아나항공 경영에 관심을 보였다는 얘기는 재계에 잘 알려져 있어 신빙성이 더해지는 코멘트다.
그렇다면, 박 상무가 만약 금호석화 지분을 털고 나간다면 그가 보유한 지분 10%는 어떻게 되나. 박 상무가 박 회장이 아닌 제3자에 매각한다면 금호석화의 경영권 불안은 그가 떠나더라도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박 상무의 우호세력은 지분 4~5%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박 상무 제외)의 금호석화 지분율은 14% 수준에 그친다. 그렇다고 박 회장이 박 상무의 지분을, 그것도 한껏 주가가 뛴 지분을 받아줄 지도 의문이다.
박 상무의 의도가 무엇이든, 일단 오는 3월 주총은 박 상무 측과 박 회장 세력 간 표 대결이 벌어질 전망이다. 금호석화 입장에서는 주주, 그것도 지분 10%를 보유한 개인 최대주주의 주주제안을 뭉개고 넘어가기 어렵다.
물론 금호석화 이사회가 주주제안을 거부할 수는 있다. 상법 363조와 시행령 12조는 주주제안 거부 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회사가 실현할 수 없는 사항 또는 제안 이유가 명백히 거짓이거나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 등이다. 만약 금호석화가 주주제안 상정을 거부할 경우, 박 상무 측은 법원에 안건 상정 가처분 신청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
표 대결이 펼쳐지면, 결과를 예단하긴 어렵지만 박 상무 측이 다소 불리할 수 있다. 단순 계산으로는 박 상무(10%)와 우호 세력(4~5%)의 지분율이 박 회장 등 특수관계인(14%)의 지분율과 엇비슷하다. 하지만 금호석화 자사주가 18%나 있어 최악의 경우 이를 ‘백기사’에 매각해 우호 지분으로 삼을 수 있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제3자에게 매각되면 의결권이 살아난다. 경영권 분쟁 때 종종 활용된다.
/한재영 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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