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의 '키'보다 중요한 '마음의 키'
"100명 중 7번째 정도 됩니다."
올해로 5살이 된 둘째 아이의 영유아 검진 차 아이와 함께 동네 소아과에 다녀왔다. 사실 생일 이전에 반드시 영유아 검진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미루고 미루다가 아이의 생일 바로 전 날 아이의 손을 잡고 동네 소아과를 향했다.
영유아 검진을 마지막까지 미뤘던 이유는 바로 '키'이다. 안 그래도 평소 또래에 비해 아이의 키가 작은 것 같아 신경이 많이 쓰였는데, 영유아 검진을 통해 작은 키가 '사실'이 되어 버릴까봐 현실자각의 시간을 최대한 늦춘 것이다. 마치 치통이 너무 심한데도 치과에 가서 검진을 받으면 당장 치료를 받으라고 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치과검진을 차일피일 미루는 심정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무거운 마음으로 둘째 아이의 영유아 검진이 시작됐다. 의사선생님은 아이와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또 아이의 손과 발 그리고 눈, 코, 입 등을 꼼꼼히 봐주셨다. 별다른 문제없이 잘 발달하고 있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가 의사선생님은 상담 말미에 '키'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내셨다. 키가 또래에 비해 많이 작단다. 백분율로 하면 93%정도 되는데 다시 말해 100명의 또래 아이들을 키 순서대로 한 줄로 세웠을 때 7번째 정도 된단다.
결국 내 '걱정'은 '사실'이 돼 버렸다. 결국 아이의 작은 키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가 도래한 것이다.
그때부터 나의 모든 촉각은 아이의 '키'를 향했다. 무엇이 문제일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봤다. 밥을 너무 적게 먹어서일까? 평소에 운동을 잘 안해서일까? 한약이라도 먹여야 하나? 아니면 키 크는 주사가 있다는데 그거라도 맞아야 하나?
한참 동안의 생각 끝에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아니 사실 이 질문의 정답은 이미 정해져있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아이의 키가 작은 이유는 너무나도 명백했다. 바로 나와 아내의 키가 작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가 밥을 너무 적게 먹고, 운동을 잘 안해서 키가 작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 보다 더 큰 이유는 바로 '유전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이에게 큰 '키'를 선물하고 싶은 것이 모든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면서까지 그 선물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큰 '키'를 고집하는 부모의 욕심을 고쳐먹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영유아 검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다짐했다. 다시는 아이의 '키'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겠다고, 그리고 아이에게도 스트레스를 주지 않겠다고 말이다.
사실 '키'보다 중요한 것들은 너무나도 많다. 특히, 아이의 발달에 있어서 '마음의 키'는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그 중에서 '행복감'과 '자존감'은 아이의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행복감'은 개인이 현재의 상황을 얼마나 행복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지에 대한 느낌이나 감각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제2차 아동정책 기본계획'에 따르면 우리나라 아동들은 물질적으로는 풍족해졌으나 행복감은 낮은 편이라고 한다. 특히, 미래준비를 위한 과도한 학업 경쟁이 심화되면서 수면, 운동, 여가 활동 시간이 낮아지고 또래관계의 결핍과 스트레스가 증가하면서 현재의 행복감이 저해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2018년도 아동 삶의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OECD 평균은 7.6점이나 우리나라의 경우 6.6점에 그쳐 최하위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아동이 미래준비를 위해 현재의 행복이 무시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어른들은 우리의 아이들이 미래를 준비하되 현재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줘야 할 것이다.
아이의 발달에 있어서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자존감'이다. 자존감이란 자신에 대한 존엄성이 타인들의 외적인 인정이나 칭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 내부의 성숙된 사고와 가치에 의해 얻어지는 개인의 의식을 말한다. 자존감이 높으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믿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성취를 이뤄낼 수 있는 반면 자존감이 낮으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져 조그마한 어려움에도 쉽게 좌절하고 극복한 힘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존감'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을 믿고 이를 해쳐나갈 수 있는 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예상하지 못한 난관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럴 때에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자존감'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들은 아이들의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아이의 '키'에 집중하느라 '행복감'과 '자존감'을 포함한 아이의 '마음의 키'를 간과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며 '마음의 키'가 큰 아이로 자랄 수 있게 되기를 바래본다.
*칼럼니스트 고완석은 여덟 살 딸, 네 살 아들을 둔 지극히 평범한 아빠이다. 국제구호개발 NGO인 굿네이버스에서 14년째 근무하고 있으며, 현재는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옹호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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