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사람] 신애라 "정인이 사건에 분노..욕까지 나왔다"

윤춘호(논설위원) 기자 2021. 2. 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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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애라 씨 고등학교 졸업식 때 가족사진


1. 불행해질 이유가 충분했지만 불행하지 않았다. 부모가 모두 서울대를 나온 1남 1녀 집안의 막내였다. 아버지의 잦은 사업 실패로 집안이 넉넉하지 않았고 경제적 어려움은 부모의 불화와 별거로 이어졌다. 방송 작가로 일하며 생계를 책임진 어머니는 오누이가 잠이 들고 나서야 집에 들어오는 일이 잦았다. 그래도 12평 전세 아파트에서 보낸 시절을 이 사람은 행복하게 기억했다. 책 좋아하던 꿈 많은 소녀에게 가난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 인터뷰 동영상 보러가기
[ https://youtu.be/ah3SKsNgtmo ]

"가난이라는 걸 못 느꼈어요. 그때 오빠랑 엄마랑 셋이 살았는데 집이 조그맣고 그마저도 우리 집이 아니고 전세든지 뭐 그랬겠죠. 그런데 너무 행복했어요. 아빠는 안 계셨지만 엄마가 그렇게 만들어주셨던 거 같아요. 그 아파트가 맨 끝이고 맨 꼭대기다 보니 베란다에 제비가 집을 지었어요. 엄마가 해주셨던 말이 생각나요. '제비는 항상 행복한 가정에 집을 짓는대' 정말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행복했으니까요."

어렸을 때 살던 집 앞에서


학생 때부터 소문난 외모에 부모가 모두 방송국에서 일한 경력이 있어 중앙대 연영과 입학에 이은 연예계 진출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MBC 특채 탤런트로 시작된 연예계 생활은 순조로웠다. 드라마에서 만난 남편 차인표와의 연애와 결혼은 신데렐라의 이미지를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유명하긴 했지만 독보적인 위상을 가진 연기자는 아니었다. 연기력이 발군이었던 것도 아니다. 선남선녀가 넘쳐나는 연예계에서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큰 아이를 낳고 6년 후인 2005년 생후 1개월 된 장녀 예은이를 입양했다. 2년 뒤에 차녀 예진이를 또 입양했다. 두 아이 모두 공개 입양했다. 소녀 시절이 외로웠던 모양이다. 오빠와 친했다지만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을 테니 말이다.

"결혼하기 전부터 형제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자매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어요. 그래서 결혼을 하면 아이들도 많이 낳고 입양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남편도 제 생각과 같았습니다."

유명 연예인 부부의 잇따른 공개 입양은 뉴스거리였다. 부모가 유명해서 아이들도 곧 유명해졌다. 이 사람의 행동은 입양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았다. 오랫동안 입양은 결핍이 있는 사람들의 결합이었다. 아이가 없는 부모와 부모가 없는 아이의 만남이 입양이었다. 입양은 자신의 결핍을 드러내는 일, 자신이 온전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기에 할 수만 있다면 그 사실을 숨겨왔다. 그래서 입양은 음지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자랑이라고 생각하거나 축하받을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 사람이 음지에서 이루어지던 일을 양지로 끌어냈다. 입양이 숨기거나 쉬쉬할 일이 아니라는 것, 출산 사실을 숨기지 않는 것처럼 입양 역시 감출 일이 아니라는 것, 가족을 이루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라는 것, 칭찬받을 일이 아니라 축하받을 일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이 사람이 두 딸을 입양으로 얻은 이후 공개 입양 건수는 괄목할 정도로 늘었다.


"입양이라는 게 나쁜 제도가 아니거든요. 너무 좋은 제도거든요. 상 받았는데 쉬쉬하는 사람 없잖아요. 만약 입양 사실을 숨긴다면 아이들 입장에서는 알 권리를 박탈당하는 셈이죠. 사람들의 마인드 자체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입양이라는 게 참 좋은 거라는 생각을 모두가 했으면 좋겠어요."

2. 늘 마음 한 구석이 공허했다고 했다. 절대자를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나서도 그 공허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때 한 권의 책을 만났다. <목적이 이끄는 삶>은 암 투병 중이던 어머니가 딸과 함께 읽기를 원했던 책이다. 딸은 바쁘다는 이유로 어머니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고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떠난 뒤에야 그 책을 읽었다. 어머니는 하늘나라로 가서도 딸에게 일러주고 싶은 말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책을 읽고 나서야 흐릿하던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내가 연기자로서 재능이 그리 대단한 거 같지 않는데 왜 이름은 널리 알려졌을까. 이런 의문을 갖고 있었는데 그 책을 읽고 해답을 얻은 거죠. 내 재능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거구나. 내가 갖고 있는 이 재능을 통해서 정인이 같은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내가 영향력이 필요했구나. 이게 절대자의 뜻이구나. 그것을 알게 된 거죠."

그때부터 세계 각국의 어린이들을 돕는 아동구호단체인 '컴패션'을 비롯한 각종 단체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전 세계 25개국에 결연을 맺은 아이가 50명이 넘는다. 선행과 자선은 그전에도 해오던 일이었지만 이제는 '태초부터 절대자가 예정해놓은' 행동이 된 것이다.

2019년 봄, 입양 관련 단체의 홍보대사 등으로 일하고 입양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수상 소감을 이렇게 맺었다. '마지막으로 정말 고마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연히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남편이려니 싶었는데,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오늘 특별한 분께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우리 예은이, 예진이를 끝까지 지켜서 그 귀한 생명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해주신, 우리 딸들을 낳아준 엄마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어서 너무나 고맙습니다." <2019.5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 소감 중>

제대로 키울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이를 낳아준, 낳기보다 포기하는 게 쉬운 선택이었을 테지만 끝까지 아이들을 뱃속에서 지켜내 세상으로 보내준 사람들이 입양 아들의 어머니라는 것이다. 귀한 생명을 버린 무책임한 사람, 핏줄을 버린 비윤리적인 사람이라는, 그동안의 입양아 생모에 대한 인식을 이 사람이 확 뒤집었다. 놀라운 통찰력이자 전복적인 사고였다. 이 사람 말이 끝나자 신음 같은 탄식과 함께 박수가 터졌다.

그 날의 수상 소감은 이 사람의 시선이 자신의 아이와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바깥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여기에서 한 발짝만 더 나가면 출산과 육아에 대한 남녀의 불평등 문제, 미혼모의 인권 문제로 넘어갈 텐데 이번 만남에서 이 사람은 그 영역에 대해서 언급하지는 않았다.

3. 입양 가정에서 학대를 당해 죽은 정인이 뉴스를 보면서 이 사람이 생각났다. 정인이가 아니었다면 이 사람을 만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욕이라면 평생 입에 담을 일이 없었을 거 같은 사람인데 정인이 사건을 보고 절로 욕이 터져 나왔다.


-정인이 사건 터졌을 때 정말 욕이 나오던가요?

"쌍욕이 나오죠. 저는 욕을 진짜 안 하는 편인데, 아이들이 학대받는 걸 보면 진짜 속에서 분노가 치솟고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욕이 막 나오죠. 진짜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이 사람이 욕을 퍼붓는 사람은 가해 부모에 그치지 않는다. 그런데 비난의 대상이 의외다.

"처음에 화가 났던 것은 당연히 가해자 때문이죠. 그 다음에는 나한테도 화가 나요. 정인이가 만약 내 주변에 있었다면 나는 관심을 가지고 봤을까. 지금 내 주변에 정인이가 더 있을 수 있는데 나는 너무 내 새끼들에게만 관심이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거 때문에 또 화가 나는 거예요. 그냥 미안하다는 말만으로 이게 될 일인가"

생각지도 못한 이 말을 듣고 이 사람이 다시 보였다. 묻는 사람의 시선을 붙잡은 채로 이 사람이 말을 이어갔다.

"정인이의 안타까운 죽음이 가치 있는 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걸 가치 있게 바꾸려면 누구를 죽이는데 집중할 게 아니라 누굴 어떻게 살릴 것이냐에 집중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욕하고 비난하고 처벌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게 이 사람 생각이다. 사전 교육을 통해 위탁가정에 면허증을 주는 방안, 입양을 어렵게 만드는 현행 법의 보완 등 꽤 구체적인 대안을 이야기했다. 문제 해결의 원칙을 말할 때 이 사람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어조도 단호해졌다.

"이 문제는 누구에게 유익이 되게 할 거냐를 가장 먼저 생각해야 될 거 같아요. 입양 가정도 아니고 미혼 부모도 아니고 지금 바로 가정에서 자랄 수 없는 아이한테 유익을 찾아줘야 될 거 같아요."

당신이 사회운동가 같다고 했더니 다소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말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사회운동가라면 머리에 붉은 띠 두르고 구호 외치는 모습을 연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기야 자선단체가 아니면 한 번도 사회단체에 가입한 적도 없고, 정치 같은 것은 아예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는 사람이니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기에는 제가 너무 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사회운동가라는 말의 의미도 잘 모르겠고. 저는 그저 제가 관심 있어 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거 같아요."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는 사람, 요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실천하는 사람, 공동체가 마땅한 응답을 하지 않을 때 분노를 숨기지 않는 사람을 사회운동가라고 한다면 그 말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다.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자신이 뱉어 낸 말의 무게 때문에 허덕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말의 무게보다 행동의 무게가 더 무겁다. 행동으로 자신의 말을 증명하면서 살아온 사람이다.

앞으로 신앙 간증은 하지 않는 대신 나눔에 대한 이야기, 입양과 위탁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은 어디든 찾아가겠다고 했다. 사회운동가로서 한 발 더 나가겠다는 말로 들렸다. 물론 본인은 그런 생각은 전혀 없다고 할 테지만 말이다.

쉰이 다 되는 나이에 미국 유학을 갔다. 유학은 이 사람의 오랜 로망이었다. 영어 콤플렉스도 극복하고 아이들에게 새롭게 공부할 기회를 주겠다는 생각이었다. 아이 셋 돌보면서 대학에 적을 두고 석사과정, 박사과정을 마쳤다.

"1-2년 짧게 공부하다 와야지 하는 생각이었는데 5년 반이나 있게 됐어요. 공부를 하다보니 재밌더라고요. 잘 몰랐던 분야인 심리학이나 상담학이라든지 이런 것 공부하면서 참 재밌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학문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박사 과정을 마치긴 했지만 논문을 쓰지는 않았다. 우선 순위에서 밀려난 상태라는데 사실상 포기한 듯했다.

"입양과 위탁에 관한 논문을 써볼까 구체적으로 구상하기도 했고 논문 제안서(proposal)까지 썼는데 제 능력은 여기까지 같더라고요. 제가 학위를 받으려고 유학을 간 것도 아니고 이미 공부한 걸로 내 인생에 너무 도움이 됐기 때문에… 몇 년을 더 투자해서 박사 학위를 받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이거 말고도 제가 원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겉으로 보면 성과가 별로 없다. 연예인에게 5년 반의 공백이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닌데 숙제였던 영어 공부에 큰 진전도 없었고 박사 학위도 얻지 못했다. 그렇다고 허공에 날려버린 시간은 아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 아이들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재능을 살리기 위한 준비를 한 시간이었다. 이 말을 들으면 앞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더 분명해진다.


"저 사람 음식에 있어서 박사야, 이런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그것처럼 저는 아이들을 살리는 일에 대해서는 꼭 타이틀이 없어도 전문가이고 싶어요."

2019년 귀국할 즈음부터 그렇게 멀리하던 SNS를 시작한 것도 다 뜻한 바가 있는 일이다. 아이들의 인권 문제와 나눔에 대한 이야기를 대중들과 본격적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4. 교회와 강남 그리고 연예계. 오늘의 이 사람을 생각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세 단어다. 강남에서 태어나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강남에서 나왔다. 강남의 대표적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연예인이 되어서는 당연히 강남에 생활의 근거지를 두고 살고 있다. 강남을 상징할 만한 사람이자 강남을 꿈꾸는 사람들의 워너비 같은 이 사람에게 강남이란 어떤 곳인지 물었다.

"눈만 높아지는 곳인 거 같아요. 눈이 높아진 만큼 삶의 방식이나 생각이 높아져야 되는데 과연 그런지는 각자의 숙제겠죠"

강남은 욕망과 부와 명예와 권력이 넘실대는 곳이다. 자신들의 부와 명예가 정당한 것이라는 것을 입증하려는 노력이 가장 치열한 곳이자, 부와 명예를 신의 은총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윤리적, 도덕적인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넘치게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 이것은 자신의 삶이 성공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증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이 사람의 선행도 그런 노력의 하나로 읽힐 수도 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개신교 교회들이 강남에 집중된 것은 자신들의 사소한 잘못도 회개하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교회를 보는 세상의 시선이 따갑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요즘 기독교에 대해 너무 속상해요. 너무 속상하고 너무 안타깝고 슬퍼요. 내가 믿는 하나님은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보실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이 적지 않아 보이긴 했는데 적극적으로 말하려는 기색은 없었다. 꼭 종교만이 아니라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주저했다. '정치도 모르고 역사도 모르고 지리도 모른다'는 이 사람 말은 뒤집어 보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좋은 말만 하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말이다.

이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즐긴다는 느낌을 준다. 강연회에서나 신앙 간증을 할 때 자신에게 집중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힘을 얻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 점에서 역시 타고난 연예인이다. 자신은 연기자이기 때문에 그 직업에 충실해야 한다고 믿는다. 때로는 비싼 옷도 입고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도 일이기 때문이다. 연예인이기 때문에 여전히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할 권리는 없다고 했다.

"제가 기분 나쁘다고 저를 좋아하는 팬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는 없다고 봐요.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내 감정을 오래 끌고 갈 자유가 조금 박탈당하는 직업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으려는 욕구'가 신애라의 삶을 끌고 가는 동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댓글을 잘 안 보거든요. 왜냐하면 너무 상처를 많이 받기 때문에 안 보는 거예요.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너무 우쭐우쭐해져요. 모두에게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은 교만이 있었던 거예요. 그게 교만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좀 편해졌어요."

대중에게 보이는 삶이 포장된 것이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자신이 일부러 꾸민 것은 아니지만 실제보다 훨씬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신애라 씨를 두고 선한 영향력을 가진 분이라는 말을 합니다. 대중들의 그런 기대에 부응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습니까?

"그런 생각은 안해요. '어머, 그 말만큼 나 살아야 돼' 그런 부담감은 없어요. 실제 모습을 알면 얼마나 실망을 하실까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다만 죄는 안 지으려고 노력하지요."

대중의 시선을 즐기기도 하지만 대중의 시선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은 당연하다. 인터뷰가 끝나고 혹시 추가 질문을 할 수도 있으니 전화번호를 알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잠시 망설이더니 매니저를 통해 달라고 했다. 한꺼풀의 보호막은 지키려는 행동으로 이해했다.

5. 어머니가 불과 62살의 나이로 타계했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견딜 수 있었다. 이 세상이 종착역이 아니라 이 세상은 잠시 거쳐가는 나그네의 삶이라고 믿는 것이다. 언제든지 짐 꾸려 떠나야 하는 나그네의 삶이기 때문에 가볍게 짐을 꾸리자는 생각이 강박에 가까운 정리정돈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다른 거에 투자할 힘을 물건과 공간에게 많이 뺏기고 있다는 생각을 요즘 더 많이 하게 됐거든요. 왜 우선 순위를 두지 않아도 되는 일에 에너지를 쏟고 그걸 꽉 붙잡고 집착처럼 살고 있었을까…우리가 뭔가를 갖고 있다는 것은 그건 현재와 미래라기보다는 과거이기가 쉽거든요. 과거에 붙잡혀 있는 거죠."

그래서 나누는 것이다. 맛있는 것이 있으면 이것을 두고 나 혼자 먹어야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맛있을 때 빨리 나누자고 생각한다.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어디에 에너지를 쏟아야 할지 아는 사람이다. 다른 곳에 힘을 쓰지 않으니 온전히 집중해야 할 곳에 힘을 쏟을 수 있는 것이다. 3시간 가깝게 대화를 하고 나면 묻는 사람도 진이 빠진다. 그런데 이 사람은 물 한 잔 마시지 않고 두 사람이 던지는 질문에 막힘없이 답을 했다.

처음 약속한 인터뷰 시간은 두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인터뷰가 그렇듯이 이 사람과도 말을 하면 할수록 물을 것이 많았고 대답도 길어졌다. 단답형으로 답해도 될 것을 길게 말하기도 했고 구체적인 수치가 정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답을 망설이거나 피하지 않았다. 다만 정치적인 언급은 피하는 기색이 뚜렷했다. 자기와 남편은 전혀 정치에 관심이 없고 여당도 야당도 아니라며 그런 것들과 관련해 오해를 사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 사람과의 인터뷰는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소속사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소속사는 차인표와 신애라 2인 기획사였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안내를 맡은 직원에게 물었다. "이 건물이 이분들 소유인가요?" 그렇단다. 강남 한복판 6층 빌딩의 건물주라니 이 부부의 재력은 생각했던 것보다 대단한 모양이다.

기부에 대한 철학이 확고했다. 개인 대 개인으로는 하지 않는다는 것, 단체를 통해서만 한다는 것 등이다.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가진 것을 전부 물려 줄 생각은 없다고 했다. 아무것도 물려주지 않겠다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물려 주지도 않겠다는 것이다.

"자식이 세 명 있는데 완전히 입 다 씻고 너흰 나 몰라 하는 것은 좀 그렇지만, 그렇다고 다 물려줄 생각은 없거든요. 경제적인 것들이 이 아이들을 망칠 수 있다는 데 저도 한 표 동의하거든요."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다.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고 하는 컴패션 활동도 필리핀 현지에 가서 직접 자기 눈으로 이 단체의 활동 내용을 확인한 뒤 참여를 결정했고 다른 단체에 대한 지원도 섣불리 나서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 빌려 나쁜 짓 하려는 사람들은 없는지 늘 주의한다.

"기부를 하려면 그런 단체들 직접 가서 보고 확인하는 정도의 수고는 해야지요. 돈이 있으니까 빨리 어디든 기부하는 게 아니고 철저히 알아봐야죠. 이게 투명한지 아닌지…"

기부는 생활의 일부처럼 보였다. 어떤 해에는 부부가 광고 출연료를 전부 기부했다. 신실한 기독교 신자이지만 십일조는 하지 않는다. 대신 십일조보다 많은 액수를 기부한다고 했다. 자신이 직접 쓰임새를 확인할 수 있는 곳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말로 들렸다. 구체적인 기부 액수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한 해에 몇 천만 원, 많을 때는 억대의 돈을 기부한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고이지 않게 하자. 흘려보내자, 흘려보낼 수 있을 때 흘려보내자. 좀 있다가 보내자 이러면 사정이 생겨요. 써야할 일들이 생기고…"

어려운 국가 어린이들이 에이즈 예방 주사를 맞을 수 있도록 적지 않은 광고 출연료를 기부한 적이 있다. 이 때 돈의 가치가 생명의 가치로 바뀌는 경험을 했다.

"돈의 가치는 생명을 살릴 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재테크를 잘 해야 되는 이유도 더 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하는 것이죠."

자신은 재물의 주인이 아니라 절대자의 관리자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재물이 아니기에 관리자는 흥청망청 써서는 안된다. 한 푼이라도 축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청지기가 반드시 지켜야 될 의무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더없이 야무져 보였다.

6. 이 사람이 말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거의 같은 이야기의 반복이다. 그런데 몇 번을 들어도 지루하지 않다. 어떤 때는 표정으로, 어떤 때는 손짓으로, 어떤 때는 눈빛만으로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수백 번 강연을 했다고 하니 그 경험과 솜씨가 어디 갈 리 없다. 표정도 풍부하고 구사하는 단어도 단조롭지 않다. 남이 써준 글을 그대로 읽는 일은 없다. 원고 자체가 없다. 키워드 몇 개 가지고 무대에 오른다. 시간 제한이 있는 강연에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을까 싶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단다.

2017년 미국에 있는 한인 교회에서 간증을 하는 모습은 마치 신들린 사람 같다.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지우고 높낮이가 없는 목소리로 절대자의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가 알던 신애라가 아니었다. 늦은 밤 이 동영상을 보는데 한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 사람, 제대로 신들린 사람이구나. 이 기운으로, 이 힘으로 살아오고 있구나.'

자신이 아는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자신이 아는 이야기만을 하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이 사람은 현명하고 영리하다.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책은 많이 읽었다. 국문과 출신 작가 어머니의 영향이다. 주로 소설과 종교 서적을 읽는다고 했다.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 적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 사람의 일상이기도 한 기도가 자신과의 대화일 것이다. 신앙에 입문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한번쯤은 경험하게 되는 신비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입 밖으로 내서 고백해야 될 일과 자신의 가슴 깊숙이 간직할 일에 대한 분별이 있는 사람이다.

시간에 쫓기면서도 질문을 사양하지 않았고 대답할 말을 줄이지 않았다. 이제 시간 다 됐다고 말하거나 시계를 흘금거리며 쳐다보지도 않았다. 목소리도 나이가 든다는데 이 사람은 예외인 듯싶다. 세월이 이 사람만 비껴갈 리 없는데 분명한 것은 세월이 묻어나서 이 사람의 얼굴이 더 좋아 보인다는 점이다.

이 사람을 만나면 뭐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이었다. 50이 넘은 나이도 그렇고 한 분야에서 30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사람인데 '신애라 씨'라고 부르는 게 실례가 될 듯싶었다. 본인이 그렇게 불리는 것을 흔쾌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사람이 살아온 이력을 조사하다 보니 그렇게 불릴 사람이 아니었다.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뭐라고 부르면 되겠냐고 물었더니 질문자들의 나이를 확인한 뒤 '신애라 씨'라고 불러도 된다고 했다. 다음에 이 사람을 만날 일이 있으면 그때는 '신애라 선생님'이라고 불러야겠다. 그렇게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는 사람이다.

<이 인터뷰는 양만희 논설위원과 함께 2대1 대담 형식으로 지난달 29일 진행되었다> 

윤춘호(논설위원) 기자spring84@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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