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빨리 와라" 무용지물 '5인 모임금지'..며느리의 한숨 [이슈+]
시민들 "국민들만 옥죈다" "쓸모없는 탁상행정" 비난
방역당국·지자체조차 "단속은 어려워"
정부가 한 주 앞으로 다가온 설 연휴에도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를 유지하기로 결정하면서, 친척은 물론 결혼한 자녀 등 가족 간 만남까지 금지됐다.
직계 가족이라도 등록 거주지가 다를 경우 5인 이상은 모일 수 없는 게 골자다. 정부 방침을 어길 경우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시 치료비 등에 대한 구상권이 청구될 수 있다. 지난해 추석 이동 자제를 권고했던 수준에서 한층 강화된 조치다.
최근 일일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500명대 아래로 떨어지면서 3차 확산세가 꺾이는 추세지만, 산발적 감염이 이어지는 만큼 긴장의 끈을 놓지 말자는 취지다. 그러나 시민들 사이에서는 "큰 효과 못 내면서 갈등만 키우는 탁상행정" "가정집을 일일이 어떻게 단속할 것이냐" 등의 볼멘소리가 쏟아졌다.
최근 집단감염을 일으킨 '교회 비인가 교육시설' '헌팅포차' 등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정부가 실효성 없는 대책으로 국민 발목을 잡으려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시아버지, 제사는 꼭 지내야"…아이 있는 집도 예외 없어
서울시에 거주하는 결혼 3년차 한모씨(28)는 이번 설 연휴에도 어김없이 시댁을 방문한다. 시아버지가 다른 것은 몰라도 제사에만큼은 엄격하기 때문.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에도 여지없다.
한씨는 "시아버님이 고모님들은 몰라도 아들과 며느리는 필히 참석하라고 하신다. 최소 인원으로 해도 어쩔 수 없이 7명 정도는 모이게 된다"며 "방역조치 위반이지만 시부모님 입장이 워낙 완고하셔서 따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결혼 전부터 시아버님께서 제사는 꼭 지내야 한다고 말씀하신 터라, 5인 이상 금지 조치를 말할 분위기도 아니다"라며 "사실 오지 말라는 말씀을 먼저 하시지 않고, 이미 올 것으로 생각하고 계시는데 며느리 입장에서 방법이 있느냐"고 털어놨다.
사실상 신고하지 않으면 처벌에 나설 수 없는 조치인 만큼, 괜히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를 입 밖으로 꺼내 밉보이는 일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씨는 "집 안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누가 어떻게 확인하고 처벌을 할 수 있겠나. 단속도 못 하는, 이름뿐인 조치"라고 꼬집었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고 해도 예외는 없다. 갓 돌 지난 아들을 둔 이모씨(37)도 올해 설날 시댁을 방문한다. 심지어 형님은 올해 1월 출산한 몸으로 신생아를 데리고 시댁에 오기로 했다.
이씨는 "5인 이상 집합금지를 꺼낼 분위기가 아니다. 어른들께서는 명절에 간소하게 식사하는 건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생각"이라며 "어른 7명에 아이 2명, 총 9명이 모일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사실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방역조치 확실히 지키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니다"라며 "적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3명은 돼야 취할 수 있는데, 형님의 마음은 모르겠지만 아무도 말은 안 하시니 괜히 말하면 갈등만 유발하는 격"이라고 했다.
이씨 또한 이번 설 연휴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가 실효성 없는 대책이라고 했다. 그는 "처벌이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눈에 띄는 효과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벌금을 더 세게 해서 경각심을 높이는 게 낫지 않았을까"고 덧붙였다.
고부 간 동상이몽을 꾸다보니, 올해 친정집은 못가고 시댁만 방문하는 며느리들이 적지 않다.
이씨는 "친정집은 먼저 오지 말라고 했다. 비슷한 이유로 올해 주변에서 시댁만 가는 경우가 진짜 많다"며 "같은 시대 어른인데 자식과 며느리 간 간격이 왜 이리 큰지 모르겠다. 이럴 땐 솔직히 화가 난다"고 울상을 지었다.
한씨도 친정 부모님이 방문하지 말 것을 권했다. 올해 설 연휴 시댁만 방문한다. 그는 "친정 아버지가 먼저 코로나 조심하면서 푹 쉬라고 하셨다. 시댁에 빨리 다녀와 쉬려 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설 연휴를 앞두고 방역조치와 시부모님 눈치 사이에서 골머리를 앓는 며느리들의 심경은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최근에는 서로의 시댁을 방역조치 위반으로 신고해주자는 제안부터 익명을 보장받는 신고 방법 공유 글까지 올라왔다.
인천의 한 맘카페에는 "회사에서 명절에 집에 있어 달라는 지침까지 내려왔다. 걸리면 사직은 물론 손해배상까지 청구한다는 분위긴데, 남편에게 말하니 화를 냈다"며 "스스로 신고를 해야 하나 고민이다. 누가 시댁 신고 좀 해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파주의 한 맘카페에는 '안전 신문고' 앱을 통해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면서 "시댁 현관문 찍어서 신고하고 이웃이 신고한 것처럼 하려는데 안 걸리겠죠"라고 쓴 글이 등장하기도 했다.
"국민만 잡는 K-방역, 세밀화된 조치는 없어" 지적
설 연휴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가 실효성 없는 탁상행정에 불과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김모씨(56)는 "효과는 없는데 전 국민의 발은 옥죄겠다는 대책 같다"며 "솔직히 최근 집단감염 일으킨 교회 비인가 교육시설, 헌팅포차 등 사례를 보면 촘촘하고 세밀한 방역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증명되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시설들에 대한 집중된 조치로 확산세를 억제하는 것이 우선이란 것"이라며 "K-방역은 온전히 시민들이 만든 것이다. 실질적 구멍을 못 막고 애먼 자영업자와 고향 가는 국민들 막는 게 무슨 대책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 홍모씨(52)도 "집을 지켜볼 것 아니면 효과 없다. 지킬 사람은 지키고 안 지킬 사람은 안 지키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며 "지금 식당 앞에만 가도 3명씩 먹다 나온 이들이 함께 얘기하며 지나간다. 탁상행정이란 게 뻔히 보이는데 무슨 효과를 기대하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몸이 많이 안 좋으신 친어머니가 설 연휴 직전 생신이시다. 사실 너무 가고 싶었는데, 직업상 사람들과의 접촉이 많아 안 가기로 했다"며 "근데 지키는 사람만 계속 손해 본다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진짜 필요한 대책, 실효성 높은 조치를 내 달라"고 역설했다.
사실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가 사적 공간에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은 현장을 단속하는 자치구는 물론 방역당국조차 인정하는 부분이다.
서울시 한 자치구 관계자는 "민원이나 신고가 들어오면 현장에 나가 살피는 수준으로 계도 활동을 진행할 예정"이라면서도 "사실 현실적으로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는 공개된 식당에서도 단속하기가 쉽지 않다. 실질적으로 사적 모임은 다 체크할 수 없는 부분이란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다중이용시설 등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점검과 단속 등을 실시하겠지만 내밀한 사적 공간까지 정부가 관리하는 것은 상당히 용이치 않은 상황"이라며 "다만 국민들이 이런 행정명령의 취지를 공감해주고, 적극적으로 응해줄 것을 부탁드린다"고 하기도 했다. 실효성이 부족한 조치임을 인정하면서 권고 수준의 당부를 한 셈이다.
전문가들 역시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밝혔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사실 5인 모임 금지는 단속이 불가하기에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미미한데 국민들의 기본권은 과도하게 침해하는 조치"라며 "이 경우 국민의 불편함과 스트레스를 올려 방역에 대한 저항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하루에 수백명씩 모여 밥을 먹는 쇼핑몰 현장에만 가봐도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다"며 "변이 바이러스 확산의 기로에 선 만큼, 이제는 국민의 협조를 넘어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역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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