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만나는 북한 문화유산] ⑯ 개성의 정몽주 유적
선죽교, 표충비, 숭양서원 등 원형 보존
[편집자주]북한은 200개가 넘는 역사유적을 국보유적으로, 1700개 이상의 유적을 보존유적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지역적 특성상 북측에는 고조선과 고구려, 고려시기의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지난 75년간 분단이 계속되면서 북한 내 민족문화유산을 직접 접하기 어려웠다. 특히 10년 넘게 남북교류가 단절되면서 간헐적으로 이뤄졌던 남북 공동 발굴과 조사, 전시 등도 완전히 중단됐다. 남북의 공동자산인 북한 내 문화유산을 누구나 직접 가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하며 최근 사진을 중심으로 북한의 주요 문화유산을 소개한다.
(서울=뉴스1) 정창현 머니투데이미디어 평화경제연구소장 = 개성 시내 정중앙에는 104m 높이의 자남산(子男山)이 솟아 있다. 북쪽의 송악산과 남쪽의 용수산 사이다. 일제강점기 때 자남산 정상 부근에는 신사(神社)가 있었고, 지금은 김일성 주석의 동상이 서 있다.
산의 남서쪽에 있는 관덕정(觀德亭)에 오르면 전통가옥이 집중적으로 남아 있는 개성민속거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현재 300채 가량의 전통가옥이 온전하게 밀집한 형태로 남아 있고, 북한은 1975년 이곳을 '민속보존거리'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자남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 서쪽에 초록 지붕의 '통일관'(식당)이, 동쪽에는 개성백화점이 자리하고 있다. 통일관에서 서쪽으로 조금 가면 개성남대문이 나온다.
자남산의 남동쪽 자락에는 고려 말의 충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세 개의 역사유적이 남아 있다.
첫 번째 유적이 유명한 선죽교(善竹橋, 국보유적 제159호)다. 1392년(조선 태조 즉위년) 정몽주가 후에 태종이 된 이방원(李芳遠) 일파에게 피살된 장소다. 원래 선지교(善地橋)라 불렸는데, 정몽주가 피살되던 날 밤 다리 옆에서 참대가 솟아 나왔다 하여 선죽교로 고쳐 불렀다고 전한다.
선죽교는 개성 남대문에서 동쪽 약 1km 거리의 자남산 남쪽 개울에 있다. 태조 왕건이 919년(태조 1) 송도의 시가지를 정비할 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리의 길이는 8.35m이고 너비는 3.36m이다.
정몽주는 이성계(李成桂)의 위화도 회군에는 찬성했지만 역성혁명(易姓革命)에는 반대했다. 이성계와 이방원은 그를 회유했지만 그는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란 내용의 '단심가'(丹心歌)로 고려에 대한 충절을 표시했다.
결국 1392년 4월26일(공양왕 4년) 선죽교에서 최후를 맞이한 그는 역적으로 단죄되고, 수급과 시신은 저잣거리에 매달려졌다. 역적으로 몰려 방치된 시신을 문신 우현보(禹玄寶)와 송악산의 중들이 수습해 개경에 가매장했고, 후일 경기도 용인으로 이장됐다. 두 달 후 우현보는 경주로 유배당했고, 아들 5형제도 모두 유배를 갔다.
정몽주가 죽은 지 9년 뒤인 1401년(태종 1년) 이방원은 왕위에 직후 그를 영의정에 추증하고 충절의 표상으로 삼았다. 정몽주의 문하생인 권우에게서 학문을 배운 세종도 그를 충신으로 추앙했다. 역성혁명의 앞길을 막는 정몽주는 제거할 수밖에 없었지만 고려에 대한 충심은 인정한 것이다.
이후 선죽교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개성을 찾았을 때 꼭 돌아보는 장소가 됐고, 일제강점기 때는 개성을 방문한 수학여행단의 기념촬영지로도 유명해졌다.
선죽교 부근에는 조선 시기에 정몽주의 애국충정을 길이 전하기 위해 만든 여러 유산들이 있다. 선죽교의 가장자리에 있는 난간은 1780년에 정몽주의 후손인 정호인이 선죽교에 사람들의 통행을 금지시키기 위해 세운 것이다. 지금도 다리 대리석 위에 있는 검붉은 자욱이 정몽주가 흘린 핏자국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또한 주변에는 정몽주의 충절을 추모하며 세운 '읍비(泣碑)'(1641년)와 정몽주와 함께 죽은 녹사 김경조를 위해 세운 2개의 비(1797년, 1824년), 조선 시기의 명필인 한호(한석봉)가 쓴 선죽교비, 정몽주의 충절에 감동해 그의 시신을 거두어 준 고려의 관료 성여완의 집터비가 있다. '읍비'는 울고 있는 비라는 뜻이다. 이 비는 늘 축축이 젖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비가 정몽주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고 있는 것이라고 하여 그렇게 불렀다. 비에는 "일대의 충성스럽고 의로운 마음은 만고에 모범이라(一大忠義 萬古綱常)"고 쓰여 있다.
선죽교 서쪽에는 조선시대 영조와 고종이 충신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표충비(국보유적 제 138호) 2기가 보존돼 있다. 모두 비각 안에 있으며 비각은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비각은 정면 4칸(11.41m), 측면 2칸(5.25m)의 팔작지붕집으로, 북에 남아 있는 비각 중 가장 크다. 비각 앞마당에는 수령 300년 된 은행나무가 서 있다.
비는 건립 연대가 서로 다르지만 한 비각 속에 암수 거북이 한 쌍이 나란히 받치고 서 있다. 왼쪽(북쪽)에 있는 것이 1740년(영조 16)에 세운 것이고, 오른쪽(남쪽)에 있는 것이 1872년(고종 9)에 세운 것이다. 비신(碑身)에는 고려왕조의 충신이었던 정몽주의 충의와 절개를 찬양하는 영조와 고종의 어필이 새겨져 있다.
영조의 시에는 산악같이 높은 절개를 지닌 고려말기의 재상이었던 정몽주의 도덕과 충정은 만고에 전해지리라고 쓰여 있고, 고종의 시에서는 정몽주의 충정과 절개가 온 우주에 빛나며 그가 있어 우리나라 도덕이 이어진다고 적혀 있다.
거북이를 형상한 받침돌(귀부)은 10톤이 넘는 화강석 통돌을 섬세하게 가공해 만들었다. 비몸(비신)은 검은 대리석으로 만들었으며 비 머릿돌(이수)은 화강석으로 합각지붕 형식으로 만들었다. 아래 면에는 네 마리의 용이 꿈틀거리는 모습을 대칭으로 새겼다. 표충비는 거북을 새긴 조각 솜씨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말기의 석비 양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유물로 평가된다.
선죽교에서 서쪽으로 조금 가면 또 하나의 정몽주 관련 유적이 나온다. 1573년(선조 6) 개성유수 남응운(南應雲)이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고 서경덕(徐敬德)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숭양서원(崇陽書院, 국보유적 제128호)이다.
처음에는 선죽교 위쪽 정몽주의 집터에 서원을 세우고 문충당(文忠堂)이라 했다. 1575년(선조 8)에 '숭양(崇陽)'이라는 사액(賜額)이 내려져 국가 공인한 서원으로 승격됐고, 1668년(현종 9) 이후 김상헌(金尙憲)·김육(金堉)·우현보 등을 추가로 배향했다. 경내에는 내·외삼문, 동·서재, 강당, 사당이 있다. 1633년에 강당을, 1645년에 사당을 보수했으며, 1823년에 다시 전반적인 보수가 있었다.
출입문인 외삼문은 5단의 높은 장대석 기단 위에 세운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북측 안내원은 우스게 소리로 '높은 사람을 배알하기 위해서는 몸 낮추어 힘들게 올라와야 된다고 가파르게 만들어 놨다'고 설명했지만,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기단을 높이 쌓은 것이 분명하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외삼문으로 들어서면 마당 안쪽에 강당이 있고 그 앞 양쪽에 동재와 서재가 마주 서 있다. 강당은 높은 기단 위에 세운 정면 5칸, 측면 3칸 건물이다.
내삼문으로 들어가면 사당인 문충당이 나온다. 이 사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집으로, 2칸 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1칸 온돌방이 있는 구조이다.
숭양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서 제외된 47개 서원의 하나로 남아 선현을 봉사(奉祠)하고 지방교육을 담당했다. 1894년부터 한문을 가르치는 학당으로 이용되었고 1907년부터 약 3년간 '보창학교'로, 그 후에는 한문강습소로 이용됐다. 이 서원은 '임진왜란' 이전에 건축된 서원의 전형적인 배치 형식과 구조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했던 정몽주와 정도전(鄭道傳)은 새로운 왕조 건설을 두고 다른 선택을 했지만 최후는 비슷했다. 정몽주는 조선 건국에 반대하다 이방원에게 암살됐고, 정도전은 조선 건국에 참여해 왕조의 기틀을 잡았지만 역시 이방원에게 최후를 맞았다.
그러나 조선시대 때 사후 평가는 달랐다. 정몽주는 건국 초기에 복권돼 충절의 상징으로 추앙됐지만, 정도전은 조선 말 흥선대원군 섭정기에 이르러서야 공식적으로 신원 회복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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