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전기차 화재 대응, 선견지명 있는 소방청
2021. 2. 6. 08:00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 차종별 진화방안 구축
-한국은 이미 진압 가이드 일선에서 활용
최근 국내에서 심심찮게 발생하는 배터리 전기차 화재가 미국에서도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에서 운행되는 배터리 전기차 또한 화재가 끊이지 않아서다. 그러자 교통관련 사고 등을 조사하는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National Transportation Safety Board)가 전기차 제조사에게 차종별 화재 진압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는 권고안을 제시했다. 리튬이온 배터리에 화재가 일어났을 때 해당 차의 정보가 부족하면 효율적인 진화가 어렵고 최초 대응자도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배경은 NTSB가 2017년부터 2년 동안 발생한 배터리 전기차 화재 4건의 조사였다. 공교롭게 모두 테슬라 제품이었는데 사고 때마다 조금씩 양상이 다른 화재 유형이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특히 4건 중에는 화재가 완전히 진압된 후 배터리가 다시 점화되는 2차 화재 사안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전기차 제조사에게 기본적으로 배터리 화재 및 고온에 배터리가 재점화될 때 소비자 또는 화재 진압자가 우선적으로 파악해야 될 가이드라인을 요구했다. 특히 손상된 배터리 재점화에 대처하는 방안을 자세히 제시하라고 권고했다. 그리고 해당 가이드라인이 화재 진압 소방관에게도 전달돼 추가 피해 예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언급했다.
동시에 위원회는 전기차 제조사들의 위험 대비 공동 연구도 제안했다. 충돌 시 전력 흐름을 차단하지만 첫 단계가 실패했을 때 급격히 오르는 배터리 온도를 제어할 수 있는 추가 방안이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NTSB는 "전기차 제조사 36곳의 화재 비상 대응 지침을 검토한 결과 배터리 분리 및 고전압 충격 위험을 줄이는 내용은 있어도 배터리 재점화를 막거나 냉각을 위해 물을 뿌리는 장소와 방법에 대한 가이드는 없다"며 "손상된 배터리를 처리하는 한 가지 방법은 바닷물이 담긴 수조에 넣어 배터리에 남은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 뿐"이라고 밝혔다. 결국 기존 내연기관과 달리 전기차의 배터리 화재 진압은 별도의 방법이 필요하고 이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전기차 운행에 따른 화재에서 사상자를 줄이는데 반드시 필요한 행위로 본 셈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NTSB의 권고안 배경이다. 전기차의 화재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소비자들의 전기차 구입을 적극 장려하는 차원이기 때문이다. 제조사들이 화재 위험 요소에 적극 대비할수록 소비자들의 전기차 구매가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미국 화재방지협회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한해 18만건의 내연기관 화재가 고속도로에서 발생하는 만큼 자동차의 화재 위험성은 늘 상존한다. 따라서 초기부터 전기차 화재에 대한 위험성을 낮추거나 진화 방법을 찾아야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구매에 나선다는 것은 당연한 생각이다.
물론 조사는 테슬라 사고에서 시작됐지만 전기차 화재는 사실 여러 제조사를 가리지 않고 종종 발생한다. 그리고 여기에 탑재된 배터리는 3대 중의 1대가 한국 기업 제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전기차 배터리 화재가 일어나면 언제나 국내 배터리기업으로 시선이 옮아간다.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삼성SDI 가운데 누가 만든 배터리에서 화재가 일어났는지 파악하는데 분주하다.
그런데 한국은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지난해 9월 소방청이 전기차 화재 진압 가이드를 만들어 일선 현장에 이미 배포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국내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16건이며 이는 전체 내연기관의 화재비율(0.02%)과 비슷한 수준이다. 해당 매뉴얼은 전기차 사고 대응 시 고전압 배터리로 인한 감전 위험성과 배터리의 폭발 및 내부 전해액 누출로 인한 2차 피해 가능성을 지적하며 전기차별로 전원을 차단하기 위한 배터리 위치 등이 망라돼 있다. 더불어 사고를 인지한 시점부터 제품 식별, 자동차고정, 배터리 차단, 인명 구조 등의 대응 방법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NTSB가 오히려 한국의 매뉴얼을 따르는 게 낫다는 정도로 내용이 충실하다는 평가다. 그리고 한국 또한 이런 대응이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높여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앞으로 전기차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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