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일까 배부른 투정일까..대기업 떨게 한 '성과급' 뭐길래

문창석 기자 2021. 2. 6.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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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서 촉발된 성과급 사태..타기업으로 일파만파 확산
'투명한 기준' vs '기업 권한' 갈등..'수평적 문화 확산' 시각도
서울 종로구 SK 본사. 2020.8.25/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 = 기업의 '성과급'에 대한 논란이 재계 전반으로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그동안 경영진이 주는대로 받았던 직원들은 과거와 달리 회사에 직접 '금액 산정 근거가 뭐냐'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재계에선 20~30대 젊은 직원들이 많아지면서 나타난 필연적인 결과라고 해석한다.

시작은 SK하이닉스였다. 지난달 28일 회사 측이 지난해 성과급에 대해 '연봉의 20%'로 공지하자, 직원들은 지난해보다 영업이익이 두 배로 늘었는데 지난해와 성과급 액수가 같은 건 불합리하다고 반발했다. 입사 4년차인 한 직원은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 등에게 '성과급 산정 기준을 밝히라'며 공개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이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연봉 반납을 선언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불길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번 논란에 대해 이 대표가 사내망에 올린 해명에도 직원들이 실명으로 댓글을 달며 불만을 나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노사는 지난 4일 초과이익배분금(PS) 산정 기준을 기존의 경제적 부가가치(EVA)에서 영업이익과 연동하도록 바꾸고, 기본급 200%에 해당하는 우리 사주를 발행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SK하이닉스 사례에서 자극받은 성과급에 대한 불만 여론은 확대됐다. 지난 4일 SK텔레콤 노조는 박정호 대표에게 '성과급 규모를 재고해달라'는 서한을 보냈고, 삼성전자도 노사협의회 사원대표가 회사 측에 '성과급 산출 기준을 투명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도 직원들이 서로의 성과급을 비교하며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는 등 불길은 회사를 가리지 않고 번지고 있다.

서울 강남구 서초동 삼성사옥. 2021.1.28/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지급 기준 투명해야" vs "기업의 고유 권한"…'배부른 소리' 비판도

문제를 제기하는 직원들은 성과급 지급 기준이 투명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급 기준이 비공개일 경우 노동자 입장에선 회사가 정한 액수대로 성과급을 받을 수밖에 없어서다. 가능성은 적지만, 회사가 나쁜 마음을 먹고 부당한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하더라도 이를 견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과급 논란이 처음 발생한 SK하이닉스에서도 직원들은 '불투명함'을 가장 문제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재계 관계자는 "물론 '작년보다 성과가 좋았는데 왜 액수는 작년과 똑같냐'는 불만도 있었지만 사실 그건 일부였던 것으로 안다"며 "기본적인 불만은 성과급이 많고 적음이 아니라, '성과급 체계가 좀 더 투명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고 거기에서 이번 사건이 촉발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반면 기업 측에선 성과급 산정 기준은 '기업의 기밀'이며, 이를 공개할지 여부는 회사의 고유 권한이라고 본다. 성과급은 기본급과 달리 노사의 협의 사항이 아닌 만큼, 경영권에 의해 기업이 적절한 액수를 정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직원에게 휩쓸려 과도한 성과급을 지출하면 필요한 투자 재원이 부족해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도 있다.

특히 성과급은 무한정 퍼줄 수 없기에, 모든 직원이 만족하는 성과급 산식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직원들의 주장대로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더라도, 그땐 '과연 그 기준이 옳은 것이냐'는 논쟁이 또다시 발생할 수 있다. 결국 이전과 달라질 것 없이 비슷한 논란을 반복하며 소모전만 벌일 것이라고 우려한다.

반면 다른 기업 직원들과 협력사 직원, 자영업자처럼 애초에 성과급이 없는 직종에선 이런 갈등을 '배부른 소리'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누적 손실이 5조원에 이르는 정유업계와 코로나19 여파로 비행기 운항이 중단된 항공업계는 성과급을 기대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누군가에겐 반년치 월급인 성과급이 적다며 다투는 모습을 보면 박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SK서린사옥의 구성원 휴게 공간인 VR존(SK이노베이션 제공). © 뉴스1

◇MZ세대가 기업 문화도 바꿨다…'수평적 문화의 반증' 시각도

다만 일각에선 이렇게 성과급 논란이 전면에 드러난 점에 대해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가 점점 투명해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가피한 진통이라는 시각도 있다. 과거엔 경영진이 정해주는 대로 성과급을 받는 게 당연했는데, 사회 전반에서 투명함과 공정함을 요구하는 흐름이 되면서 기업의 성과급에 대해서도 '이게 과연 타당한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선배 직장인들과 다른 20~30대 'MZ세대' 직장인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생겨난 변화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번 SK하이닉스 성과급 논란에서 입사 4년차인 한 직원은 '성과급 산정 방식을 밝히라'는 항의 이메일을 대표 포함 임직원 2만8000명에게 공개적으로 보냈다. 이렇게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는 세대가 지금의 '깜깜이' 성과급 체계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불만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이번 현상은 우리 기업의 문화가 '위에서 찍어누르던' 과거와 달리 토론 등 수평적 관계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그만큼 소통의 문화가 통한다는 방증이 아닌가 싶다"며 "직원 개개인이 당돌한 게 아니라, 논리가 맞다면 인정하고 수용하는 문화니까 직원들도 그렇게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기업 문화가 바뀐 상황에서 앞으로는 직원들과 최대한 소통하고 설득하는 기업 경영진의 노력이 필수라는 지적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젠 '까라면 까'라는 식의 직장 내 리더십은 오히려 도태될 것"이라며 "이번 성과급 사태와 비슷한 회사 내 갈등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themo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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