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한 통에 인터넷서 사라진 '내 가게'

백상현 2021. 2. 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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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의 꽃 판매점


■ 조용한 주말…사라진 내 가게

이상할 만큼 조용한 주말이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간간이 걸려올 구매 문의 전화가 한 통도 없었습니다.

세종에서 7년 넘게 꽃 판매점을 운영해온 A 씨는 "코로나19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조용한 주말'의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갑자기 인터넷에서 A 씨 가게가 검색되지 않았던 건데요. 단골손님 말을 듣고서야 이런 사실을 알았습니다.

깜짝 놀란 A 씨는 직접 검색을 해봤습니다. 검색창에 자신의 가게 이름인 세종시 ○○○을 입력했습니다.

검색 결과 창 맨 위에 뜨곤 하던 플레이스(장소) 항목에 A 씨 가게는 없었습니다. '세종시 꽃집'이나 '세종시 꽃'으로 검색해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른 가게는 그대로 뜨는데 A 씨 가게만 사라졌습니다. 가게 이름은 물론 위치, 판매 가격, 후기 등 A 씨 가게에 관한 모든 정보가 증발한 겁니다.

네이버 검색 시 나오던 장소 정보


■ '관리 권한'을 넘겨받아 누군가 내 가게 정보를 삭제

A 씨는 무서웠습니다. 분명 영업을 하고 있는데 인터넷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가게가 된 셈이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주문을 받아 전국에 배달도 해왔기 때문에 '네이버에 뜨지 않는다'는 건 그런 배달 주문을 하는 다른 지역 손님을 받을 수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A 씨는 당장 네이버에 물어봤습니다. 자신의 가게가 '증발'해버린 이유를요.

돌아온 답은 황당했습니다. A씨가 네이버 '스마트 플레이스'에 직접 등록해둔 가게 정보를 누군가 삭제했다는 겁니다.

스마트 플레이스는 네이버 지도에 업체를 등록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등록하면 네이버 검색 시 지도에 가게 정보가 뜹니다. A 씨는 꽃 판매점의 위치와 영업시간, 판매 가격 등 정보를 상세히 기록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걸 멋대로 지워버린 걸까요.

A씨가 네이버에서 받은 안내 메일


■ 어느 날 걸려온 전화 한 통…"알려줄 수 없다"

"알려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A 씨 가게를 멋대로 없애버린 사람에 대한 정보도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건데요. 네이버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경위는 설명해줬습니다.

먼저, 누군가 스마트 플레이스에서 A씨 가게 정보를 바꾸거나 없앨 수 있는 관리 권한 변경을 요청했습니다. 확인 전화가 A 씨에게 갔습니다. ARS 전화였습니다.

A 씨는 이 전화를 기억합니다. 영업으로 한창 바쁜 시간이었습니다. A 씨는 "○○○ 꽃집 주인이 맞느냐"는 질문에 맞다고 답했습니다.

이 전화가 관리 권한 변경에 대한 본인 확인 전화였지만, 바쁜 영업 시간에 전화로 설명된 이런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것도 가게 영업중 해당 권한을 누군가에게 양도할 생각은 해본 적도 없는 A 씨였기에,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게 끝이었습니다. A 씨에게 관리 권한을 넘겨받은 그 사람은 가게 정보를 없애버렸습니다.

네이버에서 검색되는 지도 정보를 입력하는 곳, ‘스마트 플레이스’ 페이지


■ 포털사이트는 소상공인-손님 잇는 유일한 통로

A 씨는 결국 손님이 가장 몰리는 주말 내내 별다른 판매 실적을 내지 못했습니다. 가게 정보는 다행히 며칠 뒤 복구됐습니다.

원래 안 되는데 '예외적으로' 복구해주겠다는 설명과 함께였습니다. 다음부터 그런 전화 받으면 그냥 끊든지 하라는 안내도 있었습니다.

A 씨와 비슷한 사례는 자영업자 카페를 중심으로 흔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네이버에 등록된 '내 가게' 정보가 사라졌다는 게시물은 10개가 넘습니다.

A 씨는 제때 알아보고 항의해서 되찾았지만 피해 사례 중에는 왜 삭제됐는지 영문도 모른 채 처음부터 다시 등록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다시 순위권으로 올라가기까지 몇 달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들이 모두 A 씨처럼 누군가에게 관리 권한을 뺏겨 그렇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A 씨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안전장치가 더 필요해 보입니다.

전문가들은 "소상공인들에게 포털사이트는 사실상 손님과의 유일한 연결 통로다"고 말합니다. 네이버는 스마트 플레이스의 관리자는 네이버가 아니라 이용자라고 말합니다. 이용료를 받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뭔가 결정을 하기에 앞서 포털사이트에 검색을 해보고 정보를 얻습니다.

여기에 내 가게에 대한 정보를 올리고 내리는 건 곧 그 가게의 '흥망'과 직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피해가 없도록 꼼꼼히 관리해주는 것이야말로 포털사이트의 '사회적 책임'일 겁니다.

백상현 기자 (bs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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