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의 과외수업..'클린턴 시절'에서 해법 찾기
이인영 통일부장관이 5일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특사와 화상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이 장관은 지난해 미 대선 이후 클린턴 행정부 시설 북핵외교를 이끌었던 인사들과 잇따라 화상으로 만나 의견을 나누고 있는데요.
바이든 행정부에 대해 '오바마 2기'가 아닌 '클린턴 3기'가 될 수 있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던 만큼 그의 행보에 관심이 쏠립니다.
■ 이인영, 갈루치와 화상간담회…'제네바 합의' 주역
이인영 장관과 오늘 오전 화상간담회를 한 로버트 갈루치 전 북핵특사는 1994년 1차 북핵위기 당시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낸 주역으로, 북한과의 협상과 대화를 강조하는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입니다.
갈루치 전 특사는 오늘 간담회에서 "한미 양국 간 긴밀한 협의를 통해 북핵문제에 대한 진지하고 전문적인 접근을 해나가야 한다"며 "북핵 협상에 있어 한미가 단계적 비핵화 조치와 이에 따른 상응조치를 포함해 여러 방안을 검토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이에 이 장관은 "한미가 머리를 맞대고 과거의 경험을 진지하게 성찰하며 한반도 문제의 해법에 대해 함께 고민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두 사람은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실질적으로 진전시켜 나가기 위해 한미 양국 간 긴밀한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는데 공감하며, 향후 지속적으로 소통해 나가기로 했다고 통일부는 밝혔습니다.
■ 페리, 올브라이트, 갈루치…잇단 화상간담회
이인영 장관은 지난해 11월 미 대선 이후 발빠르게 과거 북핵 협상을 담당했던 미국의 전문가들과 잇따라 화상 간담회를 해 왔습니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직후인 지난해 11월 18일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 먼저 화상으로 만났는데요. 페리 전 국방장관은 클린턴 정부 말기인 1999년 포괄적인 대북 관여정책을 담은 '페리 프로세스'를 제안한 인물입니다.
페리 전 장관은 이 장관에게 "북한의 핵 능력 진전 등 당시와 상황은 변했지만,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해법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한미 공동으로 한층 진화된 비핵화·평화 프로세스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12월 22일에는 매들린 올브라이드 전 미국 국무장관을 화상으로 만났습니다. 클린턴 행정부의 국무장관이었던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2000년 북미공동코뮤니케를 이끌어내 북미가 수교 직전까지 가도록했던 주역입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과거 김대중 대통령과 한국정부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며 "한국이 북한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만큼 미국의 신행정부와 긴밀히 소통해 나가기 바란다"고 조언했습니다.
이 장관은 또 비슷한 시기, 전직 관료는 아니지만 수차례 영변 핵시설을 직접 방문하는 등 미국내 최고의 북핵전문가로 꼽히는 지그프리드 헤커 미 스탠퍼드대 안보협력센터 선임연구원도 만나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의견을 구했습니다.
이들 북핵 전문가들은 현 바이든 행정부에도 적지 않은 조언을 하고 있는 자문 그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클린턴 시절'에서 실마리 찾기
취임 이후 줄곧 '통일부의 역할'을 강조해 온 이인영 장관은 북핵 문제 해결에 강한 의지를 내보이고 있습니다. 통상 통일부는 남북관계 주무부처이고, 북핵 협상은 북미간 사안이니 외교부 소관에 가깝다는 인식과는 조금 다른 행보인데요.
국내외 북핵 전문가들을 부지런히 만나 의견을 듣는 것은 물론이고, 지난달 '국무부 2인자'로 복귀한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과도 접촉하려 부지런히 움직였다는 후문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셔먼이 부장관으로 지명됐으니 '번지수를 제대로 찾았던' 셈입니다.
정부와 여권 인사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줄곧 '클린턴 3기'나 '페리 프로세스 2.0' 등을 언급하며 기대감을 드러내 왔습니다. 클린턴-김대중 정부 시절 이후 20년 만에 한국과 미국의 민주당 정부가 대북정책을 공조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겁니다.
■ 새로운 '페림 프로세스' 가능할까
이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클린턴 말기 페리 프로세스 등이 합리성이 있으니 주목해서 봐야 한다"고 밝힌 이래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미 정부간 긴밀한 소통과 우리 정부의 역할을 강조해 왔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동맹 존중'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기대가 좀 더 높아지는 분위기인데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한미 정상이 첫 통화를 한 4일 대정부질문에서 "과거에는 미국 행정부의 검토가 끝난 다음 우리와 협의를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정책 검토 과정부터 한국과 같이 검토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히 강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페리 프로세스를 일각에서는 '페림 프로세스'라고도 부릅니다. 1990년대 초 국방장관 재임 시절 강경한 대북관을 갖기도 했었던 페리 국방장관이 임동원 당시 통일부장관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클린턴 대통령의 공감을 이끌어내 만든 정책이라는 뜻입니다. 적어도 미국의 대북정책에 우리의 입장이 주요하게 반영됐었다는 점은 의미가 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제 막 출범했으니 새로운 대북정책은 이제부터 본격 논의될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의 핵능력은 2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고도화됐는데요. 한층 정교한 대북정책이 필요한 만큼 한미가 새로운 '페림 프로세스'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우리 정부의 역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입니다.
이효용 기자 (utilit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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